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테뉴의 영향력은 실로 대단하다. 삶의 체험에 몰두한 에고이스트, 셰익스피어에게 <햄릿>의 영감을 불어넣은 남자,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조차 확신할 수 없다던 회의주의자, 철학을 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사유하는 것이라던 순례자, 최초의 자유주의자이자 최초의 에세이스트, 데카르트와 파스칼이 혐오하면서도 매혹됐던 사상가, 낭만주의자들조차 칭송한 진정한 로맨티시스트, 살아 있다는 느낌과 의식이 있다는 느낌에 집중한 모더니스트들의 선구자, 모두가 그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들이다.

 

* 어떻게 살 것인가, 사라 베이크웰, 김유신, 책읽는수요일



몽테뉴의 생애와 사상, 그리고 그의 역작 <에세(Essais)>는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철학자들과 문필가들에게는 물론, 현대의 지성들에게까지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과 다채로운 영감을 선사하고 있다. 바로 인간의 심연을 비추는 거울을 만들어낸 사람이기 때문이다.

 

몽테뉴는 새로운 문체로 ‘에세(essais)’라는 장르를 창조했다. ‘에세’라는 말은 그가 새로 만들어낸 것이다. 프랑스어로 ‘에세예(essayer)’는 ‘시도하다’라는 뜻으로, ‘에세이’ 한다는 말은 어떤 것을 ‘시험하거나 맛 본다’는 의미, 또는 어떤 것을 ‘휘저어본다’는 뜻이다. 그는 이렇게 자신의 생각이 흐르는 대로 짤막한 산문을 프랑스어로 쓰기 시작했고, 이 산문을 모아 책으로 펴내며, 그 제목을 ‘에세(essais)’라고 했다.

 

그러나 <에세>는 1676년 가톨릭교회의 ‘금서 목록’에 등재된다. 몽테뉴가 맹비난을 받은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지만, 그 당시 독자층도 관련이 있었다. 이 무렵 그의 책은 경박한 멋쟁이, 재담가, 무신론자, 회의주의자, 난봉꾼 등 평판이 나쁜 패거리들의 애독서였기 때문이다. 무려 200년 동안 금서 목록에 포함돼 있었으며, 1854년 5월 27일에야 비로소 발매 금지가 해제됐다.

 

몽테뉴는 <에세> 서문에서 이 책은 극히 개인적인 목적으로 쓴 것이라고 독자들에게 경고한다. 몽테뉴는 <에세>의 서문을 이렇게 끝맺는다. “그러니 독자여, 나 자신이 이 책의 소재이다. 독자는 이렇게 하찮고 쓸모없는 것에 여가를 허비할 이유가 없다. 그러면 안녕히.”

 

바로 이 점이 역사 속의 위대한 철학자들과 문호들, 그리고 오늘날의 지성이 <에세>를 “평생 두고 읽을 만한 책”이라 손꼽는 이유다. <에세>의 목적은 철저히 “한 개인의 인격에 대한 기록”이었다. <에세>에는 한 사람, 즉 ‘한 개인의 있는 그대로의 자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리고 <어떻게 살 것인가>는 몽테뉴의 삶과 그의 대표작인 <에세>를 통해 어떻게 살아야 참되게 사는 것인가를 생각하도록 하는 책이다.

 

몽테뉴가 살았던 시대는 정치적, 종교적으로 극심한 혼돈을 통과하던 시기였다. 그런 시대적인 광기와 인간의 다채로운 변화 앞에서 그는 지극히 회의적이면서도 기존의 관념에 사로잡히지 않은 참신한 시각으로 <에세>라는 불굴의 고전을 써냈다.

 

<에세>는 후대의 사상과 예술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쳤는데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플로베르의 말에서 그 답을 알 수 있다. “어린아이들처럼 즐거움을 얻기 위해 몽테뉴를 읽지 마라. 또한 야심가들처럼 교훈을 얻기 위해 읽지도 마라. 오직 살기 위해서(to live) 읽어라.”

 

<어떻게 살 것인가>의 지은이 사라 베이크웰(Sarah Bakewell)은 이 점에 착안해 가치관이 급격히 변화하고, 초단위로 환경이 변화하는 우리 시대에 몽테뉴를 보다 면밀하게 살펴, 거기에서 삶의 가이드를 삼을 수 있다고 말한다.

 

‘죽음을 걱정하지 말라’에서부터 마지막 20장 ‘인생 그 자체가 해답이 되게 하라’에 이르기까지 이 책의 각 장은 ‘사랑과 상실을 이겨내라’, ‘나만의 뒷방을 마련하라’, ‘즐겁게 어울리고 더불어 살라’, ‘인간성을 지켜라’, ‘통제를 포기하라’, ‘평범하고 불완전한 사람이 되라’ 등의 제목을 달고 있다.

