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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히 보이는 금융자본의 함정경제 2013. 5. 22. 11:29
[자본주의 특강]
“돈은 ‘장막’ 같은 것으로, 진짜 경제를 보려면 이것부터 열어젖혀야 합니다.”
자본주의의 역사는 광기, 패닉, 폭락의 빈도와 심도가 날로 증대해 온 역사라고 볼 수 있다. 그 가운데서도 순수한 금융 투기에 대해서는 자본주의 역사 전반에 걸쳐 늘 모종의 의심이 제기돼 왔다.
21세기 들어 지구적 차원의 자본주의의 문제는 갈수록 그 범위와 깊이가 확장되고 있다. 이제는 인간과 사회뿐 아니라 넓은 의미의 생태적 영역 전체가 그 영향권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자본주의의 역동성에 인간과 사회와 자연 전체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닌 상태가 된 것이다.
어쩌면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된 자본주의라는 현상에 대해 여러 사회과학 이론들은 이토록 무지한 상태에 놓이게 된 걸까. 주된 원인은 경제학이 다른 사회 연구와 분리되고, 그것이 엉뚱하게도 자연과학의 방법론을 모방해 사회현상과 동떨어진 채 독자적 인과 관계의 체계로서 ‘경제’라는 영역을 구성해 온 데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연구는 현실 시장경제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몇 가지 변수들 사이의 함수 관계로 환원해 마치 수학 방정식들을 재구성하는 작업으로 완전히 변모하게 됐다.
<자본주의 특강> 제프리 잉햄 지음, 홍기빈 옮김, 삼천리 펴냄
그동안 경제학자들이 내놓은 이야기는 기껏해야 100년 전 교과서에 나온 이야기를 고유명사와 숫자만 바꾸어 놓았을 뿐 21세기 자본주의 현실에 대해 이렇다 할 어떠한 설명도 찾지 못하고 있다. 세계적 규모의 금융 위기와 만성적 실업 사태가 지구 전체를 휘감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를 해명할 만한 제대로 된 자본주의 이론이 갖춰지지 않은 현재로서는 이 사태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만한 행동과 실천 방향도 찾을 길이 없다.
베버, 좀바르트, 슘페터, 폴라니, 베블런 래스키 같은 이들을 생각해 보자. 이들은 경제사상사에서는 전혀 다뤄지지 않았거나 아주 간단하게 다루고 넘어갈 뿐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경제학·정치학·사회학·사회심리학·인류학 등 학문 분과가 확실히 나뉘면서 이러한 경제학의 거장들을 떠안게 된 사회학·정치학·인류학계에서는 자본주의 연구에서 자신이 속한 학과의 울타리 안에 담을 수 있는 부분만 남겨 놓고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상 연구의 맥이 끊겼거나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본주의 특강>은 그동안 ‘경제학’이라는 패러다임에 갇혀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전혀 다루지 않았거나 등한시해 온 자본주의에 관한 여러 물음을 찾아 나선다. 지은이 제프리 잉햄 케임브리지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지구적 차원의 자본주의를 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고전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경제이론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 금융위기는 우연한 사고? … '예고된 결과'일 뿐
지은이는 애덤 스미스부터 마르크스, 베버, 슘페터, 케인스에 이르기까지 고전 경제이론을 살피고 난 뒤, 학문의 경계를 뛰어넘어 경제학·정치학·사회학·사회심리학·인류학적인 시각에서 지구적 시장 자본주의를 고찰해 나간다. 그러면서 서브프라임 부도 사태, 엔론 사건, 리먼브러더스 몰락 등 최근 미국의 금융 사태를 중점적으로 살핀다.
신자유주의적 지구화(Globalization)를 옹호하는 이들은 지구적 시장 자본주의가 부를 증대시켜 줄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좀 더 평등한 분배로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본다. 하지만 자유 시장경제를 확실하게 표방하고 있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 특히 미국과 영국에서 부의 불평등이 확대되는 경향이 극명하게 나타났다.
이들 나라의 하위 계층의 실질소득 증가율은 거의 정체 상태에 머무른 데 반해, 상위 1% 이하에 해당되는 최상위 계층에서는 유례없는 막대한 부을 거머쥐게 됐다. 엔론 사태를 통해 확인했듯, 이러한 현상은 화폐자본이 금융 부문, 특히 새로 생겨난 투기적 파생상품 시장과 기업 인수합병 시장에 집중되면서 자본주의의 ‘도박적’ 요소들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부의 평등한 분배를 실현할 것이라던 자본주의의 ‘지구화’는 글로벌 ‘금융화’로 나아가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면서 오히려 지구적 금융과 통화 위기의 원인만 제공한 셈이 됐다.
