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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지 앞에 멈춘 시련, 힘을 잃다
    사회 2016. 2. 29. 15:30

    [당신의 삶을 결정하는 것들] 


    세상이 빠르게 돌아가면서 현대인들은 지름길을 찾고 인스턴트식 성공에만 매달린다. 혹자는 목표를 향해 뚝심 있게 한걸음씩 전진하는 건 이제 미련하고 바보스러운 짓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당신의 삶을 결정하는 것들> 아서 클라인만 지음ㅣ이정민 옮김ㅣ북로그컴퍼니


    그러나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것을 간과하고 있다. 지식과 감정으로 이뤄져 있는 인간을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의지라는 사실을 말이다. 


    삶의 목표를 만들고 비로소 그것을 완성하는 것이 바로 의지다. 이는 천재도, 범인도 이 공식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를 움직여온 사람들 또한 꿈을 이뤄내는 힘, 즉 '의지'를 가진 인물들이었다. 


    ‘세상이 우리를 이끌고 가는 방향이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자주 엇갈린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곧 우울한 전망을 받아들이는 일은 아니며, 오히려 공동체가 함께하는 도덕적 경험과 개인이 겪는 도덕적 삶의 실체와 중요성을 더 깊고 상세하게 이해하는 길이 될 것이다. 따라서 도덕적 삶을 지탱하는 도덕적 삶과 파괴하는 비인간적 행동 사이에 존재하는 회색지드를 검토하는 일은 특히 유익하다. 도덕적 경험들 중에서도 가장 난처한 것들로 채워진 회색지대야말로 인간적 삶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23쪽)


    2015년 11월 파리 도심에서 연쇄 테러 사건이 벌어졌다. 공연장에서, 축구장에서 평상시와 다름없이 금요일 저녁을 즐기던 시민 100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전 세계는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테러’나 ‘전쟁’과는 관계없이 그저 평화로울 거라 여겼던 삶의 터전이 한순간 아수라장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은 무척 공포스러운 경험이다. 


    그러나 다음 날 언론을 장식한 것은 국가 비상사태임에도 평상시와 똑같이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무언의 시위를 벌이는 파리 시민들이었다. 테러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평화로울 때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위기나 문제가 발생하면 한 개인이나 집단의 가치관이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가치의 기준은 ‘도덕적 사고’ 또는 ‘도덕적 경험’과 깊은 연관이 있다. 


    <당신의 삶을 결정하는 것들>은 이 책은 50여 년간 정신의학과 의료 인류학 분야에서 독보적인 연구 성과를 이뤄온 아서 클라인만 박사가 임상 경험에서 만나온 사람들의 사례를 통해 도덕적 가치관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개인과 사회의 도덕적 책임을 회피한 채 눈앞에 닥친 현실적 이익만을 모색하고 실천하는 삶도 매우 고단하고 힘들다는 사실이다.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와 대면하는 일이 아무리 고통스럽고 힘들지라도, 우리 삶 가운데 위험하고 불확실한 요소를 받아들이고 도덕적 삶을 수행하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떠안아야 할 존재론적 책임이다. 도덕적 삶을 통해 인간은 자신이 누구이고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 인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해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함께 개선해나갈 수 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이런 이유로 도덕적 삶은 불완전한 정치와 사회체제, 개인의 욕망이라는 한계를 지닌 인간 경험에서 없어서는 안될 윤리적 필요이다.’(148쪽)


    한 개인의 역사에 있어 도덕적 가치관은 무척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데, 어떤 이유로 인해 그것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을 때 대부분 큰 혼란을 겪게 되고 심한 경우 멘탈이 붕괴되기도 한다. 


    이 책에 소개된 사람들 역시 전쟁, 질병, 사회·정치적인 한계 등으로 인해 평생 견지해온 가치관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도덕적 가치관을 따르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여준다. 