 

각 장의 제목들만 보면 얼핏 유행하는 처세서나 자기계발서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의 장점이자 새로운 점은 그런 안내를 몽테뉴의 실제 삶과 <에세>의 구절들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이 책은 한편으로는 몽테뉴의 전기적인 측면을 갖고 있고, 또 다른 면에서는 <에세>를 깊이 읽는 효과를 주는데, 읽어가다 보면 그 두 가지 측면이 변증법적으로 종합되고, 읽은 이 스스로 자기 삶을 돌아보면서 생각에 잠기게 한다.

 

가령 ‘죽음을 걱정하지 마라’는 장의 경우, 몽테뉴가 젊은 시절에는 ‘죽음’의 문제에 골똘히 매달려 파티에 가서도 한쪽 구석에서 우울하게 앉아 있는 경우가 많았다는 일화로 글을 시작한다.

 

특히 결혼 후 여섯 자녀 중 한 자녀만 빼고 모두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마저 여의면서 그는 더욱 깊이 죽음의 문제에 빠져든다. 그러나 38세 되던 해 사냥에 나섰다가 낙마하는 바람에 죽음의 문턱까지 가는 사고를 당한 후 죽음에 대한 생각이 180도 바뀌게 된다.

 

그는 죽음을 사유하라는 이전 철학자들의 말을 더 이상 믿지 않았다. 자신의 경험에 비춰 볼 때, 죽음은 논리적인 사유의 대상이 아니었다. 마치 잠에 빠져들 듯 ‘그냥 강물이 흘러가듯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이었다.

 

때문에 그는 철학자들이 주장하는 ‘위엄을 갖춘 죽음’이 아니라 평범한 농민들이 자연에 순응하듯이 죽어가는 방식이야말로 더 인간적이며 죽음 본연의 모습이라는 걸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어서 <에세>에 실린 관련된 구절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기도 한다.

 

“어떻게 죽어야 할지 모르더라도 걱정하지 마라. 그때가 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자연(Nature)이 소상하게 그리고 완벽하게 일러줄 것이다. 자연이 그 일을 완벽하게 처리할 테니 당신의 머리를 미리 죽음에 대한 생각으로 채우지 마라.”

 

<어떻게 살 것인가>는 몽테뉴의 생애와 작품을 탐험하며 20가지 각기 다른, 때로는 상반된 해답을 전해준다. 몽테뉴는 다양한 지적 활동을 통해서, ‘인생을 잘 사는 방법’만큼 얻기 어려운 지식도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몽테뉴는 말했다. “자신의 삶을 옳게 즐기는 법을 아는 것이 절대적인 완벽함이자 실질적인 신성함이다.” 그리고 그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1 죽음을 걱정하지 마라

2 주의를 기울여라

3 태어나라

4 책을 많이 읽되, 읽은 것을 잊고 둔하게 살아라

5 사랑과 상실을 이겨내라

6 작은 요령을 부려라

7 의문을 품어라

8 나만의 뒷방을 마련하라

9 즐겁게 어울리고 더불어 살라

10 ‘습관’이라는 잠에서 깨어나라

11 절도 있게 살라

12 인간성을 지켜라

13 아무도 한 적이 없는 것을 해보라

14 세상을 보라

15 너무 잘하지는 마라

16 철학적인 사색은 우연한 기회가 있을 때만 하라

17 성찰하되 후회하지 마라

18 통제를 포기하라

19 평범하고 불완전한 사람이 되라

20 인생 그 자체가 해답이 되게 하라

 

이는 모두 몽테뉴의 <에세>에서 발췌한 것이다. 몽테뉴의 생애와 사상을 살피는 프리즘인 동시에 몽테뉴의 인생론이기도 하다. 각 해답의 길이 역시 다양하다. 읽는 이의 관심을 주로 몽테뉴의 일대기로 유도하는 해답도 있고, 그 시대의 철학적 입장을 심도 있게 요약한 해답도 있다. <에세>를 요약·분석한 내용으로 구성된 해답도 있다.

 

이렇듯 지은이는 이 책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20가지 각기 다른, 때로는 상반된 해답을 몽테뉴의 생애와 작품을 탐험하며 우리에게 전해준다.

 

지은이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써서 남들이 각자 자신의 인간적인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든 거울은 늘 있었던 것이 아니다”라면서 “누군가 그런 거울을 발명해야 한다. 그런데 여느 문화적 발명품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발전해왔으나, 이런 거울을 처음 착상한 사람은 단 한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그 사람이 바로 몽테뉴다.


글 손정우 <함께하는 우리들의 세상이야기 ⓒ지데일리 gdaily4u@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