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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삐딱하지만, 나름 멋진 여행이론
    사회 2013. 3. 29. 23:52

    [철학자의 여행법]

     

    사람이 살아가면서 시시각각 부딪히는 문제들은 대부분 정답을 찾기가 곤란한 것 투성이다. 그리고 이런 질문들에 답을 찾아주는 것이 철학의 역할이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철학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그동안 우리는 시험 때 외에는 실생활에 쓸모없는 내용들로만 이뤄진 철학을 주입당해 왔을 뿐이다. 무엇보다 사회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을 법한, 우리의 삶과는 아무런 관련 없어 보이는 ‘죽은’ 철학들과 철학자들이 철학의 전부인 양 소개받아왔다는 것이 우리를 ‘철학하기’와 더욱 멀어지게 만들었다.

     


    <철학자의 여행법> 미셀 옹프레 지음, 강현주 옮김, 세상의모든길들 펴냄

    여기 철학을 고리타분하게 접하기를 원치 않는 프랑스 철학가가 있다. 바로 미셀 옹프레다. 그는 누구나 호기심을 가질 만한 질문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철학하는 방법을 체득시키는데 심혈을 기울여왔다.

     

    옹프레는 철학을 통해 세상을 읽어냄으로써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발견하고, 삶의 계획을 발견하길 바라는 철학자가 가운데 하나다.

     

    그는 현실이 가지고 있는 본질과 주변을 좀 더 명확히 이해하게 하기 위해 인간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더불어 살아야 하는지, 나아가 우리는 우리의 현실 사회를 무엇을 통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에 대해 연구해왔다.

     

    연구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몇 가지 흥미로운 질문들을 던지고 그 질문들을 어떻게 철학적으로 고찰해야 하는지를 이야기로 풀어내는 식이다. 최근 저작인 <철학자의 여행법>은 이러한 연구결과를 모아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행하는 자 vs 정착한 자'. 서로 대립하며 역사를 움직여 온 두 개의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옹프레는 이 명제를 정치경제학이 아닌 여행론의 화두로 삼는다. 그는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가 아닌 ‘이동과 정착’의 면에서 접근한다. 이를 통해 인류의 복잡했던 역사를 ‘유랑하는 여행자들의 세계주의와 정착한 농민들의 민족주의 사이의 끊임없는 대립’으로 간단히 정의내린다.

     

    이들의 대립은 아득한 신석기 시대부터 가장 현대적인 형태를 한 제국주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줄곧 역사를 움직여 왔다. 이들의 대립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유럽인을 비롯한 인류 대부분의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옹프레는 두 세력의 대립을 묘사한 여러 서사들 가운데 구약의 카인과 아벨 이야기에 집중한다. 이는 양을 키우며 이동하는 사람(카인)과 농사를 지으며 한곳에 머무르는 사람(아벨) 사이의 대립으로 풀이된다. 신은 아우를 죽인 카인을 저주하며 그에게 영원히 떠돌아다니라는 형벌을 내렸고, 이때부터 인류는 되돌아오지 않는 여행을 신으로부터의 처벌로 여기게 됐다는 식이다.

     

    실제로 모든 통치 이데올로기는 유목민들을 통제하고 지배하며 폭력을 휘둘러 왔다. 정착한 아리아족의 이념이었던 나치즘은 방랑하는 유목민과 유대인을 적으로 지목했고, 러시아의 스탈린주의자들 역시 같은 이유로 남시베리아와 코카서스의 유목민들을 학살했다. 오늘날 자본주의 역시 사회가 거부하는 개인들에게 방랑과 거주지 박탈, 실업 같은 형벌을 내리고 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이 말은 곧, 여행자들이 그만큼 사회에 대해 저항적이라는 의미가 된다. 그들은 이방인으 살아왔던 사회보다 자신들의 자유로운 성향을 더 사랑하며, 도시의 안정성보다 자신들의 자율성을 더 소중하게 생각한다.

     

    여행을 선택하는 일은 스스로를 가두고 통제하던 것, 예를 들면 일이나 가족, 고향 같은 가장 명백해 보이는 족쇄에 대해서 형을 선고하는 것과 같다.

    일단 자신이 유목민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다시 떠나게 될 것이며, 가장 최근에 끝낸 여행이 마지막 여행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죽음이 우리를 데려가기 위하여 우리의 여정을 방해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말이다.

     

    옹프레는 이 책에서 유명한 작가나 여행가들의 여행론에 대해서도 쓴 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지나간 과거 속에 존재하는, 금지된 있는 장소를 갈구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일갈한다.

     

    “장기간에 걸쳐 한 지역의 언어를 배우고 현지에 머무르며 원주민의 삶을 경험하는 게 참다운 여행”이라는 주장에 대해, 그는 “대체 어떤 목적에서 그런 여행을 해야 하는 것일까?”라고 응수한다. 한 나라에 대한 이해는 얼마나 긴 시간을 투자했느냐가 아니라 때로는 순수한 주체성에서 비롯된, 짧지만 강력하고 비이성적이고 본능적인 명령에 따라 이뤄진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오랫동안 많은 이들에게 당연하게 여겨져 온 낭만적 여행론에 쐐기를 박는 그의 비판은 비행기 예찬에서 극에 달한다. 그는 비행기를 보면서 파시즘에 반대했던 마리네티의 미래지향적 시를 떠올린다.

     

    비행기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또 다른 이해를 창조하는 데 기여함으로써 새로운 형이상학을 만들어 냈다. 비행기가 생기기 전에 칸트의 선험적 감성의 형식들(시간과 공간)은 철학적으로 추론되었다. 비행기가 생긴 이후엔 경험적으로 확인되었다. 시간은 곧 공간이고 속도이고 이동이며 육체적·주관적 인식이나 개인적·개별적 감각과 마찬가지로 ‘사이’ 속을 흐른다는 것, 절대적 시간은 존재하지 않으며 영원성의 맥락에서는 시간이라는 개념도 없고 공간의 이동도 없다는 것, 그러나 순수한 자의식은 다양한 변화들을 포착한다는 것을 말이다.

    여행자는 이론적인 능력보다는 시각적인 능력을 더 필요로 한다. 시각적 능력을 가지고 있는 여행자, 즉 방랑하는 예술가는 마치 예언자처럼 보고 알게 된다. 자연스러운 충동에 의해서 아무런 설명 없이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여행자는 스피노자의 범주에서 세 번째 단계의 인식, 즉 사물의 본질에 대한 즉각적인 통찰과 직관을 실행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옹프레는 이 책에서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여러 철학자들의 사상적 가치를 시대를 넘다들며 펼쳐 보인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같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 니체와 하이데거와 들뢰즈 같은 서양철학자들, 나아가서는 작가들, 예술가들, 여행가들을 적절한 때 등장시키며 한 단계 높은 가치를 지닌 자신만의 ‘여행론’을 설파한다.



    한주연 기자 <함께하는 우리들의 세상이야기 ⓒ지데일리 gdaily4u@gmail.com>



    철학자의 여행법

    저자
    미셸 옹프레 지음
    출판사
    세상의모든길들 | 2013-03-1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역사를 보는 새로운 관점 ; 여행하는 자 Vs 정착한 자서로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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