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학자인자 환경운동가인 엘린 켈지는 <거인을 바라보다>에서 고래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이 거대동물에 대해 인간의 오감만으로 이해할 수 없는, 엄청난 규모에서 살아가는 존재라고 이야기한다. 그는, 고래는 ‘문화’를 만들고 계승하며, 인간과 더불어 지구의 반을 나눠 쓰는 존재라고 말한다.

 

이 책은 고래 삶의 거의 전 생애에 관한 정확한 과학적 지식과 광범위한 정보뿐만 아니라 심해의 고래 사체에만 사는 독특한 기생생물의 놀라운 세계와 바다 생태계를 둘러싼 인간의 활동까지 다양하게 소개한다. 인간과는 너무도 다른 생물의 삶을 보여줌으로써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면서도, 어떤 점에서는 인간과 매우 긴밀하게 관련된 주제들도 논의한다. 지은이는 이런 논의를 통해 바다 생태계를 바라보는 큰 그림을 갖자고 말한다. 인간의 오만을 걷어 내고 생명의 바다를 되살리는 일에 ‘고래가 가르치는 지극한 모성애’가 그 힌트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고래를 바라보는 이 여성 생물학자의 따스한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바다 생태계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깊이 생각할 수 있다.

 

*거인을 바라보다, 엘린 켈지/황근하, 양철북.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고래는 바다에서 살아가는 유일한 포유동물이다. 이들은 길게는 90살까지 살며, 오랜 기간 동안 어미가 새끼를 키운다. 한 번에 한 마리만 낳기 때문에 번식 속도가 상당히 느리며 어미가 새끼 한 마리에게 들이는 공도 무척 크다. 문제는 바다가 어미들에게도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점이다. 호시탐탐 노리는 포식자를 피해야 하고, 이동하는 먹이를 찾아 항상 헤매야 하고, 끊임없이 변하는 해수의 운동을 파악해야 한다. 숨을 곳이 거의 없는 환경에서 어미는 새끼에게 수영과 사냥을 가르치고, 먹이의 위치를 알려주고, 안전한 곳으로 안내할 유일한 존재다. 이런 고래를 가리켜 지은이는 “지극히 헌신적인 어미”라고 표현한다. 이를 뒷받침할 사례들은 무궁무진하다.

 

생후 6개월 동안 젖을 먹으며 새끼의 몸무게가 17톤 이상 불어나는 동안 흰긴수염고래 어미는 몸무게의 30%를 잃는다. 붙잡혀간 새끼를 돌려받기 위해 포경선을 끝없이 공격하는 쇠고래도 있다. 간혹 남의 새끼를 납치하는 고래들도 발견된다. 이들은 참치잡이 배의 추격에서 새끼를 잃었던 고래들이다. 지은이는 이런 어미 고래들을 본능이 아닌, ‘감정’을 가진 존재로 본다.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지은이가 갖고 있는 고래에 대한 따스한 시선은 우리가 현대 사회에서 잃어버린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조용히 일깨워 준다.

 

바다는 해저지형의 해양학적 변화, 해류의 이동, 용승, 물고기들의 이동 등으로 인해 끊임없이 변하는 곳이다. 한편으로 바다는 먹이를 쉽게 찾을 수 없다는 점에서 고래들에게는 사막과 같다. 이런 환경에서 고래들이 선택한 방법은 협력과 공생이었다. 혹등고래들은 분기공으로 튜브 모양의 공기거품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은 팀을 이루어 사냥을 한다. 한쪽에서 리더격인 고래가 소리로 물고기를 몰아가면 다른 고래가 물 속 깊은 곳에서 분기공으로 튜브 모양의 공기거품을 뿜어낸다. 그러면 공기거품 기둥에 갇힌 물고기들을 나머지 고래들이 잡는다.

 

또한 다른 방식의 협력 문화는 향유고래나 범고래, 병코돌고래 등에서 발견된다. 이들은 일종의 공동육아를 한다. 수영이 익숙하지 않는 갓 태어난 새끼 고래들은 주로 수면에서 생활하며 모든 것을 어미에게 의지한다. 그러나 어미들은 먹이를 찾기 위해 800미터 이상 깊은 곳으로 잠수해야 한다. 이들이 바다 깊이 내려간 40분 동안 새끼를 돌보는 것은 다른 이웃 고래다. 이렇게 밀접하게 조직된 동물사회에서 분업에 기초한 이타주의가 나타나는 현상을 두고 과학자들은 ‘진(眞)사회성’이란 이름을 붙였다.

