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속도, 행복의 방향]


“열심히 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도의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언제나 이 같은 말을 입에 달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약 그 결과가 기대했던 것에 미치지 못할 경우에는 우리는 자신을 그런 상황으로 몰아간 시스템에 질문을 던지기보다는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며 자기 안으로만 몰입해간다.


그러나 이렇게 시스템에 얽매여 살아가는 삶이 정말 행복한 걸까. 자신도 모르게 그저 시스템에 휩쓸려 강박적으로 스스로를 몰아가지만, 오히려 공허한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성공하지 않으면 행복해질 수 없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지만, 점점 중심을 잃고 흔들리기만 하는 것은 왜일까.


국내에 ‘걷기 여행’ 붐을 일으킨 김남희와 슬로라이프라는 개념을 처음 제안한 일본의 환경운동가 쓰지 신이치가 함께 길을 나섰다. ‘느리기에 행복한 삶’이라는 지향은 같아도 한국인과 일본인, 여자와 남자라는 시각의 차이를 가진 두 사람은 1년간 함께 걸으며 지금까지 살아온 삶, 그리고 앞으로 새롭게 걸어갈 길을 <삶의 속도, 행복의 방향>에서 풀어놓는다.


▴<삶의 속도 행복의 방향> 김남희‧쓰지 신이치 지음, 조경국 사진, 전새롬 옮김, 문학동네 펴냄


❐ 당신의 삶의 속도는 얼마인가요?


내가 쌓아온 성 바깥으로 나가 그 성을 균열시키고 흔드는 만남에 나를 내맡기기. 그런 만남을 통해 새롭고 긍정적인 기운을 내 안에 가득 채우기. 그렇게 돌아와 이곳에서 살아갈 힘을 얻는 게 내 여행의 유일한 목적이자 바람이었다. 그런 면에서 쓰지 신이치 선생님과 함께한 여행은 언제나 에너지를 가득 채우는 시간이었다. 나를 혹사하는 자기 긍정이 아닌, 내가 지구 위의 다른 모든 생명처럼 약하고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긍정하는 것. 내 안에 생존을 위한 힘이 이미 내재되어 있고, 내가 살아갈 만한 가치 있는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 그 인정 위에서 내가 나 자신과 맺은 관계를, 이웃과 맺은 관계를, 자연과 맺은 관계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동아시아의 평화와 환경 문제를 고민하는 한일 공동 NGO 교류 행사 ‘피스 앤드 그린 보트(Peace&Green Boat)’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좋은 동료이자 친구가 된다. 이후 물질적으로 풍요롭다고 할 수는 없지만 행복지수는 여느 나라보다 높은 부탄을 함께 여행하며 “당신은 행복한가, 당신에게 행복은 어떤 의미인가?”라는 물음을 품게 된다.


이어 두 사람은 홋카이도, 안동, 오사카와 나라, 지리산을 거쳐 강원도와 제주도까지 여행하며 타인의 시선이나 경제적인 풍요 때문이 아닌,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삶을 선택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삶의 속도’와 ‘행복의 방향’에 대한 해답을 찾아 나선다.


아마추어로 산다는 것. 그건 실수해도 괜찮고, 수준이 좀 떨어져도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닐까. 내가 재밌으면 되는 것 아닐까. 아마추어의 힘 뺀 자세야말로 우리 삶을 풍부하게 만드는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소수의 전문가에게 의지하는 사회가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아마추어가 활약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나는 믿는다. 가수가 아닌 사람이 밴드를 만들어 노래하고, 목수가 아닌 이가 망치를 두드려 무언가를 만들고, 농부가 아닌 이가 농작물을 키우며 살아가는 게 자연스러운 사회. 요리사가 시를 쓰고, 농부가 그림을 그리고, 교사가 춤을 추는 일이 특별하지 않은 사회는 얼마나 근사할까.


두 지은이는 스트레스에 눌린 사회에서 벗어나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엘리트 코스에서 벗어나 산속에서 살다 제주도에서 지속가능한 ‘새로운 삶의 방식’을 모색하는 부부, 신문사 사진기자 출신으로 펜션을 운영하는 진동 2반 반장님, 생계를 위한 최소한의 노동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취미를 위해 사용하며 낡은 집을 제 손으로 정성껏 손보며 살아가는 부부, 귀농해 산촌유학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부부 등을 만난다. 이들은 두 지은이이게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강변하지 않는다.


다만 강한 척하지 않아도 괜찮고, 실수를 저지르고 실패를 반복해도 괜찮다는 것을, 어쩔 수 없는 일들은 현명하게 포기하고, 현대인을 압박하기만 할 뿐인 ‘긍정의 힘’이라는 이상한 최면에서 이제는 풀려나야 한다는 것을 자신들의 삶으로서 몸소 보여줄 뿐이다.


안동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외지인들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이 전통을 보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여인들이 자신의 삶을 희생했는지를. 솔직히 나는 아직도 회의적이다. 이렇게 누군가의 일방적인 희생을 필요로 하는 전통이 원형대로 지켜져야만 하는지에 대해. 다른 방식은 없는 걸까. 하지만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은 없다. 한옥의 아름다움을 예찬하지만 겨울의 추위를 견딜 자신이 없고, 한복의 색과 선을 곱다 여기지만 그 불편한 옷을 입고 돌아다닐 자신은 없으니. 나는 여전히 여행하는 사람으로, 이방인으로, 전통문화를 들여다볼 뿐이다. 당연히 내 시선도, 애정도 지극히 표피적이고 제한적이다. 나와 전통적 삶 사이의 화해는 그렇기에 위태롭고 피상적이다. 진정한 화해는 그 가치의 일부라도 내 삶에 구현하며 살아갈 때에야 이루어질 것이다.


