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지데일리] “그림은 사람과 세상을 하나로 묶어준다. 그림은 마법처럼 존재한다.”

 

‘키스 해링’이란 이름은 우리에게 별로 친숙하지 않다. 그러나 그의 그림을 보고 나면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의 그림은 한 번만 봐도 마법처럼 사람들의 머릿속에 뚜렷이 각인된다. 단순한 선과 형태, 경쾌한 원색, 왠지 ‘나라도 그릴 수 있겠다’고 생각될 만큼 그의 그림은 쉽고 친근해 보인다.

 

사진=키스 해링 저널ㅣ키스 해링 지음ㅣ강주헌 옮김ㅣ작가정신 펴냄삶과 예술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탐구하고, 학습하고, 경험하면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던 키스 해링. 그는 1980년대 초 뉴욕 지하철의 검은색 광고판에 단순한 만화풍의 드로잉을 그리면서 대중에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는 거리의 담벼락, 쓰레기장에 폐기 처리된 시멘트벽에도 그림을 그렸고, 유명해진 후에는 자신의 그림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는 도시라면 어디라도 찾아가 거리 복판에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비트박스를 해가며 신명나게 세상을 향해 자신의 메시지를 발신해나간 거리의 즐거운 예술가였다.

 

≪키스 해링 저널≫은 1980년대를 질주한 뉴욕의 낙서화가,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앤디 워홀, 장 미셸 바스키아와 더불어 팝아트의 최전선에서 유쾌한 전설을 만들었던 키스 해링의 삶과 철학을 엮은 책이다. 열아홉 살 때부터 서른한 살 사망하기 직전까지 그가 직접 쓴 일기를 비롯해 다양한 작품과 폴라로이드 사진 등이 이 책에 실려 있다.

 

활동 기간은 십여 년 남짓이지만, 해링은 수많은 작품들을 통해 대중의 감정에 호소하고, 미래의 꿈과 두려움을 대중과 공유한 대중예술가였다. 그는 인간과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했다. ‘가장 순수하고 긍정적인 인간 존재’인 어린이들과의 작업을 가장 행복해했으며, 아동 건강, 마약과 에이즈 퇴치, 인종차별 반대를 위한 대의의 행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행동하는 미술가였다.

 

다채로운 이미지를 창조하고, 반복하고, 오리고, 변형하고, 실험하고, 통합하면서 자기 내면에 자리한 소년 같은 순수함과 열정, 예술가로서의 광기와 혼란, 인간으로서의 불안과 우울을 숨김없이 드러내었던 솔직하고도 맹렬한 미술가 해링의 일기에는 그가 어떻게 예술가로서, 인간으로서 성장하고 명성을 얻게 되는지, 또 학생 시절부터 에이즈 진단 이후 사망하기까지 그 짧은 생을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 가감 없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는 예술서적을 탐독하고 선배 화가들의 회고전에서 큰 자극을 받았으며, 때로는 마티스를, 때로는 레제를, 이집트의 상형문자나 중국의 그림에서도 시각적 상상력을 키우는 영감을 받으면서 자기만의 예술 철학과 방식을 완성해갔다.

 

“예술은 삶이나 죽음보다 훨씬 중요하다”

 

책에 따르면, 키스 해링은 1980년대 초 자신의 그림을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기길 바라며 지저분한 낙서만 가득하던 뉴욕의 지하철 검은 광고판에 하얀 분필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된 ‘지하철 드로잉’은 어둡고 탁한 지하철 역사를 즐겁고 환한 장소로 탈바꿈시켜주었고 통근하는 뉴욕 시민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줬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은 이후 파리, 런던, 니스, 베를린, 크노케, 밀라노, 함부르크, 마라케시, 마드리드, 몬테카를로, 도쿄 등 세계의 여러 도시에서 한 벽화 작업으로 이어졌다. 뉴욕 타임스스퀘어가든과 프랭클린 루즈벨트 거리, 피사의 성당 외벽, 베를린 장벽, 도쿄의 간판 등에 남겨진 그의 작품들은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도시의 랜드마크로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1988년 에이즈 양성 반응 판정을 받은 해링은 그 사실을 숨기지 않고 1990년 사망할 때까지 에이즈와 에이즈 공포, 그리고 동성애자 차별에 맞서 싸우는 용감한 예술가로서의 모습을 잃지 않았다.

 

그는 사회 정치적 문제에도 큰 관심을 가졌다. 1982년엔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자비로 제작한 반핵 포스터를 배포하고, 1985년에는 남아프리카 인종차별 정책에 반대해 2만 장의 포스터를 나눠줬다. 이때 작업한 <남아프리카에 자유를> 연작 석판화는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가 됐다. 또 에이즈 캠페인에도 적극적이어서 <침묵=죽음>이라는 작품을 통해 에이즈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죽기 직전 ‘키스해링재단’을 설립해 사후에까지도 에이즈의 예방과 치료를 위한 후원에 참여하고자 했다.

 

이 책엔 나날의 일기뿐 아니라 키스 해링의 전시회 기록 전부와 그가 생전에 탐독했던 도서 목록, 그의 작품이 소장된 공공 미술관 목록까지 그에 대한 정보가 세밀하게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