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고령화는 더 이상 노후 대비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재정을 좌우할 수도 있고 나아가 세계 경제 판도를 바꿀 수도 있는 문제다. <고령화 시대의 경제학>은 인구 고령화가 경제 문제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고령화가 거시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알아보고 있다.

 

사진_ 고령화 시대의 경제학ㅣ조지 매그너스 지음ㅣ홍지수 옮김ㅣ부키 펴냄.jpg 책은 생산 가능 인구가 줄어 고령 인구의 부양 부담이 늘어나는 문제, 저축 감소, 연금과 의료비 같은 고령화 관련 지출로 인한 정부의 공공 지출 증가 등 고령화가 초래하는 경제 문제들을 살피고, 고령화 시대에는 물가와 자산 가격 등 경제 지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검토하고 있다.

 

고령화는 한 국가 내, 사회 내, 세대 간 문제이기도 하지만, 자본과 노동이 무수히 이동하는 세계화 시대에는 국제 경제에도 영향을 끼친다. 책은 이와 관련해 고령화가 진행되는 선진국과 아직은 인구 연령이 젊은 개발도상국 사이에 어떤 차이가 생겨나고 이것이 세계 경제 판도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전망한다. 또 종교, 국제 안보, 세계화, 이민 증가, 기후 변화, 자원 고갈 등의 추세와 관련해서도 고령화를 분석한다.

 

고령화는 인구 구조 사상 새롭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인간의 기대 수명은 전례 없이 길어지고 출산율은 낮아지고 있으므로, 고령 인구 비율은 점점 느는 반면 이들을 경제적으로 뒷받침할 생산 가능 인구(15~64세 인구)수는 줄고 있다. 따라서 현재와 미래의 생산 가능 연령대는 자신들의 노후 자금은 물론 고령 인구 부양에 필요한 자금까지 짊어져야 한다.

 

그런데 고령화는 세대 간 문제로만 머무는 게 아니다. 나라마다 인구 연령 구조가 다르고 인구 증감률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고령화에 따른 비용 지출에서도 차이가 나며, 노동력을 공급하는 생산 가능 인구도 줄어드는 곳이 있고 남아도는 곳이 있다. 이에 따라 자본과 노동의 이동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공공 지출에서 인구의 연령 구조에 따라 민감하게 변하는 비용이 전체의 40~60%를 차지하므로 각 나라가 고령화에 얼마나 잘 대처하느냐에 따라 세계 경제의 판도까지도 바뀔 수 있다.

 

인구 고령화로 자산 가치가 완전히 붕괴된다는 증거는 거의 없지만, 고령화가 가져오는 경제적, 정치적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자산에 대한 장기적인 수익률이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가장 일차적인 이유는 노동력의 상대적인 희소성으로 인해 자본 수익률에 비해 노동 수익률(급여와 임금)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는 이렇게 되면 자산 가격 상승률이 둔화하고 기업의 배당금 성장도 둔화하며 전체적인 수익률이 낮아지게 된다. 그러나 물가가 상승하고 민간 부문과 공공 부문에서 재정적 압박이 심해지면 평균 이자율이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 만약, 그리고 실제로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면 자산의 실질 가치는 정체되거나 하락하게 된다. 고소득층은 이러한 사태에 대비할 능력이 충분하다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국가 연금이나 공공 자금으로 운영되는 의료보험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가구는, 특히 저소득층이나 중산층에게는 저축과 연금이 부족하면 심각한 문제가 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과 기업들은 앞으로 더 높은 세 부담을 짊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책은 “고령화는 경제 문제다”라는 기본적인 인식에서 출발한다. 거시 경제와 인구 구조 변화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 온 지은이 조지 매그너스는 “고령화 논란의 핵심은 돈”이라고 단언하면서 인구 고령화가 초래할 ‘거시 경제적 변화’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고령화 사회에서는 연금을 내는 만큼 받을 수 있을까? IMF와 OECD에 따르면, 현재 고령화와 관련해서 OECD 회원국들이 지출하는 비용은 GDP의 19~20% 수준인데 2050년이 되면 이 비율이 27%로 늘어난다. 고령화 관련 지출은 의료비, 장기 요양과 장애 수당 등 다양하지만 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항목은 역시 연금이다. 베이비 붐 세대가 줄줄이 은퇴하기 시작하면 적립 방식의 연금이든 부과 방식의 연금이든 이들에게 지급해야 하는 연금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따라서 노후 연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연금 재원 마련에 실패할 경우 정부의 재정 위기로까지 치달을 위험이 있다.

 

이미 많은 나라에서 법적 정년을 연장하고 연금 지급이 개시되는 연령을 늦추는 방향으로 연금 제도를 손질했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은퇴 전 수입 대비 연금 수령액(소득 대체율)을 줄이는 내용도 포함한다. 그러나 지은이는 어떤 식의 개혁이 이뤄지더라도 오늘날 은퇴하는 사람들이나 앞으로 은퇴할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연금 혜택은 이미 은퇴한 사람들이 받는 혜택보다 줄어드는 것은 피할 수 없다고 말한다.

