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의 단편 소설 <여행>에는 헤어진 애인의 거취를 찾기 위해 구글 검색을 사용하는 한 남자가 등장한다. 그가 검색창에 애인의 이름을 치자 지금까지 그녀의 모든 행적과 연락처, 주소가 검색된다. 남자는 그녀가 곧 결혼할 예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녀를 찾아가 자신의 차에 납치한다. 결국 여자는 우여곡절 끝에서야 남자에게서 도망칠 수 있게 된다.


사진_그들이 위험하다ㅣ존 팰프리, 우르스 가서 지음ㅣ송연석 최완규 옮김ㅣ갤리온 펴냄.jpg 인터넷 세대에게는 더 이상 ‘폐쇄된 영역’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이버 공간의 개방성은 한편으로는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 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더 이상 나를 ‘독립적인 존재’로 존재하지 못하게 하는 무서운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인터넷을 통해 사회화된 최초의 세대 앞에 놓인 위험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들이 위험하다≫는 방대한 인터뷰 자료와 최신 사회 과학 이론을 바탕으로 ‘디지털 시대와 함께 도래한 새로운 위험들과 그 대책’을 논하고 있다.


이 책의 지은이 존 팰프리와 우르스 가서는 하버드 대학교의 버크먼 인터넷·사회 연구소에서 오랫동안 IT와 사회 변화의 관계를 연구해 온 학자들이다. 이들에 따르면 이러한 위험들은 ‘인터넷을 통해 사회화된 세대’에게 숙명적으로 닥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사이버 공간에서 정립했으며, ‘정보의 바다’에서 숨 쉬듯 정보를 흡수하는 일에 익숙하다. 이 책은 이런 변화로 인해 발생한 위험과 대책에 대해 문화·정치·경제·교육·미디어 등 다양한 분야를 망라해 서술하고 있다.


책에 따르면, 엄마 뱃속에서 찍힌 초음파 사진부터 청소년 시기 싸이월드에 올린 사진, 그리고 온갖 지원서와 이력서까지 인터넷 공간에 쌓이는 정보들은 무궁무진하다. 그리고 이러한 정보들은 하나의 특정한 ‘정체성’을 형성해 개인이 이로부터 벗어날 수 없게 만든다.


지금까지는 게임 중독, 사이버 테러 등 디지털 병리 현상의 본질을 ‘새로운 기술에 대한 개인의 부적응’으로 보았다. 그러나 지은이에 의하면 모든 병리 현상의 본질은 디지털 사회화의 본질적인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때문에 해결책도 단순히 표피적으로 증상을 치료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되며, 보다 근본적인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책은 우선 청소년들이 왜 자신의 사진을 싸이월드에 올리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청소년들의 미니 홈피를 살펴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홈피 주인의 수많은 사진이다. 이런 사진들은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가면 얼마든지 악용될 수 있는 중요한 개인 정보다. 왜 수많은 청소년들은 이런 위험성을 무릅쓰고 자신의 사진을 홈피에 올리는 걸까?


지은이에 따르면 이는 ‘또래 집단의 규율’이 암암리에 정착돼 있기 때문이다. 즉, ‘나의 정보’를 공개함으로써 ‘타인의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하는 것이다. 이런 규율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또래 집단으로부터 배척당하게 된다. 그래서 청소년들은 자신의 사진을 싸이월드에 올리는 것이다.


인터넷에 정보가 넘쳐 나면서, 이는 ‘얼마나 믿을 만한지’가 중요한 문제가 됐다. 책은 실제로 인터넷에는 엉터리 정보가 가득하고, 특히 건강 등의 중요한 문제와 관련된 거짓 정보는 인터넷 사용자에게 치명적인 해를 끼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렇지만 책에 따르면 ‘다수’가 적극적으로 제작과 수정·보완에 참여하는 형태의 사이트, 일례로 위키피디아 같은 곳의 정보는 상대적으로 믿을 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거짓된 정보가 올라오더라도 곧 수정과 반론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위키피디아와 브리태니커 사전의 신뢰성에 대해 조사를 해 본 결과, 예상 외로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위키피디아가 ‘다수에게 개방된 형태’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게임 중독’을 일종의 ‘병리 현상’으로 보았다. 현실에서 많은 좌절을 겪은 사용자가 ‘게임 세계’에서 위안을 얻는 것에 익숙해져서 현실로 돌아오기를 거부한다는 식이었다.


하지만 책에서는 ‘게임 중독’을 일종의 일탈된 ‘적응 기제’로 보고 있다. 즉, 먹을 것이 부족한 상황에서 ‘더 많은’ 음식을 섭취하려는 경향이 몸에 밴 인류가 갑자기 풍족한 음식을 접하게 되자 자제력을 잃고 비만해졌듯이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당연했던, ‘더 많은 정보를 얻으려는’ 적응 기제가 정보가 ‘넘치는’ 시대를 맞아 과도하게 정보를 흡수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정보 비만’의 한 형태가 ‘게임 중독’이라는 것이 지은이의 진단이며, 당연하게도 그 치료법도 ‘병리 현상을 치유하려던’ 예전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 지은이의 생각이다.


지은이는 이러한 디지털 시대의 문제를 단지 ‘학문적’이고 ‘추상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자녀들에게 닥친 절실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지은이는 현 시대가 마주하고 있는 문제와 관련해 끊임없이 ‘대책’과 ‘대안’에 대해 고민하고, 부모·교사·정책당국자의 각성을 촉구한다. 디지털 기술이 가진 무한한 잠재력을 인류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디지털 세대 앞에 놓인 이 많은 위험들을 기성세대가 어떻게 치워 주느냐에 달려 있다고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