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에겐 지난하고 어려운 과정일 수도 있으며, 넘어질 수도 있는 상황에 처한다. 건강한 몸으로 태어난 사람도 살다가 넘어지고 좌절해 일어설 의욕조차 잃어버릴 때가 있다. 하지만 좌절의 순간마다 아플 만큼 실컷 아프고는 툴툴 털고 일어나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을 우리는 접하게 된다.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ㅣ은진슬 지음ㅣ생각의나무 펴냄≪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는 서서히 시력을 잃고 사고로 사랑하던 피아노마저 칠 수 없게 된 피아니스트 은진슬의 청춘 분투기다.

 

:::나는 더 이상 회사에 다니지 못한다고, 남들만큼 돈을 벌 수 없다고, 일반적인 사회에 받아들여지지 못했기 때문에 엘리트 친구들에 비해 열등하다는 자기 연민과 멍청한 생각을 그만두었다. 비자발적이나마 삶이 나에게 자신의 역할을 인정해달라고 요구한 진화의 결과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자랑스러운 ‘백조’가 된 것이다.:::


 

이 책은 조금 다른 삶의 한가운데를 기쁠 때는 웃고, 슬플 때는 울며 솔직하고 당당하게 걸어가고 있는 ‘스와니스트’ 은진슬의 긍정적인 자기암시를 내포하고 있다. 여기서 스와니스트는 스완(Swan)과 피아니스트(Pianist)의 직업 접미사인 ‘ist’를 합성한 말이라고 한다. 여성실업자를 뜻하는 은어인 ‘백조’에 직업이라는 가치를 부여해 자유로운 자신의 현재 모습을 긍정하는 뜻을 담았다고 지은이는 이야기한다.

 

:::대학이란 곳은 또 다른 문제들로 저를 힘들게 했지만, 그래도 그런 일들은 나름대로 이해하고 용납할 수 있는 것들이었기에 맞서고 설득하고 이루어내는 과정에서 스릴과 성취감도 맛볼 수 있었으며 그래서 행복하기도 했습니다.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고, “네가 할 수 있겠니?”라고 묻는 교수님들의 우려를 노력으로 잠재워가는 것도 해볼 만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늘 그런 질문을 듣고 그 의문을 불식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삶 자체가 되어버리다 보니,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은진슬’이라는 존재를 증명하고 인정받기 위해 치열하게 공부하고 또 피아노를 쳐야 한다는 것이, 그래서 A학점을 받아야만 그 집단에 속할 수 있다는 슬픈 현실이 힘들기도 했습니다.:::


 

임신 7개월 만에 1.4킬로그램의 미숙아로 태어난 지은이는 인큐베이터에서의 산소 과다 공급으로 미숙아망막증에 걸려 시력을 잃었다고 한다. 안정적인 가정에서 잘 자라 점자 악보를 통째로 외워야 하는 등 각고의 노력 끝에 대학 기악과에 입학했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에서 남들과 다른 외모와 장애라는 핸디캡은 극복하기 쉬운 것이 아니었다. 학교에 장애를 가진 학우들의 쉼터를 만들고, 공부를 도와줄 학생을 직접 구해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는 등 주어진 모든 일들에 몸을 던져 매진했지만 미래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다고 지은이는 술회한다.

 

지은이는 눈이 잘 보이지 않아 생긴 사고로 발목을 다쳐 전문 피아니스트로서의 꿈을 접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경제를 책임지고 있던 아버지의 갑작스런 돌연사와 자신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온 몸과 마음을 황폐하게 만든 우울증은 자살시도로 이어져 급기야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그러나 지은이에게 희망의 불씨는 엄연히 존재했다. 지은이는 어려운 상황을 뒤로 하고 미국으로 건너간다. 그곳에서 사회복지정책을 공부한 뒤 귀국, 보컬 앙상블의 코디네이터 겸 반주자로 활동하는 한편 장애인의 권익을 위한 글쓰기 등 여러 활동을 하며 자신의 삶을 당차게 꾸리며 살고 있다.

 

:::나는 나 자신을 피아노를 더 이상 잘 연주할 수 없는 무능력하고 불쌍한 존재가 아니라, 피아니스트로서의 내 미천한 경험이나마 잘 살리고 종합하여 반주도 하고 좋은 음악회를 기획하고, 좋은 음악을 하려는 사람들을 돕는 사람의 좀더 유연한 시각으로 나를 정의하기로 했다. 욕심을 버리니 마음이 편해졌고, 이제는 내 아픈 첫사랑을 대면하는 것이 조금씩 덜 고통스러워지는 것도 같았다.:::


 

지은이가 이 책을 통해 전하는 긍정의 불은 따뜻한 정도가 아니다. 뜨겁고 힘이 세다. 이 긍정의 힘엔 발랄하고 자신감 실려 있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고, 틀린 건 틀리다고 하며, 좋은 건 좋다고 말하는 솔직함과 자신감은 장애로부터 배운 힘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이제 삼십대 초반인 지은이는 아직 커다란 업적을 이룬 것도, 대단한 사람이 된 것도 아니다. 게다가 평생 함께 가야 하는 우울증은 어두운 그늘이다. 비록 전문 피아니스트의 꿈은 접었지만 피아노에 대한 사랑을 접지 않고 보컬 앙상블의 반주자로 자신의 가진 능력을 나누는 지은이의 모습에서 특별한 젊음과 삶의 아름다운 단상을 이 책을 통해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