케인스는 자기 삶의 대부분을 자본주의를 구출하는 데 바치면서,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도박적’ 요소들을 철저하게 제한하고 통제해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투기와 노름을 구별해 자본주의 체제가 작동할 수 있도록 금융자산 거래에 긍정적인 기능을 부여한 것은 금융자본의 헤게모니가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게 된 시점에서야 이뤄졌고, 이마저도 여전히 금융자본에 대한 여러 의심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분명히 알아두어야 할 것은 자본주의의 ‘금융화’가 자본주의 금융 시스템의 기능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로 이는 세계 경제에서 가장 거대한 금융 시스템 중심지인 미국과 영국이 금융자본의 권력과 결탁해 이뤄낸 교묘한 전략의 산물이었다.
그 결과는 실로 참담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부도 사태 이후 촉발된 금융 시스템의 해체는 전 세계를 최악의 위기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여러 주요 국가들은 은행 시스템을 구제하는 데 수조 달러에 이르는 엄청난 비용을 지출하느라 재정 상태는 심각하게 악화됐고, 생산과 소비, 공공 서비스 등 사회경제 전반에 걸쳐 최악의 상황을 낳고 말았다. 언제나 가장 큰 고통을 겪게 되는 이들은 사회의 가장 빈곤한 계층들이었다.
사실상 정통 경제학을 신봉하는 주류 경제학계에서도 서브프라임 사태에 따른 엄청난 규모의 구제금융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커다란 충격이었다. 자유 시장경제의 효율성과 안정성을 설교하면서 금융시장 최고의 사제로 군림해 오던 앨런 그린스펀 역시 미국 의회에 불려 나가, 이제까지 자신이 믿고 있던 이론은 잘못된 것이었으며, 이 이데올로기에 대해 “흠결이 있는 것”이라고까지 공언한 바 있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금융시장이 근본적으로 효율성을 갖고 있다는 믿음을 고수하고 있다. 또 이러한 위기는 비합리적인 실수 또는 무작위적인 충격 때문에 어쩌다 일어난 ‘일탈’이기에 얼마든지 바로잡고 개혁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지은이의 입장은 다르다. 그는 자본주의 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되는 체제에서 이러한 사태들은 지극히 당연하게 나올 수밖에 없는 ‘예고된 결과’이고, 글로벌 ‘금융화’로 모든 족쇄에서 풀려난 화폐자본이 막대한 자기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데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그는 자본주의의 작동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에 대해 제아무리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책을 세운다 할지라도 현대자본주의에서 혼란과 불안정성은 피할 수 없다고 내다본다.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대체할 만한 뚜렷한 이론 체계가 없는 상태라면, 이런 태도로는 정치적 혼란만 불러일으킬 뿐 그 어떤 근본적인 대안도 만들어 내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 현대 금융자본의 베일을 벗긴다
이 책은 학문 분야를 뛰어넘어 자본주의라는 커다란 질문을 놓고 고민했던 정치경제학 또는 사회과학으로서의 풍모를 두루 갖추고 있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애덤 스미스, 카를 마르크스, 막스 베버, 조지프 슘페터, 존 메이너드 케인스 등 고전 이론가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를 둘러싼 사회적 관계와 제도를 포괄적으로 다룬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우선 자본주의를 설명하는 데 핵심적인 기여를 한 애덤 스미스, 마르크스, 베버, 슘페터, 케인스의 연구를 주축으로 자본주의의 작동 원리에 대한 큰 그림을 살펴본다.
이어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데 필요한 핵심적인 제도와 사회적 장치들로 옮겨 나간다. 여기서 지은이는 그 개별의 주제에 대해서도 수많은 이론과 논쟁들, 수백 년 동안 쌓여 온 역사적 진화 과정을 파고든다.
끝으로 2007년 이후 미국발 서브프라임 부도 사태가 오늘날 현대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어떤 위기 상황으로 몰고 갔는지를 역사적·제도적 분석의 틀에 입각, 이 구체적 현실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이 책에서 특히 주목할 만 한 점은 ‘현대 금융자본주의의 복잡한 제도’를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도록 현실에 맞게 체계적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1990년대 이후 새롭게 등장한 지구적 금융자본주의는 기존 ‘고전적’ 산업자본주의와 분명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현재 주류 경제학 이론은 이에 대해 만족스런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금융’과 ‘실물경제’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전통적 정치경제학의 물질주의적 편향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자본주의의 이론을 구축하기 위해 새로운 분석의 틀을 제시하기보다는 그저 금융의 비대화 현상, 즉 ‘금융화’의 여러 양상을 지적하고 묘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은이는 금융을 그저 옛날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자본주의의 겉에 둘러싸인 ‘베일’로 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가장 본질적인 개념으로 ‘금융화’ 현상을 바라보고, 금융자본주의가 작동하기 위해 어떤 제도적 장치와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하는가라는 관점에서 접근한다.
그는 특히 이제껏 주변적인 것 정도로 치부되던 기업 지배, 자본 시장, 화폐 등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자본주의가 현실과 어떤 사회적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를 좀 더 입체적으로 들여다본다.
이 책을 번역한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홍기빈 소장은 “학계의 전문 연구자들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분명 무엇인가 잘못됐다고 문제의식을 느끼는 누구라도 관심을 가질 만한 책”이라고 소개했다.
한주연 기자 <함께하는 우리들의 세상이야기 ⓒ지데일리 gdaily4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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