 

고래는 큰 뇌를 가진 매우 지능적인 동물이다. 저주파 소리로 의사소통을 하며, 고유한 휘파람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며, 거울에 비친 자신을 인식하고, 도구를 사용한다. 그들은 환경에 적응하고 맞춰가는 진화의 속도가 매우 빠르다.

 

복잡하고 까다로운 사회적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고래가 극도로 지적이라는 과학적 근거를 밝혀낸 것은 2006년, 뉴욕 시나이산 의학대학교 과학자들이었다. 이들은 혹등고래 뇌에서 방추신경세포를 발견했다. 이전까지는 이 뇌세포는 오직 인간과 인간의 가장 가까운 친척인 대형유인원에게서만 발견된다고 알려져 있었다. 인간의 뇌 중 사회적 조직력과 공감 능력, 화술, 타인의 감정에 대한 직감, 신속한 ‘본능적’ 반응을 담당하며, 사랑과 감정적 고통을 느끼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알려졌던 곳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독가시에 찔리지 않도록 해저에서 해면동물을 뜯어내 주둥이에 물고 사냥을 하는 병코돌고래도 있다. 이들은 해면동물을 보호장갑처럼 사용한다. 신기한 것은 이 ‘해면동물 사용법’을 어미 돌고래에게 배운다는 점이다. 본능이 아닌 학습에 의해서 말이다. 고래 연구 학계에서는 이것이 고래들의 모계사회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말한다. 즉 고래의 행동양식은 모계에 따라 결정되며 같은 집단에서 소리, 생존 방식, 육아 방법은 일치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들이 지능 동물이 아니란 점이다. 핵심은 이들이 지식을 ‘전수’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중심 역할을 하는 것이 할머니 고래다. 대부분 야생동물에게 폐경기, 즉 ‘생식력이 정지’의 선고는 곧 죽음을 의미한다. 이전까지는 폐경기 이후까지 살아있는 동물은 인간이 유일하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고래들이 폐경기 이후에도 20년 이상 살며 무리를 돌보고 지식을 전수한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분명 고래 연구에는 아직까지 많은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은이는 “우리가 고래에 대해 아는 지식이란, 연구자들이 수면에서 얻어낸 극히 일부분의 정보로부터 추론한 것에 불과하며, 그조차도 계속 같은 장소만을 관찰해 얻은 정보”라고 말한다. 그래서 인간의 이해 범위를 넘는 규모에서 살아가는 고래의 삶을 우리가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이다. 하지만 고래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 한, 이들을 단순히 숫자로 인식하지 않는 한, 우리는 이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생태계의 어떤 부분도 인간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은 없다”

 

더불어 지은이는 고래와 바다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조직적이며 국제적인 제도 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미 고래들은 해안 개발, 선박 운송, 석유 탐사 등으로 인한 소음으로 고생하고 있다. 소리를 이용해 해저 공간을 인식하는 고래들에게 음향 스모그는 고래의 세계를 축소시키고 있다. 자꾸 인간들에게 먹이를 뺏기는 것도 문제다. 어획 도구가 지나갈 수 있는 경사면이며 대륙붕은 단 1평방미터도 남김없이 이미 저인망이 훑고 지나갔을 정도로 인간이 고래에게 빼앗는 먹이의 양은 엄청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공동 해양보호구역을 설치하고, 해저저인망사용을 금지하는 등 전 세계적인 협력이 필요하다.

 

고래를 기억하는 것이 낭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는 세계를 바라보는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인간을 생태계 피라미드의 가장 정점에서 끌어내려야 한다. 우리와, 우리를 둘러싼 세계와, 이 모든 유기체를 큰 그림에서 볼 수 있어야 한다. 많은 생태학자들이 이제 개별 종이 아니라 지구 전체의 상태를 보존하려는 노력에 초첨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단순히 고래의 삶을 서술하는 것에서 나아가, 고래의 규모에서 바다 생태계를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전 세계 고래 연구자들의 관점을 소개하고, 이를 통해 우리의 인식을 더 깊고 넓게 전환하자고 주장한다. ‘자신의 지식과 경험’과 ‘고래 연구의 거장 25인과의 인터뷰’를 씨실과 날실 삼아 고래의 삶과 문화, 바다 생태계 이야기를 재현한다.

 

[지데일리/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