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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평등에 빠진 당신 '비상구'는
    사회 2018. 1. 26. 20:01

    [SOCIETY in] 


    우리 사회는 개인의 노력과 그에 따른 결실, 즉 부의 축적을 존중한다. 동시에 공정함에 대한 깊은 신념을 갖고 있으며, 사회적 인프라와 이미 축적된 자본의 혜택으로 얻은 부는 재분배해야 마땅하다고 여긴다. 


    그런데 최상위 1퍼센트가 국가 전체 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극심해지고 있는 소득 불평등은 이러한 가치들과 맞지 않다. 불평등은 무엇이 문제일까.


    비행기 기내 소동은 가끔 들리는 소식이지만, 비행기 안을 지위의 서열이 물리적으로 구현돼 있는 인생의 축소판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코노미석 승객들은 탑승할 때, 이미 푹신하고 넓은 좌석에 앉아 있는 일등석이나 비즈니스석 승객들을 지나 짐을 질질 끌고 가야 한다. 하지만 일부 비행기는 뒤쪽이나 중간으로 승객을 태우기 때문에 이코노미석 승객들은 이런 수모를 피할 수 있다. 



    연구 결과 이코노미석 승객이 높은 등급의 좌석 구간으로 탑승하면서 불평등을 직접 목격할 때 기내 소동 발생 가능성이 2배 더 높아지고, 이는 6시간 비행 지연과 같은 효과라고 한다. 


    비행기 표는 아무리 싸도 수십만 원에 달하기 때문에 이코노미석 승객들을 진정한 의미의 빈곤층이라 말할 수 없다. 


    이 연구 결과는 불평등이 부자와 빈자 사이를 이간질할 뿐만 아니라, 버젓한 중산층도 불평등을 인식하면 빈곤감을 느끼고 가난한 사람처럼 행동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이는 이코노미석만의 문제가 아니다. 같은 연구에서 지위의 차이를 직접 목격하면 일등석 승객들도 난동을 부릴 확률이 더 높았다. 


    땅콩회항 사건, 라면 상무, 중견기업 오너 2세의 만취 난동을 기억할 것이다. 불평등을 인식하면, 부자든 빈자든 이상하게 행동하기 시작한다. 


    <무너진 사다리>의 ‘사다리’는 불평등의 은유로 사용된다. 사다리를 올라갈수록 더 나은 지위와 소득, 건강, 안전, 미래를 누릴 수 있지만, 그 사다리의 아래쪽에 있다면 죽음조차 불평등하다. 


    미국 켄터키주 빈민가 출신으로 직접 불평등과 자수성가를 모두 경험한 심리학자 키스 페인은는 심리학, 신경과학, 행동경제학 분야에서 이뤄진 다양한 연구들을 통해 ‘나는 저 사람보다 가난해’라는 인식이 우리 삶을 어떻게 송두리째 바꾸는지 생생하게 보여줄 뿐만 아니라, 가난을 개인의 인격적 결함으로 보는 잘못된 시각도 바로잡아 준다. 


    저자는 어린 시절 주말마다 중산층에 속하는 친구네 집에 놀러 갔는데, 친구의 어머니가 “오늘은 뭘 하고 놀 계획이니?”라고 물어보시는 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자신이 사는 세계의 남자들은 “그때그때 되는 대로” 살았기 때문이다. 


    주머니 사정이 빡빡할수록 무모하고 근시안적인 결정을 내리기 쉽다. 인간은 살 만하다면 여유롭게 기다리면서 만반의 준비가 끝난 후 후손을 낳으면 되지만, 상황이 팍팍할 때에는 최대한 빠르고 많이 번식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빈곤하거나 풍족하다는 느낌은 보통 상대적 비교에 근거한다. 남보다 뒤처진다는 인식이 유발하는 빈곤감은 미래를 차분히 준비하기보다, 지금 당장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을 선택하도록 부추겨 위험한 결정도 감수하도록 만든다. 


    저자의 연구팀은 ‘단기 소액 대출’, ‘성병 검사’, ‘약물 검사 통과 방법’ 등 위험한 행동을 했을 때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찾아볼 만한 키워드 검색 건수, 미국 내 50개 주의 건강 및 사회문제 지수, 그리고 각 주의 불평등 지수를 비교했다. 


    그 결과 위험하고 무모한 행위는 건강, 기대 수명, 약물과 알코올 중독, 폭력 및 살인, 학업 성취도, 정신질환 발병률 등 다양한 건강 및 사회문제와 연결되며 불평등이 심한 주일수록 그 정도는 더욱 심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놀라운 사실은 어린 시절 겪은 빈곤과 풍요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금 당장 남들에 비해 잘살지 못한다는 주관적인 느낌만으로도 위험을 무모하게 감수하고 당장 한 치 앞만 내다보려는 행동 전략을 취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는 흔히 ‘진보적 엘리트’와 ‘고결한 보수주의자’라는 새로운 프레임 안에서, 경제적 논리와는 상반되게, 가난한 사람들은 보수당에, 부유한 사람들은 진보당에 투표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생각이 틀렸음을 밝힌다. 


    2016년 미국 대선 당시에도 노동계급 사람들이 도널드 트럼프에게 표를 던졌다는 분석이 많이 나왔지만, 이 역시 소득 불평등과 절대 소득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면 사실과 다르다. 


