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이 죄가 된 세상이다.”

 

가난을 엄벌하다ㅣ로익 바캉 지음ㅣ류재화 옮김ㅣ시사IN북 펴냄1980년대 이래 20년 동안 서구에서 감옥이 팽창하고, 강경한 형벌 정책이 부상하는 가운데, 경제적 규제 완화와 노동 유연화를 특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복지국가의 쇠퇴를 동반했다. 복지국가의 해체와 노동시장의 불안정화는 필연적으로 빈곤층의 증가를 부른다. 계급·계층 구조가 불안정해지면서 도시가 와해될 위기가 생기자 이에 대한 돌파구로 찾은 것이 바로 ‘강경한 형벌 정책’이다. 사회 보장에서 철수한 국가가 문제의 책임을 회피하는 동시에 잘못을 도시 외곽 빈민들에게 돌리는 것이다.

 

또한 국가가 비용을 들여서라도 질서를 바로잡겠다고 하면 유권자에게 어필할 수 있다. ≪가난을 엄벌하다≫는 형벌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미국에서 탄생하고 세계에 수출됐는지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지은이 로익 바캉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복지국가의 쇠퇴, 빈곤층의 증대를 감옥과 형벌 정책에 초점을 맞춰 분석한다.

 

로익 바캉이 먼저 주목한 것은 미국의 뉴욕. 1990년대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시장 재임 당시 윌리엄 브래튼 뉴욕시 경찰국장은 ‘톨레랑스 제로’ 정책을 들고 나왔다. “범죄의 가장 확실한 발생 원인은 죄인 그 자신이다”는 것이 윌리엄 브래튼의 지론이었다.

 

그는 기업이 이익 목표를 정하고 관리하듯 범죄 등록 건수를 관리하기 시작했다. 매일 범죄건수를 챙기는 기업가처럼 경찰 업무를 지휘하면서 뉴욕의 치안 유지 예산을 대폭 늘렸다. 사회복지 분야 예산이 3분의 1이 삭감되는 동안 뉴욕의 치안 예산은 무려 40퍼센트나 인상됐다. 체포자 숫자가 늘어나자 법정에서 이와 관련한 재판을 감당하지 못해 쩔쩔매는 ‘법정 병목 현상’까지 벌어졌다. 사소한 경범죄에도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는 뉴욕의 이 정책은 법 집행을 공격적으로 하는 형벌 정책의 대표주자가 된 것이다.

 

여기서 지은이는 미국의 형벌국가화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고 말한다. 우선 교도소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것. 1975년 38만명 수준이던 수감자가 1985년엔 74만명으로 늘었다가 1995년 100만5000여명, 1998년에 200만명에 이르게 된다. 이들 중 상당수는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흑인이었다.

 

수감 인구가 15년 동안 세 배로 늘어난 것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으로, 이 같은 수감자 팽창을 감당하기 위해 교도소 관련 예산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여기에 민영 교도소까지 급성장하게 됐다. 이에 따라 감옥산업은 고용, 정년, 재정 수입이 보장되는 각광받는 산업이 된다. 또한 보호관찰, 감시 체제, 범죄정보, 유전자 정보 데이터화 등 형벌 저인망이 확장되기에 이른다.

 

‘법과 질서’를 내세운 새로운 형벌주의가 유포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던 것은 보수적 싱크탱크와 미디어 담론이었다. 1990년대 맨해튼연구소라는 싱크탱크가 이데올로기 전파 역할을 맡았다. 이 연구소는 레이건 행정부에서 복지 비판의 1인자로 떠받들었던 찰스 머레이와 관련을 맺었다. 미국의 보수적 범죄학 대부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이 만든 '깨진 유리창' 이론(일상생활의 소소한 무질서부터 바로잡아야 큰 범죄를 막을 수 있다는 내용)을 대중화한 것도 이 연구소였다. 연구소는 도시 최하층민들이 야기하는 ‘무질서’를 철저하게 진압해야 한다는 논리를 전파했다. 이 연구소의 주장은 빈곤과 복지, 범죄에 관한 영국의 정책에 영향을 미쳤다.

 

‘작은 정부’, ‘큰 감옥’

 

‘톨레랑스 제로’ 정책은 미국에서 서유럽, 남미의 다른 도시들로 파급됐다. 빈민과 도시 외곽 거주민을 목표로 하는 이 ‘미국산’ 형벌 정책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감소일로였던 유럽의 감옥 수감 인구가 급격히 늘어난 것은 이러한 형벌 이데올로기의 확산에 따른 결과이다.

 

지은이는 “복지나 경제 영역에서의 ‘작은 정부’는 ‘큰 감옥’ 없이는 성립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바로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철 장갑’을 끼고 나타난 것이다. 가난한 자를 감옥으로 몰아붙이는 방식으로.

 

이 책에 따르면, 신형벌주의는 경제와 사회 분야의 신자유주의와 짝을 이뤄 죄와 벌 분야에까지 경제적 사고와 시장 효과, 개인의 책임 의무라는 도그마를 확대시키고 있다.

 

지은이는 “경제 규제 완화와 형벌 규제 강화는 한 쌍을 이루고 있다. 사회복지 투자 완화가 복지국가의 와해를 야기하자, 계층 구조가 불안해졌다. 불안전으로 초래될 사회 해체를 저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형무 예산의 초과 투자가 요구된 것이다. 형무 인플레이션은 신성불가침한 자연적 운명이나 재앙이 아니다. 전반적인 민주주의 대토론을 거쳐 요구할 것은 요구하고 결정할 것은 결정해야 하는 정치적 문화적 사안이다”고 얘기한다. 국가가 ‘법과 질서’를 내세우면서 범죄를 강력하게 근절하겠다고 나선다고 무작정 박수칠 일이 아니라는 견해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