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나 신문에서 종종 접하게 되는 일이 있다. 바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끊임없는 대립상황이다.


사진_팔레스타인에 물들다ㅣ안영민 지음ㅣ책으로여는세상 펴냄.jpg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왜 싸우는지, 왜 폭탄을 터뜨리는지,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다쳐야 하는지, 도대체 누구의 잘못인지 알지 못한다. 그저 안타까운 마음으로 뉴스를 보다가 이내 잊어버리기 일쑤다. 그러나 그 무언가 죄책감으로 마음 한 구석이 찝찝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때로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것이 삶을 바꿔놓기도 한다. 우연히 읽은 책 한 권, 누군가의 말 한마디, 예기치 못한 만남, 갑자기 가슴에 와 박히는 작은 사진 한 장…. 이런 것들로 삶이 송두리째 달라지는 것, 그것이 인생이다. 한 남자는 어느 날 신문에서 사진 한 장을 보게 됐고, 그만 그 사진이 가슴 한 켠 깊은 곳에 남게 된다. 사진은 팔레스타인 아이가 이스라엘 군인의 총에 맞아 죽은 사진이었다.

 

팔레스타인 지도팔레스타인이 중동 어디쯤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 세계지도를 펴놓고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팔레스타인은 상상 속에서 존재하는 땅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을 찾았다면 팔레스타인을 찾은 것입니다. 다만 현재 그 땅을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기 때문에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은 지도 위에서 지워져버렸습니다. 강자가 점령한 곳, 그래서 약자의 이름은 지도 위에 없습니다.

현재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고향에서 쫓겨난 채 가자 지구와 서안 지구 그리고 전 세계의 난민촌에서 고달픈 하루하루를 삶에 대한 희망으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남자는 그때부터 팔레스타인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팔레스타인의 억울한 현실을 알게 됐다. 또 이를 한국 사람들에게 알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2006년과 2009년엔 팔레스타인으로 날아가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함께 지내며 그들의 삶이 어떤 것인지 몸으로 알아갔다.


그 남자 안영민은 ≪팔레스타인에 물들다≫에서 만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뉴스나 신문이나 어려운 책을 통해서가 아닌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하루하루 삶을 통해 만나는 팔레스타인의 진실된 이야기를.


무슬림들이 이스라엘 군인들을 향해 돌을 던지고 총을 쏘며 싸우는 이유는 자기들이 무슬림이기 때문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사람으로서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얻어맞고, 잡혀가고, 감옥에 갇히고 죽는 것에 대항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억압에 맞서려면 저항의 길을 찾고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야 하는데 그 길을 종교에서 찾는 사람들이 있는 것뿐이다. 대표적인 것이 하마스 같은 조직이다. (…)

이곳 사람들이 자신을 무슬림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에게 “한국 사람이에요?”라고 물었을 때 “네, 한국 사람이에요.”라고 대답하는 것과 비슷하다.     


 

지은이는 팔레스타인의 한 시민단체를 통해 ‘와엘’이라는 40대 노총각을 소개받고 그의 집에서 지내게 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똑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 그는 허름한 칠면조 농장에서 함께 땀 흘려 일하고, 저녁이면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맛있는 것을 만들어 먹고, 올리브를 수확하러 밭에 나가고, 길을 지날 때마다 이스라엘이 만든 검문소에서 몸 검사와 신분증 검사를 받고, 이스라엘이 마을에 둘러친 고립장벽 때문에 가까운 길을 두고 멀리 돌아가고, 늦은 밤 갑자기 대문을 두드리는 군인들 소리에 놀라 문을 걸어 잠그고, 이스라엘이 전기를 끊어버려 촛불 아래 저녁을 먹는다.

 

인구가 5000명도 채 안 되는 팔레스타인 작은 시골 마을에서의 생활이 꼼꼼하게 그려진 이 책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지, 무슨 일을 해서 먹고 사는지, 그리고 이스라엘에 대한 그들의 생각은 어떤지에 대해 말한다. 나아가 미래에 대한 그들의 생각은 어떤지, 지난 60년간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가만히 그러나 깊게 엿볼 수 있게 해준다.


휴대폰을 들고 무작정 이발소로 가서 배터리가 떨어졌다고 하니 아무 걱정 말라고 했다. 그러고는 지나가는 사람을 불러 뭐라 뭐라 하자 잠시 뒤 그 사람이 충전기를 들고 왔다. 그런데 충전기가 내 휴대폰과는 다른 기종이었는지 맞지가 않았다. 그러자 이발소 아저씨는 여기저기 전화를 하고 지나가는 또 다른 사람한테 뭐라 뭐라 하더니 결국 맞는 충전기를 가져 와서 충전을 해주었다.

배터리 충전을 하는 동안 머리도 길고 해서 이발을 했다. 이발을 했으니 당연히 돈을 내야겠지. 호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얼마냐고 했더니 그냥 가라고 한다. 내가 어쩔 줄 몰라 하니 “괜찮아요. 우린 친구잖아요. 미니가 돈을 안내는 것이 내게는 더 좋아요.” 한다. 그러면서 커피나 한잔 하라고 한다.

(…) 더 나은 세상, 더 행복한 세상을 만들자고 하면서도 무언가에 끊임없이 쫒기며 서로의 가슴을 할퀴는 것까지 이제는 무덤덤해져버린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만들고 있는 세상은 과연 어떤 세상일까 싶은 생각에 나도 모르게 하늘을 쳐다보게 된다.


 

공중전화기를 찾는 지은이에게 다가와 자기 전화기를 쓰라고 건네는 팔레스타인 사람들, 몇 번 인사를 나눴다고 돈을 받지 않으려고 하는 빵가게 주인, 해거름이면 이집 저집에서 저녁 먹고 가라며 지은이를 부르는 동네 사람들. 이런 사람들 속에 묻혀 살면서 그는 서서히 팔레스타인에 물들어 간다. 마음 따뜻하고, 정 많고, 여유가 있고, 많은 것이 모자라고 여러 가지가 불편하지만 그래도 늘 웃고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고 만다.


그런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우리 마을에 와서 살아봤으니, 한국으로 돌아가면 우리가 테러리스트가 아니라고 꼭 이야기해 줘요”라고 말한다. 이에 지은이는 “그들이 당해야 했던 엄청난 마음고생이 느껴져 가슴이 저미고 만다”고 털어놓는다.


책은 팔레스타인의 소소한 일상들을 통해 팔레스타인 문제의 본질을 깨닫게 해주는 애잔하면서도 소중한 경험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