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은 달을 보는 것입니다. 만월이었다가 줄어들고 없어지는 달의 변화하는 모습을 보는 게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제게는 유일한 하루의 변화이니까요.


사진_달달한 인생ㅣ지현곤 지음ㅣ생각의나무 펴냄.jpg 사람 세 명이 들어가면 꽉 차는 좁은 방. 그곳에는 40여 년을 외출도 거의 하지 않은 채 지내온 한 남자가 있다. 달 보는 게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이 남자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척추결핵으로 하반신이 마비된 후 바깥출입을 포기하고 만화책을 베껴가며 홀로 그림을 그렸다.


쪽방에 누워서 왼손으로 힘겹게 그린 그림은 지난 1994년 대전국제만화전 대상을 시작, 그 다음해엔 국제서울만화전 대상의 영예를 안게 된다. 이후 2008년엔 한국 카툰 작가로는 처음으로 뉴욕의 아트게이트 갤러리 초청으로 단독 전시회를 열었다. 당시 소개된 모든 작품이 한 달여 만에 판매되는 기록을 남겼다. 그의 작품은 아픔을 이겨낸 따뜻하고 깊은 울림이 있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다. 그는 바로 세계적인 카투니스트 지현곤이다.

   

≪달달한 인생≫은 장애인으로서, 작가로서, 그리고 평범한 한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지현곤의 이야기다.


책엔 그동안 소개된 카툰 작품은 물론이고 <마음> <피아니스트> <대나무> 등 책을 통해 처음 공개되는 신작도 소개된다. 카툰과 관련된 짧지만 여운을 주는 작가의 짤막한 작품설명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 외에도 지은이가 사진기로 직접 찍은 일상풍경, 마우스로 그린 낙서 등이 함께 담겨 있다.


좁은 방에서 살았다고 세상을 보는 눈까지 좁을까? 오히려 단칸방에서 이뤄낸 지은이의 눈부신 상상력은 각박하고 불안한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평화와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며 세계 미술의 중심인 뉴욕까지 전해졌다. 그는 자신의 삶이 극적인 구조가 없어 심심한 삶이라 평하지만 그의 삶은 그 어떤 드라마보다 눈부시다. 갑자기 궁금해진다. 달을 보며 꿈꾸었던 달달한 그의 인생 이야기들이.


어떤 날은 달을 보는 게 너무 좋아 그림 그리기를 멈추고 계속 달만 봤다는 지은이. 그는 비록 남의 손을 빌리지 않으면 몸을 움직이기도 불편한 장애인이다. 그렇지만 그에게 장애는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갖고 있는 트라우마 중 하나이며 극복의 대상이 아닌 삶의 한 부분일 뿐이다.


지은이는 집안환경이 그다지 넉넉하지 못했다. 때문에 책엔 장애를 적극적으로 극복하는 내용은 없다. 대신 자신의 운명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기어코 혼자 있는 방법을 택한, 방 안에서 면벽 수련하는 한 남자의 독특한 삶을 엿볼 수 있다.


우리에겐 삶을 달달하게 할

인생의 각설탕이 필요하다


‘만약’이 현실로 될 수 없는, 꿈조차 꿀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지은이는 자신의 꿈이 지나가는 것을 보지 않고 조용히 견뎌내며 물 흐르듯 살아왔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상의 소소한 행복들을 만난다. 망원경으로 밤하늘을 볼 때, 어린 조카아이가 정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큰아빠, 왜 안자요?”라고 물을 때, 누군가에게 해바라기 씨앗을 선물 받았을 때 그런 순간들이 그에게는 하나의 감동이자 삶의 선물이다. 그는 “이미 불행한 사람은 없다. 함부로 남을 불행한 사람으로 만들지 말 것. 전혀 불행하지 않았던 그를 불행한 존재로 못박아버리는 건 너무 잔인하다”고 이야기한다. 그에게 장애는 그리 큰 걸림돌이 아니다. 몸이 불편하다고 해서 마음까지 장애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기에. 그는 오히려 자신이 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만화가 없었다면 끔찍하거든요. 당신의 인생을 달달하게 할, 당신의 마음속 허기를 채워줄 무언가를 찾으세요. 그리고 당신만의 기적을 만드세요.” 지은이는 이제껏 은둔형 삶을 살며 세상과 큰 접촉을 피하며 살았지만(서울이나 뉴욕에서 전시회를 열었을 때조차 주위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참석하지 않았다) 자신의 작품에 있어서는 장인정신을 갖고 커다란 공을 들이기로 유명하다. 작품 하나를 그리는 데에 한 달 이상을 소요한다.


지금의 카툰 작가 지현곤은 그의 삶이 이뤄낸 결과다. 기승전결의 이야기 구조를 갖춘 수백 페이지의 만화를 그리기란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버거운 일이기에 카툰이 가장 적합했다. 고작해야 펜촉 몇 개와 잉크, 연필 몇 자루로 그리고 지우고 또 채우는 게 그의 작업의 전부이지만 그가 작가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그 누구보다도 뚜렷하고 자유롭다. 그는 작업을 할 때 ‘풍자적인 표현에 긍정적인 그림, 극한 상황에서의 마지막 유머나 상황 반전’을 특히 신경 쓴다고 한다. 그의 작품은 그의 삶 속에 녹아 있는 진정성과 깊은 울림으로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는 평을 받고 있다.


“내가 언제 계획하여 오늘날까지 살아왔던가. 물 흐르듯이 놓아두다 보면, 삶은 늘 그렇듯 나를 원하는 또 다른 어딘가로 어떤 형태로든 흘러갈 터이니, 그리하여 언젠가는 ‘아, 이제 드디어 방학이다’하고 두 팔 벌려 기뻐할 순간이 오지 않을까.” 지은이는 이야기한다. 내 생애 가장 달달한 순간은 지금이라고, 방학을 맞이하려면 숙제를 끝내야 하듯 나 또한 나만의 방법으로 숙제를 열심히 풀고 있는 중이라고.


책은 꿈이 있어 아름다운 한 남자의 삶을 통해 삶의 의미와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