지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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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에 있어 책은 그동안 알고 있던 것과 다른 세계를 만나고, 지금껏 보던 것과 다른 방식으로 자신과 자신 주변을 보게 만들어 준다. 이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확장시키는 것은 물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키려는 꿈도 가지게 된다.

 

사진_내게 금지된 책들ㅣ캐스린 래스키 지음ㅣ서정은 옮김ㅣ낮은산 펴냄 이러한 이유에서인지 변화를 두려워하고 다른 의견이 나오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지배자들은 자유로운 독서를 금지하고 자신들이 허락한 책만을 읽게 하는 정책을 펴곤 했다. 이처럼 만일 누군가가 정해놓은 책만 읽어야 한다면?

 

≪내게 금지된 책들≫의 주인공 하퍼는 1980년대 미국에서 10대를 보내고 있지만, 읽고 싶은 책을 마음대로 읽을 수 없는 처지다. 학교에도, 도서관에도 책이 가득한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퍼는 기독교 근본주의를 지지하는 부모님과 부모님이 가입한 단체의 금지조항 때문에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가 없다. 그 단체가 정한 수많은 금지도서 목록 가운데는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책인 <금발머리 골디락스와 곰 세 마리>와 <아기 돼지 삼형제> <꾀보 토끼> 같은 평범한 옛이야기들도 포함돼 있다.

 

남의 집에 허락 없이 들어가 물건을 부수고 음식을 먹었는데도 벌을 받지 않았다거나, 돼지들에게 아무런 해도 입히지 않은 늑대가 상해를 입었다거나 하는 이유로 말이다. 잘못을 저지른 아이들이 벌을 받고 그 행동을 고치는 내용의 이야기만이 읽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교회의 엄격한 방침에, 이제 막 생각의 싹이 자라기 시작한 하퍼는 도저히 동의할 수가 없다. 그래서 하퍼는 교과서 커버 속에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을 집어넣고 몰래 읽는 생활을 시작한다.

 

기독교 근본주의는 20세기 초반 미국에서 생겨나 80년대 전후 미국사회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종교 운동이다. 성경의 내용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서 인간이 영장류로부터 진화한 존재라는 과학적 사실이나, 백인과 흑인, 남성과 여성이 모두 동등한 인간이라는 평등주의 사상, 평등한 사회 성원 간의 의견수렴을 통해 공동체를 운영하려는 민주주의의 원칙 등을 성경의 내용에 어긋난 것이라 해 적대시하고 공격했던 것.

 

성경의 내용과 이에 대한 믿음이 다른 모든 원칙보다 우선시됐기 때문에 일부 기독교자들은 다른 종교를 믿는 이슬람 국가들을 공격하거나 기독교 문명에 기초하지 않은 아메리카 인디언을 몰살하고 그곳에 백인이 지배하는 나라를 세운 것 등을 정당한 주장으로 내세웠다.

 

이 책에서 자신들이 믿는 가치를 학교 교과과정에서도 관철시키기 위해 트레일러를 타고 미국 전역을 옮겨 다니며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일을 시작한 부모님 때문에 하퍼는 진화론에 대해 가르치는 과학수업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요정이나 마술 등이 나오는 책은 집에 가져와 읽을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러나 이런 하퍼에게게 ‘도서관’이 다가온다.

 

어디를 가든 똑같은 서지번호, 어느 곳에서든 빌리고 반납할 수 있는 상호대차 제도를 이용해 하퍼는 집에서 금지된 책들을 ‘몰래’ 읽으면서 부모님이 알려준 것과 ‘다른 세계’를 계속해 만난다. 마침내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용기를 내게 된다.

 

책의 내용을 보면, 하퍼의 가족은 원래 텍사스 주 외곽의 가난한 트레일러 주택단지에 살았다. 버스 운전을 하다가 일자리를 잃은 아버지와 나약하고 소심한 전업주부 어머니, 그리고 어린 여동생과 함께.

 

어린소녀 마침내 결정을 내리다

 

그러던 어느 날, 나약하기만 했던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정면으로 맞서는 일이 일어난다. 그 배경에는 ‘교회’가 있었다. 처음으로 어머니가 ‘이웃’을 만나고 ‘친구’를 사귄 곳이 바로 교회였던 것. 사람들과 친교를 나누면서 하퍼의 부모님은 다행히 긍정적으로 변해 간다. 문제가 생겨도 덮어 두고 회피하거나 큰 소리로 대책없이 말다툼을 하며 물건을 집어던지는 일은 더 이상 없었다. 아버지는 교회 사무국에서 일하게 되면서 사람들을 설득하는 새로운 재능을 발견하고, 지역 케이블 TV에도 자주 출연해 열정적인 웅변으로 교회의 신임을 사게 된다.

 

그러나 하퍼와 부모님과의 새로운 갈등은 끊임없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책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가치관에서 부모님과 말이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몸에 일어나는 변화에 대해서도 궁금하기 짝이 없고, 상상의 세계를 지키고 싶고, 과학적인 진리를 탐구하고 싶기도 한 호기심 많은 소녀는 주어진 임무만을 수행하고 보수적인 세계관을 엄호하기에 급급한 부모님에게 순종하는 척하며 가족의 테두리 안에서 계속 살아가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된다.

 

 

주어진 세계에 머물러 사는 삶은 편안하고 안전하다. 하지만 저 너머의 진리를 찾아 나서는 길은 멀고 험하기 마련이다. 다행히 하퍼는 혼자가 아니었다. 도서관에서 만난 것은 책뿐만이 아니었던 것. 말이 통하는 친구들, 은근슬쩍 추천도서를 건네주는 센스 있는 사서 선생님, 그리고 좋아하고 존경하는 작가에게 적극적으로 편지를 쓰고 답장을 받으면서 가족의 테두리 안에서는 얻을 수 없었던 새로운 지적 자극을 받고 상상력과 용기를 키우게 된 것이다.

 

이 책은 책을 통해 얻은 가치를 실천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던 한 어린 소녀의 특별한 여정을 들려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