 

지난 1990년부터 OECD 16개국이 연금 제도에 대대적인 손질을 가한 결과 가장 신참인 근로자들이 은퇴할 때 받을 혜택이 제도 변경 이전에 비해 25% 줄어들 전망이다. 게다가 적립 방식의 연금 제도에서는 근로자가 일찍부터 적립을 시작해야 하고 적립한 자금이 금융 시장에서 운용될 때 여러 위험 상황에 노출되기 때문에 가입 근로자가 은퇴할 때쯤 되면 기대했던 것보다 적은 연금을 손에 쥐게 될 수도 있다. 때문에 지은이는 현재와 미래의 근로자들은 베이비 붐 세대와는 달리 기업이나 정부가 주는 연금에 의존할 수 없기 때문에 은퇴에 대비해 더 많이 저축해야 한다고 말한다.

 

많은 나라들이 정년을 연장함으로써 생산 가능 인구를 노동 시장에 조금이라도 더 오래 묶어 두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총인구에서 노동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을 앞으로 30~40년 동안 현재와 같이 유지하려면 서구 사회는 정년을 3~10년까지 연장해야 하기 때문에, 정치적, 사회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많다. 이에 대해 지은이는 여성과 중·장년층인 55~64세의 경제 활동 참여율을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EU15(유럽 연합 출범 초기부터 회원국인 15개국)의 경우, 2006년 남성의 경제 활동 참여율은 73%인 데 반해, 여성은 58%, 중·장년층은 45%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이는 직장 내 성차별 및 연령차별을 없애고 여성이 직장 생활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며 고령 인구를 더 오래 고용하도록 고용주들을 설득시키는 일이 선행돼야 하므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노동력의 크기를 늘리는 게 여의치 않다면 노동자 한 사람의 단위 시간당 생산량을 늘리는 ‘생산성 향상’이 대안이다. 그러나 지은이는 이 또한 투자와 혁신이 이뤄지고 이를 재정적으로 뒷받침할 저축이 필요하며 법과 제도의 지원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빨리, 쉽게 향상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서구 사회는 신중하면서도 현실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 동서양 사이에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고 인구 구조상 전자는 유리한 고지에 서 있으며 후자는 취약해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동서가 상호 작용하는 방식을 규정하게 된다. 국제 사회는 미국, 일본, 유럽, 오세아니아와 더불어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중남미에서 새롭게 부상하는 경제 대국과 지역 강대국 들을 인정해야 한다. 국제기구를 개혁하고 강화해 개발도상국에 영향력과 무게를 실어 주어야 한다. 세계화 현상을 존중하고 개발도상국이 세계 무역과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서구 사회는 개발도상국을 대화에 참여시키고 지정학적 변화에서부터 기후 변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제에 대해 공동의 행동을 취해야 한다.


 

지은이는 노동력을 확충하기 위한 방법들이 결실을 거두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소요되고 지난한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사이 중·장년층은 일자리를 유지하기가 점점 힘들어질 것이라고 진단한다.

 

지은이는 고령화로 인해 공공 지출이 늘어나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이므로 그보다는 얼마나 빠르게 어느 정도나 늘 것인가가 관건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정년 연장이나 연금 과 의료보험 혜택을 줄이는 조치는 겨우 시작일 뿐이며 오히려 쉬운 축에 속한다고 말한다. 연금 제도 개혁만으로는 고령화 관련 지출 비용을 마련할 수 없고 그 부족분을 경제 성장을 달성해서 벌충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결국 각국 정부는 고령화에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공공 지출의 다른 부분을 추가적으로 줄이거나 절약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하며, 세금을 더 거둬들이거나 그래도 안 되면 국가 부채를 늘리는 것마저 감수할 전망이다.

 

지은이는 지난 몇 년 동안 대부분의 나라들이 개인과 기업에 대한 세금을 인하해 왔다면서, 이는 미래 세대가 짊어져야 할 고령화의 부담을 더 가중시키는 불합리한 정책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고령화 사회에서는 소득세를 인상하기보다는(고령화 사회에서는 저축액이 줄어드는 데 대한 부담이 큰데 소득세 인상은 저축 회피의 소지가 될 수 있기 때문) 소비세로 전환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다만 소비세는 역진세라 형편이 어려운 이들에게 불공평하므로 부유층, 고소득자, 기업에 높은 세율을 적용함으로써 소비세 전환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낼 것을 주문한다.

 

지은이는 궁극적으로 오늘날 국가의 역할이 또다시 확대돼야 한다고 말한다. 고령 인구와 여성의 고용을 늘리도록 기업과 고용주를 설득하고, 정년 연장이나 연금 지급을 늦추며, 이민 정책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고, 보건, 교육, 노동 시장 제도, 무역과 투자에 대한 개방 정도, 국가 저축과 조세 제도 등을 아우르는 전반적인 공공 정책에 변화가 필요한데, 이러한 문제를 자유 시장에 맡겨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국제적 차원에서도 무역과 자본 및 노동의 이동 문제, 기후 변화와 자원 부족 문제 등 고령화 사회와 맞물린 문제들의 해결책을 찾는 일도 시장이 아닌 정부 간의 다자간 협의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