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 내 말을 일부러 오해하여

내 소원의 반만 들어주어 날 아주 데려가

돌아오지 못하게 하지 않기를.

잠시 떠나고 싶지만 영원히 떠나고 싶지는 않은 곳이 바로 이 세상입니다. 어차피 운명은 믿을 만한 게 못 되고 인생은 두 번 살 수 없는 것. 오늘이 나머지 내 인생의 첫날이라는 감격과 열정으로 사는 수밖에요.”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ㅣ장영희ㅣ샘터 펴냄 ‘문학의 숲을 거닐며’ ‘내 생애 단 한번’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이야기하던 장영희. 2009년 5월9일 우리 곁을 떠난 그의 이름 앞에는 많은 수식어가 붙는다.

 

한국 영문학계의 태두 고 장왕록 박사의 딸, 교수, 영문학자, 칼럼니스트, 수필가, 문학 전도사 등. 그런데 그에 못지않게 자주 그를 따라다녔던 수식어는 ‘암 환자 장영희’, ‘장애를 극복한 오뚝이 장영희’였다. 생전에 그는 그 수식어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의 삶을 두고 ‘천형天刑 같은 삶’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도리어 자신의 삶은 누가 뭐래도 ‘천혜天惠의 삶’이라 응했다.

 

다양한 수식어만큼이나 활발했던 생전 활동을 증명하듯 곳곳에 흩어져 있는 그의 글들은 한결같이 ‘삶’과 ‘문학’을 이야기한다. 그의 글 속에는 장애를 가졌지만 누구보다 진실하고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았던 사람, 평범한 일상을 살아있는 글맛으로 승화시킨 ‘에세이스트 장영희’가 있다. 또 평생 문학과 함께하면서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문학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았던 사람,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영미문학을 감동과 여운이 남는 이야기로 풀어낸 ‘영문학자 장영희’가 있다.

 

기억하는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는 장영희가 생전에 신문에 연재했던 칼럼과 영미문학 에세이 중 미출간 원고만 모아 엮은 책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에세이스트 장영희’와 ‘영문학자 장영희’를 동시에 만날 수 있다.

 

신문을 통해 세상에 한 번 알려졌다고 해서 결코 끝이 아닌 이야기들, 글쓴이를 닮아 생명력 강한 글들, 오래 두고 곱씹을수록 삶의 향기와 문학의 향기가 짙게 배어나는 글들이 이 책 속에 있다. 또 그 향기는 우리에게 다시 ‘희망’이라는 강한 여운을 남긴다.

 

::: 사실 내가 건우에게 정말로 하고 싶었던 대답은 “이 세상 사람 모두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마음속에서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미워하고 있을 것이다.” 였다.

인종이나 국적, 나이나 직업에 따라 우리 사는 모습은 각양각색이지만 우리 삶의 모든 일은 결국 사랑과 미움의 관계로 귀착된다. “너는 지금 누구를 사랑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라고 답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열정적으로 미칠 만큼 누군가를 사모하는 사랑일 수도 있고, 아니면 구태여 의식하지 않더라도 늘 마음속에 간직한 은근한 사랑일 수도 있다. 크든 작든 그 누구의 마음에도, 아무리 그악스러운 살인범의 마음속에도 분명히 사랑은 있을 것이다. :::

 

“생활 반경과 경험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글의 소재는 대부분 나 자신이며, 그래서 나의 글은 발가벗고 대중 앞에 선 나.” 장영희는 생전 이렇게 말했다. 이러한 이유에서인지 그의 글 속에는 일상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로 등장한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장영희는 평범한 일상을 가슴 벅찬 문학으로 승화시키는 힘을 분출하는데 탁월했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무심히 지나치는 일상을 돌아보게 되고 그 속에서 작은 깨달음을 얻게 되며, 우리가 잠시 잊고 있던 삶의 가치들을 되새기게 된다.

 

영미문학 칼럼은 장영희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척추암으로 병원에 입원했던 2004년 9월 당시, 그는 신문과 잡지에 연재하던 네 편의 칼럼 중 세 편을 포기했지만 오직 하나, ‘영미시’ 칼럼만은 남겨뒀다. 영미시는 그에게 흰 벽으로 둘러싸인 좁은 병실에서 바깥세상으로 나가는 단 하나의 통로이자, 세상과 단절된 상황에서 존재의 의미를 확인하는 방편이었다. 생명의 힘을 북돋아주듯 그에게 삶의 용기를 줬다.

 

::: 저마다 가슴속에 품고 있는 이상향, 은하수가 어디인지 알고 있지만 사회라는 거대한 톱니바퀴에 깔려서 버림받고 서서히 파괴되어가는 사람들을 통해 작가가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역설적으로 죽음을 통해 다시 억새풀처럼 끈질기게 태어나는 삶이다. :::

 

2008년 봄, 장영희는 ‘영미문학 속 명구를 찾아서’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연재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해 7월, “더 이상 글을 못 써서 미안하다”는 짧은 이메일과 함께 마지막 원고 ‘내가 너를 사랑한 도시’를 신문사에 넘기고 병원에 입원했다. 이후 우리는 더 이상 그를 통해 영미문학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다시 억새풀처럼 끈질기게 태어나는 삶’을 이야기하며 마지막까지 손에서 놓지 않았던 글들을 통해 그가 영미문학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었는지는 알 수 있다.

 

그가 골라낸 영미시와 영미문학 속 명구는 대부분 ‘삶’과 ‘사랑’을 주제로 한다. 비록 그는 지금 우리 곁에 없지만 장영희가 남긴 영미문학의 향기는 우리를 ‘억새풀 같은 삶’, ‘희망이 있는 삶’ 속으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장영희의 힘이며, 그가 떠난 지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가 여전히 그를 기억하는 이유다. 장영희를 기억하는 것은 희망을 믿는 것이고, 그 믿음은 다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