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어떤 시간은 빨리 흘러가버리고 어떤 시간은 견뎌야 한다. 아무도 그 견딤을 돕거나 대신해줄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확인하며 살아간다.

 

  

모든 날은 인생이다, 강신재, 책읽는수요일

 

<모든 날은 인생이다>는 오랫동안 한 길을 걸어온 돛배 어부, 등대지기, 대장장이, 여인숙 주인, 다방 마담, 이발사, 뻥튀기 장수 등 정직하게 행복한 17인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다.

 

지은이 강신재가 직접 만나고 채집한 이들의 인생은 매일 졸린 눈을 비비며 출근길, 등굣길에 오르는 우리의 삶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들은 거짓 없이 오늘을 긍정하고, 한 순간의 기쁨과 슬픔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고(苦)’의 연속인 인생일지라도 남들은 잘 가지 않는 분야에서 끊임없이 노력했다는 사실이 별 일 없이 바쁘게만 사는 우리에게 감동을 주고 용기를 북돋워준다.

 

엔진 없는 돛배로 망망대해를 건너는 어부는 말한다. “바다 사는 사람은 날만 좋으면 바다에 나가야 한다”고. 거리 장사 30년째인 솜사탕 장수는 지난한 삶을 설탕의 변형일 뿐이지만 더 달달한 솜사탕에 기대어 산다.

 

50년을 경험하고도 뻥 소리에 놀란다는 뻥튀기 장수는 “극한의 압력과 온도를 견뎌 환생하는 쌀과 콩처럼, 상처 있는 자들도 오늘을 견뎌 새롭게 태어나면 좋겠다”며 또 손끝에 쌀알을 묻힌다.

 

이들은 돈을 위해 억지로 일하는 법이 없고, 한 순간의 기쁨과 슬픔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과 몸과 마음을 다스려 일을 내려놓을 줄도 아는 유연함을 갖추고 살기에, 또 매 순간이 황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계속되는 가난과 화려한 명성에도 덤덤하다.

 

이들은 그저 인생이란 더 높이 오르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깊이 들어가는 것이란 것을 온몸으로 증명하듯 살아갈 뿐이다. 일상에 잠자는 지난날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잘 보낸 하루는 어제의 아픔을 잊게 한다

 

오랜 시간에 걸쳐 총 280가지 공정을 통해 정성스럽게 만들어낸 수제 구두의 값어치는 단지 그 가격표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또 하루 종일 서류에 파묻혀 지내면서 억대 연봉을 받는 대기업 임원과 사라져가는 늪을 지키기 위해 새벽별을 보고 나와 저녁별을 보고 들어가는 늪지기의 직업적 가치는 더욱 다르게 느껴진다.

 

역사가 빠트린 사람과 시골마을에 대한 기사를 주로 써온 지은이는 이렇게 하찮은 삶과 대단한 삶의 경계를 지우고 싶었다고 말한다. 때문에 세상의 변두리로 사는 이들의 삶을 찾아 나섰고 유람선 선장, 돛배 어부, 칼갈이, 혁필 화가, 우표 장수, 다방 마담, 장의사, 뻥튀기 장수 등 오래된 것들과 함께하는 인생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책은, 남들은 잘 선택하지 않는 직업을 고결하게 수행해 가는 이들에게는 직(職)의 장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생(生)의 장인으로서의 면모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들의 인생은 ‘고(苦)’의 연속이지만, 항상 오늘을 무사히 보낸 것을 감사하며 자족할 줄 아는 미덕을 가지고 있다.

 

지은이는 오랫동안 한 길을 걸어온 사람들을 통해 ‘견디는 힘’이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어쩔 수 없이, 몸의 일부로 만들어져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매일 아침 화덕에 불을 피우면서 몸과 마음을 바라본 후 작업을 시작하는 대장장이와 직접 갈은 칼과 가위로만 머리를 자르는 이발사의 장인 정신은 돈만 많이 벌면 당장 일을 관두고 싶다고 말하는 직업관 없는 세대를 반성하게 만든다.

 

그들은 ‘정직하게 보낸 하루’가 어제의 아픔을 잊게 하고, 내일의 희망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게 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