    이런 오해가 생겨나는 이유는 부자들은 경제적 논리에 따라 보수당(공화당)에 표를 던지지만, 잘사는 주의 평균 소득자는 오히려 진보당(민주당)에 투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또 뉴욕이나 코네티컷주(잘사는 주)에 사는 부자보다 미시시피주(가난한 주)에 사는 부자가 공화당에 투표할 확률이 훨씬 더 높다. 


    사람들이 객관적인 수입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에 대한 주관적인 인식에 근거해 투표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해되는 행동 방식이다. 


    저자의 연구팀은 자신이 남보다 낫거나 못하다는 느낌이 정치적 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 위해 ‘주식 투자 게임’을 고안했다. 


    6개월간 모의 주식 투자를 한 다음, 연구진은 약 30퍼센트의 수익률을 거둔 참가자들 중 절반에게는 다른 사람들보다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말하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남들보다 수익률이 낮다는 정보를 흘렸다. 


    이렇게 실제로 번 액수와 상관없이 참가자들 사이에 주관적인 상대적 지위가 만들어졌다. 이후 연구진은 고소득자가 저소득자의 손실을 메우기 위해 20퍼센트의 수익을 재분배하는 규칙이 있는데, 미래 세대를 위해 규칙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투표해달라고 했다. 예상대로 고수익 그룹은 재분배 축소를 지지한 반면, 저수익 그룹은 재분배 혜택을 더 늘려야 한다고 투표했다. 


    연구진은 각 그룹의 참가자들에게 재분배 정책에 대한 찬반 의견을 주장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려준 다음, 그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 결과 그들은 자신과 의견이 다르면 그 목소리의 주인을 무능하거나 이기적이며 비합리적인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흥미로운 점은 반대 의견을 지닌 사람을 깎아내린 응답자 대부분이 남들보다 높은 수익을 얻고 있다는 말을 들은 그룹 소속이었다. 높은 지위에 있다는 우월감이 생기면 상대방의 생각은 잘못됐다고 느끼기 쉬운 것이다. 


    사회적 사다리의 꼭대기와 밑바닥이 서로 멀어질수록 정치는 점점 더 분열될 지도 모른다. 이것이 바로 지난 수십 년간 우리 사회에서 벌어진 일이다. 


    불평등의 역기능은 사다리 아래쪽뿐만 아니라 꼭대기의 행운아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메이저리그 야구를 생각해보자. 


    연봉 격차가 심한 팀은 슈퍼스타에게 주는 고액 연봉이 인센티브로 작용하여 팀에게 더 높은 승률을 가져다 줄 것이라 기대한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정반대의 결과를 얻었다. 연봉 격차가 덜할수록 팀 성적은 더 좋았고, 심할수록 팀 성적은 떨어졌다. 


    데이터를 좀 더 면밀히 들여다보면, 물론 연봉 격차가 심한 팀의 고액 연봉 선수는 다른 동료들보다 성적이 좋았지만, 연봉 격차가 덜한 팀의 슈퍼스타보다는 승률이 낮았다. 즉 연봉 불평등은 스타 선수들의 의욕을 높여준 것이 아니라, 팀의 단결을 해치는 결과를 낳았다. 


    불평등이 팀의 성과를 떨어뜨리는 것은 스포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수십 개의 제조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간부들과 시간제 근로자의 임금 격차가 심할수록 제품의 질이 낮았다. 


    직원들이 원하는 것은 완벽한 평등이 아니다. 그들도 기술과 경험이 앞서는 사람이 더 많은 연봉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기여와 보상 간의 균형이며, 그 균형이 틀어질 경우 협상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되면 창의적인 방법을 찾기도 한다. 바로 태업이다. 


    어떤 사람들은 재고를 빼돌리고, 어떤 사람들은 주가 조작을 감행한다. 파인애플 포장 담당 직원은 절단기에 장갑을 넣어 망가뜨렸고, 한 자동차 공장 직원은 자동차 기화기에 비비탄을 집어넣기도 했다. 


    이런 몰상식한 행위들이 상황을 더 나아지게 만들지는 않지만, 최소한 울분은 풀릴 수 있다. 태업을 감행한 한 근로자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복수하려는 게 아니라, 공정한 쌍방 교환이라고 말하겠어요.” 


    <부러진 사다리> 키스 페인 지음ㅣ이영아 옮김ㅣ와이즈베리

    한 연구에서 40개 국가의 국민들에게 일반 노동자와 최고경영자들 간의 이상적인 임금 격차 수준을 물었더니 평균 4.6배라고 응답했다. 


    자칭 중도 좌파는 4배, 중도 우파는 5배라고 답했다. 정치적 성향뿐만 아니라 연령, 교육 수준, 소득 수준 등의 변수에 상관없이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답변이 나왔다. 그러나 미국 최고경영자의 평균적인 실제 소득은 약 1200만 달러로, 일반 근로자의 350배에 달한다. 


    저자는 불평등이 빈곤층뿐만 아니라 그 사회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일깨우며, 이를 도덕적이나 정치경제적인 관점으로만 해결하려는 태도를 버리고 “공중보건의 문제로 봐라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건강, 범죄, 교육, 정치 등 우리가 직면하는 모든 문제에는 불평등이라는 공통분모가 끼어있음을 알 수 있다. 항생제와 하수도의 발명이 공중위생을 혁신적으로 발전시켜 수백만 명의 목숨을 구하고 인간 수명을 극적으로 늘렸던 것처럼, 불평등에 직접적으로 맞선다면 많은 문제들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다. 불평등이 개개인의 생각과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하는 것은 바로 그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지데일리 한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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