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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었던 소년, 지금은?라이프 2013. 6. 20. 15:24
[나는 좀 더 안전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
“바보가 있는 쪽이 성공한다. 자꾸 딴 길로 가는 멍청한 개미가 새로운 먹이 이동 경로를 찾는다.”
사회성 곤충 분야의 세계적인 진화 생물학자인 하게가와 에이스케 박사가 개미 사회를 면밀히 관찰해 집대성한 <일하지 않는 개미>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그는 경로를 이탈한 개미가 새로운 먹이를 찾는 것에 빗대어 우리가 알지 못했던 개미사회와 그 개체들의 다양성(Diversity)에 주목한다.
<나는 좀 더 안전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 박재현 지음, 공명 펴냄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 특히 젊은 세대의 중심에 떠다니는 스펙열풍. 어쩌면 스펙은 인간사회 내 다양성을 철저하게 배제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스펙(Spec)은 영어단어 ‘Specification’의 줄임말로, 원래 어떤 제품과 결합했을 때 가장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일종의 ‘제품 사용설명서’를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젊은 구직자들 사이에서 스펙은 특별한 뜻을 가지고 있다. 학력과 학점, 토익점수 등의 영어 자격증이나 그 밖의 관련 자격증 등을 총칭하는 말로 굳어져 있다. 또 최근 몇 년 동안 마치 구직자가 자신이 원하는 기업에 성공적으로 입사하기 위한 일종의 ‘만능키’처럼 인식돼 왔다. 상당수 사람들은 입을 맞추기라도 한 양 “성공하고 싶다면 최고의 학벌과 스펙부터 갖춰라”고 한목소리를 내기까지도 한다.
어눌한 우리 말 발음과 남들에 비해 전혀 뛰어나지 않았던 초ㆍ중ㆍ고등학교 성적, 재수로 대학 입학, 그리고 1년여 동안 좀처럼 헤어나지 못했던 지독한 게임 중독…. 전혀 내세울 만하지 않은, 아니 오히려 감출 수 있다면 감추고 싶은 이 모든 부정적인 요소들조차 나의 인생 스토리의 소중한 일부이자 중요한 ‘스펙트럼’이다. 자신에게서 한 발 물러서서 ‘스펙’이 아닌 그 ‘스펙트럼’을 볼 수 있게 도와준 스승님, 친구들, 그리고 선후배들…. 내 인생의 소중한 멘토들 덕분에 내 안에 잠재돼 있던 타고난 근성과 열정을 바탕으로 ‘위기관리’라는, 이제까지 잘 알려져 있지 않던 분야의 전문가로서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유엔 보안담당관인 박재현도 한때는 남들처럼 스펙에 목숨을 걸다시피 한 적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는 그러나 JSA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제대한 뒤 대학원 재학 당시 한 교수의 ‘주자 성리학’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됐다고 한다. 이후 더 이상 스펙 따위에 연연하지 않게 됐으며 남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싸움이 아닌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했다고 털어놓는다.
그는 이 책에서 우리나라에 만연해 있는 ‘스펙 만능주의’에 대해 비판하면서, ‘스펙’이 아닌 ‘스펙트럼’을 보라고 주문한다. 자신이 가진 스펙트럼을 유심히 살펴보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그에 맞는 자격증이나 기술 훈련 등 꼭 필요한 스펙을 갖춰가는 것이 마땅한 순서라는 설명이다.
스펙트럼은 강점을 상징하는 스펙보다 넓은 의미를 가진다. 강점에 가려진 단점이 되는 부분, 남보다 뒤처지는 요소, 전혀 빛나지 않는 점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리고 이를 애써 감추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이나 세상 앞에 과감히 드러낼 때만이 빛을 발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세상살이를 하면서 좀 더 넓고 입체적인 잣대로 자신을 판단하고, 상대를 평가하며, 세상을 보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지은이는 전혀 내세울 만하지 않은, 아니 오히려 감출 수만 있다면 감추고 싶은 이 모든 부정적인 요소들조차 과감히 자신의 것으로 동화시켰다. 그리고 자신의 이런 철학과 신념, 소중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 순간에도 갈등과 방황, 좌절을 겪고 있는 이 땅의 젊은 세대에게 “스펙에 대한 강박관념을 과감히 버리고 좀 더 넓고 깊게 자신만의 스펙트럼을 보라”고 권한다.
자신이 누군가는 중요하지 않다
무엇을 할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유엔 진출을 꿈꾸는 많은 후배들에게서 내가 종종 발견하는 가장 큰 문제점은 자신이 왜 유엔에 진출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동기와 그 일을 향한 열정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부어 장차 이루고자 하는 그 일이 자신의 가슴을 뛰게 하지 않고 불꽃을 만들어내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 꿈을 이룰 수 있을까. 그리고 설령 그 꿈을 이룬다 한들 거기에서 무슨 보람과 성취감과 행복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 불꽃. 진정으로 관심이 있고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어서라도 반드시 이뤄내고 싶은 일이라면 가슴에 불꽃이 피어오르게 마련 아닐까. 그런 사람이라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과감히 용기를 내어 자신의 꿈에 도전할 것이다.
“미스터 박, 우릴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나는 좀 더 안전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케냐 나이로비의 유엔 보안대 작전담당관으로 150여명의 보안대원들을 통솔하며 1만여명 유엔직원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박재현의 삶의 기록이다.
실제로 그는 인생의 중요한 분기점마다 세상의 평범한 잣대로 보면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다소 엉뚱하고도 무모한 선택들을 주저 없이 해왔다. 그리고 그 궤적들은 지금의 그을 만들어냈다.
그는 과거 카투사 교육생 시절 남들은 모두 기피하는 JSA에 부모님의 완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과감히 자원했다. 미국의 조지타운대에서 안보 분야 석사 과정을 밟을 당시엔 의용소방대에 자원해 열정적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또 유엔 시험에 당당히 합격한 뒤 한국인 출신 유엔 직원이라면 누구나 탐낼 만한 자리인 안전보안국 정책조정국으로부터의 본부 발령 정식 요청을 정중히 거절, 안전을 보장받기 어려운 케냐의 나이로비 보안대 사무소로 날아갔다.
그러나 지금까지 다소 엉뚱하고 무모해 보이는 그의 선택과 결정들은 결코 충동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는 ‘좀 더 안전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어린 시절의 막연한 꿈과 ‘최고의 보안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어른이 돼서의 구체적인 꿈의 연장선상에서 필연적이고 운명적으로 선택된 길이었던 셈이다.
어린 시절, 소방대원의 근사한 제복과 웅장한 소방차에 매료돼 소방관을 꿈꾸고, 조금 막연하나마 ‘좀 더 안전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던 그의 소망이 비로소 제 궤도를 찾은 것이었다. 과거의 활동 모두가 이런 맥락에서 그 의미를 같이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은이는 유엔이 꿈의 종착역은 아니라고 한다. 유엔은 모든 사람이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을 향해, 지구 위에 폭력과 전쟁이 사라지는 그날을 향해 쉬지 않고 달려가고 있는 그의 ‘디딤돌’일 뿐이다.
한주연 기자 <함께하는 우리들의 세상이야기 ⓒ지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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