    저자는 이 사례들을 통해 어떠한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도덕적 가치관을 지켜나가는 것이 가치 있는 일임을 이야기한다. 아울러 한 사람이 만들고 지켜나가는 도덕적 가치관이 곧 그 사람의 삶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걸 보여준다. 


    성공한 변호사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살던 한 남자가 심각한 우울 증세로 저자를 찾아온다. 그는 40년 전 참전했던 제2차 세계대전 때 적군을 잔인하게 살인한 기억, 부상병을 치료 중이던 군의관을 살해한 기억 때문에 괴로워했다. 


    유대인으로서 평생 받아온 교육, 즉 옳은 일은 해야 한다는 종교적 가르침을 스스로 어겼다는 죄책감이 40년 후 외상 후 스트레스 증상으로 발현한 것이다. 


    당시 저자는 그의 우울증 증세를 완화하는 데만 집중해 약물치료를 진행했고, 그는 “약물치료 후 압박감과 불면증에서는 벗어났지만 나를 괴롭히는 것은 결코 치유될 수 없다”고 말한 뒤 다시는 병원을 찾지 않는다. 


    20년이 흐른 뒤 저자는 그의 진료 기록을 다시 꺼내 보면서 그가 말한 핵심을 이해하게 된다. 그가 진정 원했던 것은 자신이 한 행동을 숨기거나 잊는 것이 아니라, 그 행동에 대해 공감하고 당시의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이 일화는 평범한 일상에서 옳다고 배워온 ‘가치관’과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지켜야 하는 ‘가치관’의 괴리, 그 안에서 한 개인이 느껴야 하는 도덕적 책임감과 죄의식이 인간의 비극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국제구호단체 현장 활동가 이디 보스케. 그녀는 아프리카 전쟁 지역에서 2년 가까이 열정적으로 활동했으나, 생각만큼 성과가 나지 않고 현장 상황이 개선될 기미도 보이지 않자 조금씩 지쳐간다. 


    특히 내전이 벌어진 지역에서 죽을 위기를 여러 차례 겪고 난 뒤로는 자신을 패자라 생각하며 절망에 빠진다. 


    저자는 그녀에게 이제 그만 현장을 떠나라고 충고하지만 그녀는 생각을 바꾸고 다시 활동을 재개한다. 세상은 변할 수 있고 변해야 한다는 것과 이를 위해선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는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것, 대응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더라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려고 애쓰는 것, 자아를 확립하기 위해 열정을 기울이는 것, 위험을 가중시키는 도덕적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자기 성찰과 비판적 현실 참여에 집중하는 것, 실패를 겪더라도 열정을 잃지 않는 것, 승리 후에 공허를 느끼더라도 용기와 인내를 발휘하는 것 등은 진부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여전히 유효하고 진정성 있는 행동이다. 특히 상업적 선전과 정치적 술수가 범람하는 시대에 이런 진정성은 윤리가 인식론에 선행한다는 레비나스의 교훈, 타인을 인정하고 긍정하는 마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 기대하지 못한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가치이다. 지정성 있는 삶을 살아가려면 우리는 도덕적 경험의 본질을 파악해야 한다. 우리 주변에 놓인 상황과 우리가 지닌 모든 대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275쪽)


    영혼이 병들 만큼 과거의 잘못을 자책하는 늙은 변호사의 양심, 아무런 대가 없이 타인의 삶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활동가, 목숨이 위태로운 대혼란의 시기에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중국인 의사, 밑바닥 인생임에도 자존감을 지키며 올바르게 살아가는 법을 알려준 하수구 노동자.


    이 책에 등장한 인물들은 유명하거나 위대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저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해 살았거나 현재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내 인생에서 꼭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는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 가치에 의미를 부여하고 실천했다는 데 공통점을 두고 있다.


    저자는 불확실하고 위험한 세계에서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한 가치임을 깨달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자아와 세계는 위험하고 불안정한 요소에서 맞서며 새롭게 거듭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지데일리 손정우기자

    gdaily4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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