결혼을 해서 며느리, 아내, 엄마로서 가족에 얽매이는 삶이 아닌 자유로운 개인의 삶을 택했던 김남희는 세상을 떠돌며 다른 나라의 전통과 문화를 들여다보면서 거꾸로 우리 것에 대한 궁금증을 품는다.


또한 옛 전통의 마지막 보루라 할 수 있을 안동의 농암종택에서 지내면서 전통문화를 모두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는 힘들지만 전통문화를 고수하며 살아가는 삶이나 고향, 제사 같은 전통적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한다.


이와 함께 그 연장선상에서 민족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이어진다. 한국와 일본 어느 곳도 조국이라 말할 수 없기에 자신을 ‘재일오사카인’이라 지칭하며 국적에 얽매이기보다는 약한 이와의 연대를 꿈꾸는 자이니치 조박의 이야기를 통해 김남희는 민족과 국가의 경계를 넘어 타인의 아픔에 공명할 수 있는 삶을 꿈꾼다. 국가와 민족이라는 경계로 서로를 구분 짓기보다 누군가의 친구이자 연인이고 자식일 그들을 나와 같은 고통과 슬픔을 지닌 얼굴로 기억하고자 한다.


쓰지 신이치의 경우 이 문제는 좀더 복합적이면서도 직접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한국에 대해 전범의 나라에서 태어난 일본인으로서 원죄와도 같은 죄책감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그에게 한국은 아버지의 나라, 다시 말해 ‘고향’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그의 한국여행이 더 특별하다.


같음과 다름, 가까움과 멂이라는 이항대립이 내면에 공존하기에 그에게 한국은 애틋하면서도 씁쓸한 나라다. 황해도 출신으로 쓰지 신이치가 성인이 될 때까지 자신이 조선인임을 자식들에게 알려주지 않았지만, 몸속에 흐르는 조선인의 피를 믿으라고 그것만으로 이미 조선인이라고 말했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고향 땅은 밟지 못했지만, 1년간 과거의 아픔이 스민 장소를 돌아보며 그는 아버지에게 한국이 어떤 곳이었을지 다시금 반문하는 시간을 갖는다.


❐ 새로운 경제의 대안은 '슬로비즈니스'에 있다


직업을 찾지 말고, 당신만의 직업을 창조하세요. 상상력과 창조력을 동원해 자신의 일을 찾는 거죠. 정원사, 시인, 농부, 요리사가 되세요. 우리는 늘 누군가 직업을 주기를 기대해왔죠. 정부가, 회사가 나를 고용해주기를 원해왔죠. 그건 노예가 되고 도구가 되는 것이고 세뇌당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되고 싶은 존재가 되세요. 삶을 통해서 찾아내세요. 그 길에서 여러분을 기다릴 문제와 어려움을 환영하십시오. 쉽게 살기를 기대하지 마십시오. 어려움을 통과하지 않으면 강해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지닌 창조력을 이용할 수 있는 기회이니 문제가 생겼을 때 행복해하십시오. 여러분은 혁명가입니다. 세계를 변화시키는 법은 자기 자신이 변화시키고 싶은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정신적인 여유가 있는 삶을 꿈꾸면서도 손에 쥔 물질적인 것들을 내려놓고 보이지 않는 행복을 거머쥐는 삶에 쉽게 다가서지 못한다. 그런 이들에게 두 지은이는 ‘슬로비즈니스’라는 ‘지속가능한 비즈니스’를 제안한다. 그 시작으로 홋카이도에서 정신장애인들이 ‘이익이 나지 않는 것을 소중하게’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설립한 ‘베델의 집’을 소개한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책과 영화로 만들고, 직접 꾸민 카페 운영, 다시마 판매 등 여러 가지 사업을 통해 해마다 1억 엔이 훌쩍 넘게 매출을 올리는 베델의 집.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돈 때문이 아니라 마을을 위해, 사회를 위해 무언가 하고 싶었기에 이런 사업을 시작했다. 그저 사회의 일원이 되고 싶었기에 병이 있는 자신들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 사업으로 이어진 경우다.


베델의 집이 약자들의 연대 공동체라면 개인 규모로 슬로비즈니스를 실현하는 이들도 있다. 조직폭력배에서 영화 연출을 공부하는 학생으로, 그러다 농사꾼에서 생협 직원으로 거기서 다시 공정무역을 시작한 유이치 씨, 부모에게 버림받은 문제아에서 말(馬)을 통해 스스로 치유를 받고 일본 제일의 말 치료사가 된 요리타 씨, 생선과 육류를 제외하고 자신이 먹는 쌀과 채소를 전부 잡초조차 뽑지 않는 자연농법으로 직접 생산하는 가와구치 씨 등을 만나 새로운 삶의 방식, 새로운 사업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이를 통해 기존의 패러다임에 구속되기보다는 자신만의 힘과 지혜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자본주의 사회를 향한 발걸음을 내딛는다.


1년간 함께 여행한 뒤 1년간 따로 또 같이 집필하며 두 사람은 여행을 다시한번 반추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람을 만났지만 김남희와 쓰지 신이치의 글은 다른 빛깔이다. 김남희의 글이 따뜻하고 섬세한 에너지로 차 있다면, 쓰지 신이치의 글은 이성적이고 냉철하지만 포용력이 있다.


같은 방향으로 걸어간 하나의 여행이지만 그 시선이 다르기에 두 개의 여행 같고, 또 별개의 여행 같지만 결국에는 하나로 이어지는 이 책은 마음의 여유 없이 오늘날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한 박자 쉬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계기를 마련해주기에 충분하다.


손정우 기자 <함께하는 우리들의 세상이야기 ⓒ지데일리 gdaily4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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