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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도시 역사는 모순투성이 인간의 역사 그 자체다. 문명의 중심이자 사상과 예술의 본원이요 인류 역사의 동력원이면서도, 한편으론 무차별적인 살상이 일어나고 전염병이 들끓고 인간의 순수한 이상을 좌절시키는 공간이기도 하다.
수많은 세월 동안 부와 권력을 좇는 사람들, 새로운 정체성과 탁월한 업적에 욕심내는 이들이 도시로 모여들었다. 현재 로마에 대해 “이곳 거리에 굴러다니는 돌과 태양의 파편에 역사가 어려 있다”고 썼던 헨리 제임스처럼 도시를 채우고 있는 역사의 숨결과 마법 같은 이야기를 찾아 전 세계 관광객들은 파리와 피렌체, 예루살렘, 상트페테르부르크, 런던으로 몰려간다.
<세상의 도시>는 독특하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인류 역사를 들려준다. 오래 전 사라지고 전설로만 남은 도시 테오티우아칸을 시작으로 고대의 숨결을 간직한 알렉산드리아, 아테네, 콘스탄티노플과 수백 년 넘게 화려한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로마, 파리, 런던, 델리 등을 거쳐 근대에 건설된 신대륙 도시들까지 속속들이 소개된다.
text Point▶ 과거 업적의 강렬함과 영향력을 고스란히 전해준다는 면에서 도시는 거대한 극장과도 같다. 옥스퍼드와 리우데자네이루가 다르고, 보스턴과 라사가 다르다. 그래서 다른 도시를 찾아갈 때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된다. 도시마다 다른 정서를 경험하면서 그 안에 들어선 우리의 사유도 달라진다. 우리는 도시의 거울이 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우리는 세계의 대도시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지은이 피터 윗필드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64개 도시를 무대로 펼쳐진 수천 년 인류 역사를 아름다운 옛 지도와 파노라마 그림을 곁들이며 설명한다.
유럽에서 오랫동안 지도 전문가로 활동하며 역사학 계통에서 독특한 입지를 다져온 지은이는 “지도에는 도시의 역사와 혼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 그가 선별해 실은 150여 장의 그림과 지도는 전통적인 도시 국가, 중세의 요새 도시, 바로크 양식의 수도, 산업화된 메트로폴리스들이 어떻게 구획됐는지, 건축 형태와 사회 양식이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낭만적으로 인문학적으로 보여준다.
지은이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도시들의 형태를 결정짓는 건축물이나 지리적 환경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는 도시의 정신 즉 내면적 개성과 특질을 담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고, 책 속에 각 도시의 종교·정치·상업·사회목표와 예술적 이상과 좌절 등을 다양한 색채와 이야기로 응축한다.
그렇다면 위대한 도시들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그 기원은 1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근동지방에서 농경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 당시 인간은 정착해 지내며 잉여식량을 저장할 수 있게 됐다. 이는 인류에게 단순한 생존 이상의 가능성을 선사했다. 점점 팽창한 촌락은 정치권력이 작용해 도시가 됐다.
정치력과 기술력이 하나로 응축된 도시는 수많은 사람들을 끌어당겼다. 부와 지위, 학문과 예술을 찾아 도시로 모여든 사람들 때문에 도시 구조는 점점 복잡해졌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도시들이 이런 과정을 거쳐 발달했고, 도시국가 폴리스(polis)의 전형을 이룬 아테네 역시 그랬다.
특히 아테네는 그 이전까지의 도시들보다 훨씬 급진적인 공간이었다. 사람들은 흔히 수많은 철학자들이 배출되고 시민들은 고결한 이상향을 추구했던 고대 아테네를 황금시대를 일궈낸 도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연적으로 성장해나갔던 아테네는 멋진 외관을 갖춘 도시는 아니었다. 혼잡하고 불결해 기원전 300년 전 한 작가는 “처음 방문한 사람이라면 그토록 명성이 자자한 아테네가 바로 그곳이란 사실을 좀처럼 믿을 수 없을 것”이라고 묘사했다.
도시에서 인류는 문명을 활짝 꽃피우는 동시에 잔인한 인신공희의 축제를 벌이기도 했다. 또 인간과 세계에 대한 끝없는 성찰로 학문과 예술을 발전시키면서도 탐욕과 불신으로 얼룩진 파괴의 역사를 직조하기도 했다.
이 책을 통해 아테네에서 브라질리아로, 워싱턴에서 모스크바로, 런던에서 사이공으로 여행하다보면 인류 스스로 만들어낸 유산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복잡하고 불가해한 골칫거리인 도시와 인간의 애증 어린 관계를 흥미롭게 탐색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