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은 자신의 기억을 갉아먹으면서 글을 쓴다고 한다. 자기를 지우는 동시에 기억하기 위해서다. 이러한 작가들에게 ‘강’은 단순히 기억해야 하는 상관물 중 하나에 불과한 게 아니다.

 

작가들은 유전적으로 강을 인류의 보고로 기억하고 있다. 강은 문명의 발생지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상상력과 사유의 근원지이기도 하다. 대지를 품고 키우는 양수가 바로 강이라는 것을 작가들은 인류의 시작과 함께 유전적으로 기억하고 있다.

 

작고 위대한 소리들ㅣ데릭 젠슨 지음ㅣ이한중 옮김ㅣ실천문학사 펴냄이달 초 작가들이 모여 ‘사(死)대강 개발’이나 ‘생명의 어머니 강물’이라 외친 남한강 퍼포먼스를 가졌다. 누구보다 인류와 강의 친연성을 잘 알고 있는 그들이기에 단순히 자연으로서의 강이 아닌 생명의 원천으로서 그 젖줄을 분절시키는 인간의 무지함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작고 위대한 소리들>은 이 땅을 향한 작가들의 외침과 잇닿아 있다. 지은이 데릭 젠슨은 “우리는 다른 존재들과 연결되어 있는 자들”이라는 자각 앞에서 삶의 원형을 회복하며 보다 평화롭게 사는 법을 모색하기 위해 이 시대 최고의 지성들을 찾아 대화를 나누고, 땅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환경론자, 신학자, 아메리카 선주민, 심리학자, 여성주의자 등 매우 다양한 분야의 권위자이자 현장 활동가다.

 

데릭 젠슨은 다소 광범위하고 무거워 보이는 문제의식을 그들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함으로써 우리의 편협한 사고와 일상이 결국 인류에게 어떤 파멸을 가져올지를 보여준다. 마치 4대강사업의 결과를 미리 우리에게 펼쳐 보여주듯.

 

‘글(言)’이 문명과 함께 발명된 것이고 ‘소리(音)’인 말이 인류의 원시성과 맥을 같이 한다고 할 때, 이 책은 ‘말’ 특유의 구술성을 담아내기 위해 대담의 형식을 취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좀 더 인류가 당면한 가장 절박하고 까다로운 문제를 해결하려는 공동의 노력에 관한 이야기를 보다 실감 있게 체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은이는 설명한다.

 

“내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은 우리 문화에 만연한 파괴성을 이해하여 다른 방식으로 사는 게 가능한지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책의 서문에서 지은이는 ‘다른 방식’의 삶에 대해 언급하게 된 이유로 우리의 ‘파괴성’을 든다.

 

자연과 일체된 삶을 영위하기 위한 공동체와 개인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에서 그들이 표방하는 ‘대안적 사유와 삶’은 우리의 어리석음을 여실히 직면하게 해준다. 여기서 ‘대안적’이란 말은 우리가 얼마나 삶의 본질에서 멀어지고 있는가에 대한 역설과 방증이 아닐까?

 

지은이는 삶은 결코 대안적일 수 없다고 강조한다. 매 순간이 바로 삶이기 때문이다. 이 말이 차선책의 의미라는 걸 차치하더라도 이 같은 어리석음이 개인과 공동체, 나아가 문화를 파괴하는 우리의 폭력성을 증폭하는 것은 자명하다.

 

이 책은 ‘진보’의 착각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땅(자연)의 소리’를 경청할 것을 주문한다. 아울러 우리가 병리적 삶의 양태에 기인한 ‘자폐’를 앓고 있다고 진단한다.

 

text Point▶ “중요한 건 이 세계에 적절히 참여하는 것, 우리 스스로 절제하는 것, 우리가 세계 먹이사슬의 일부임을 인정하는 것이에요. 우리는 다른 생물과 상호작용을 해온 긴 역사를 갖고 있어요. 우리는 마땅히 우리 몸 속에 기생충을 두고, 때가 되면 썩고, 그리하여 남의 먹이가 되고, 타자를 먹는 책임을 받아들이고, 우리 목숨을 지속시키기 위해 타자를 죽이기도 해야 해요. 우리는 주인도 구경꾼도 아닌 유기체로서의 확신을 가질 필요가 있어요.”

 

이 책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통해 하나의 ‘소리’를 들려준다. ‘파멸’의 길을 걷고 있는 현실이 어느 하나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듯 우리가 처한 절박한 상황을 다면적으로 보여준다. 더불어 지성과 공감을 바탕으로 환경적 여건과 우리 정신의 건강을 살피는 것에서부터 에로스와 사랑의 생명을 되살리는 것에 이르기까지 인류를 위한 폭넓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지은이는 “진정한 ‘앎’이란 가슴과 정신과 몸과 감각이 모두 함께 자각하는 것”이라며 “이 자각을 통해 비로소 우리는 ‘파괴적인 자아’에서 안과 밖의 경계 없이 자연과 장소를 공유하는 투과성 있는 자아로 절박한 현실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