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최근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대학(大學)을 거부한 한 젊은이가 있다. 그는 스무 살이 돼서도 꿈을 찾는 게 꿈인 서글픈 20대가 되는 것을 완강히 저항했다,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기보다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탈주하고 저항한 김예슬이 바로 그다. 그의 선언은 자신을 넘어 ‘김예슬들’의 문제였으며, 대학생의 신분을 넘어 인간 김예슬의 문제였다.


김예슬 선언-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ㅣ김예슬 지음ㅣ느린걸음 펴냄 그가 3장의 대자보에 다 담을 수 없었던 수많은 물음과 생각을 <김예슬 선언>을 통해 꺼내 놓는다.


그는 이 책에서 대학과 국가와 시장이라는 ‘거대한 적들’을 향한 과감한 문제제기로 모순의 실체를 선명하게 규정한다. 또 젊은이들에게 들려오는 모든 ‘거짓 희망’에 맞서 하나하나 진실을 밝혀 나간다. 나아가 거대한 적을 넘어 ‘나 자신이 바로 그 적’이라는 냉엄한 진실 앞에 자신을 세운다.


지난 3월10일 고려대학교 교정에 붙은 대자보 하나가 시대의 양심을 찔렀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라는 제목의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의 대학 거부 선언.


그로부터 대한민국은 조용히, 그러나 크게 술렁였다. ‘김예슬 선언’은 순식간 인터넷 커뮤니티와 트위터를 통해 퍼져나가면서 격렬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다음 날부터는 TV와 주요 일간지를 비롯한 수많은 언론을 통해 보도됐으며, 각종 포털 메인에 올랐다.

수백 만 네티즌들은 ‘나도 모르게 눈물이 울컥거렸다’ ‘다시 삶의 용기를 얻었다’ ‘아이를 둔 아버지로서 고개가 숙여질 뿐이다’ ‘죽은 줄 알았던 마음이 뜨거워졌다’ ‘의연한 용기가 부럽고, 태연한 나의 일상이 부끄럽다’ 등 오랫동안 참아왔던 가슴 속의 말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이를 전태일의 분신자살에 비유했고, 유시민의 항소이유서에, 핸리 데이빗 소로우의 시민의 불복종에, 68혁명에 비유하기도 했다.


우리 사회는 왜 이 사건에 주목할까? 김예슬이 “대학이라는 이름만 남은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이 이 시대 대학의 진실”이라 선언하고 대학을 거부한 것은 한국 최초의 사회적 대학 거부 선언이자 행동이었다.


스스로 큰 물음을 던지고, 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한 그의 근원적인 인식과 행동은 우리 시대의 새로운 거울이 됐다. 이 선언은 속울음처럼 참아와야만 했던 무한경쟁의 현실, 우리 시대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대학문제, 사회 양극화의 뇌관인 교육문제의 심장을 찌른 것이다.

마주하게 된다


물어라! 묻고 또 물어라

따져라! 따지고 또 따져라


이 책은 지은이가 대학 거부를 결심하기까지 수많은 날을 고민하면서 오랫동안 품어왔던 물음들, 그리고 대학거부 선언을 한 이후 자신에게 쏟아진 수많은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그러나 지은이는 “어쩌면 이 책에는 대답보다 물음이 더 많을 것”이라며 “제대로 된 물음은 이미 답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책은 ‘거대한 적들’을 향한 과감한 문제제기다. 지은이는 모호한 것들을 걷어내고, 이 시대 모순의 구조적 실체를 선명하게 규정한다. 인간을 잡아먹는 시장, 자격증 장사 브로커 대학, 배움을 독점한 국가가 그가 겨눈 우리의 적들이다.

 

지은이는 수 많은 아이들과 부모님이 온 삶을 바쳐서 이뤄낸 ‘대학 가는 꿈’의 결과는 ‘무직, 무지, 무능의 3無 ’이고, 시장, 대학, 국가라는 ‘억압의 삼각동맹’이 만들어낸 최종의 인간상은 삶의 소중한 기능을 시장에 떠넘기고 불구가 된 ‘소비자’일 뿐이라며, 청년들에게 꿈도 열정도 도전의지도 없다는 말은 이런 현실 구조를 은폐한 떠넘기기에 다름 아니라고 일침을 가한다.

 

나아가 저자는 이를 통해 경쟁과 소비의 악순환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는 대졸자 주류 사회, 의무교육과 자격증 유일잣대 시스템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고 비즈니스 문명, 도시ㆍ기계 문명, 자본권력의 세계체제에 대해 근원적 도전을 던진다.


거침없는 비판으로

‘거짓 희망’에 맞서다


지은이는 “우리가 희망을 잃어버린 것은 헛된 희망에 사로잡혀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 그 동안의 수많은 진보 담론과 20대 담론에 대해 “우리는 충분히 래디컬(Radical)한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지은이는 “충분히 래디컬하지 못하기에 쓸데없이 과격하고, 위험하게 실용주의적이고, 민망하게 투박하고, 어이 없이 분열적이고, 놀랍도록 실적경쟁에 매달린다는 느낌이 든다”며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으로 ‘거짓 희망의 말들’을 하나하나 밝혀간다.

모두가 세계 경쟁 무대에서 1등으로 빛나라며 젊은이들의 가슴에 ‘탐욕의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G세대’ 담론, “88만 원짜리 저가상품을 188만 원짜리 중가상품으로 매장에 내어놓게 하자”는 ‘물질주의’ 진보담론을 비판하고, 인문학마저도 대학 합격과 성공과 돈벌이를 위한 경쟁력 강화와 지식권력 강화의 수단이 돼버렸다고 꼬집는다.


나아가 그는 이 시대 모든 부모들을 향해 ‘사랑의 이름’으로 아이를 길들이며 자율성의 날개를 꺾지 말아 달라고 간한다. ‘좋은 부모’가 되려 하지 말고 당신의 ‘좋은 삶’을 살아 달라고, 간절한 편지를 남긴다.


이는 IMF를 겪으면서 공고한 ‘가정의 성(城)’을 쌓고 ‘각자 살아남기’에 힘을 쏟게 된 부모 세대의 고통과 ‘부모산성 뛰어넘기’가 가장 어렵다는 친구들의 호소가 겹쳐져 아픈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 책은 우리시대 거대한 적들에 대한 선언인 동시에 그 속에서 상처받고 고독했던 우리들에 대한 격려이자 북돋움이다.


지은이는 지금까지 그가 밝힌 거대한 적을 넘어 ‘나 자신이 바로 그 적’이라는 냉엄한 진실 앞에 정직하게 자신을 비춰본다. 우리의 꿈과 욕망과 열정마저도 실은 ‘주어진 꿈’이 아닌지, ‘오염된 꿈’이 아닌지, 자신에 대한 성찰로부터 다시 시작한다.


지은이는 “생각할 틈도 없이 거짓 희망의 북소리에 맞춰 앞만 보고 진군하는 것이 훨씬 괴로운 것”이었다며 “지금 자신이 혼란스러운 것은 ‘다른 길을 찾으라’는 고통스런 선물일지도 모른다”며 스스로를, 우리 모두를 격려한다.


이 책은 특히 시대의 모순이 개인의 문제로 내던져진 이 시대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대학을 가지 못한 이들과 농촌에서 공장에서 노동현장에서 고되게 일하는 이들 등 ‘영혼의 불안’으로 흔들리는 수많은 젊음 앞에 바치는 마음의 약속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