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 푸어(house poor) : 집은 있지만 집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신조어.


사진_하우스푸어ㅣ김재영 지음ㅣ더팩트 펴냄 우리 사회에서 아파트 혹은 집이라는 것은 ‘인생’을 걸어야 하는 문제가 돼버렸다. 왜 이런 상황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지 않은 걸까. 왜 우리는 다른 세상을 꿈꾸거나 미래를 꿈꾸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걸까.


:::내 집 마련의 꿈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이야기이다. 은행에서, 언론에서 심지어 국가에서도 당신의 이 꿈을 도와준다며 광고하고, 약속하고, 내세운다. (중략) 내 집 마련의 여왕들이 수십 억 원, 수백 억 원을 벌었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우리를 들뜨게 만들고, 직장, 계모임, 교회를 통해 퍼진다.:::



학군이 좋고 살기 편한 곳, 남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곳에서 살고 싶다는 욕망이 사람들을 모이게 했고 아파트 가격의 상승을 가져왔다. 그런 지역에 아파트를 소유하면 대박인생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강남, 강남3구뿐만 아니라, 내가 사는 지역이 그들보다 못한 게 뭐가 있어, 라는 식의 질투는 서울과 수도권 전 지역으로 아파트 가격 상승을 전파시켰다.


이러는 사이 우리는 모두 전염됐다. 고쳐주는 사람도 말리는 사람도 없었다. 알지 못하는 사이 우리는 모두 감염되었다. 집을 사서 돈을 버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다. 케인즈가 이야기한 야성적 충동이 발휘된 것이다. 사람들은 앞뒤를 재지 않고 집으로 돈을 버는 것이 가장 경제적이며 합리적인 행위라고 믿었다. 집으로 돈을 버는 이야기들만큼이나 시중에 저금리의 돈이 넘쳐났다. 빚을 얻어 집을 사는 것은 당연했고 그러지 못한 사람들이 바보이고 뒤처진 사람들이었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집을 소유한다는 것은 중산층이 된다는 표상이었고 경제 안정의 지표였다. 주택 소유자 = 중산층 이상, 세입자 = 중하층 이하 서민층이라는 등식이 자연스럽게 굳어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기회라고 생각하며 잡았던 끈이 자신들을 옥죄는 덫이 돼버릴 수 있다는 것을 대한만국 중산층은 뒤늦게 깨닫고 있다.


:::하우스 푸어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냉엄한 현실이 되고 있다. 강남 재건축 단지, 1기 신도시와 2기 신도시, 서울 도심의 뉴타운, 경제자유구역, 그리고 숱한 수도권 분양 시장에서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집을 산 덕분에 집을 소유하고 있으나 빚에 짓눌려 삶이 피폐해진 사람들이 신음하고 있었다.:::



“500만 원을 가지고 오면 뭐합니까. 은행의 월세 세입자이고, 집의 노예일 뿐 사는 게 사는 게 아닙니다.” 서울에 사는 대기업 중견 사원의 이야기다. 현재 중학교 2학년과 초등학교 4학년인 두 아이를 둔 김 씨 가정은 항상 가계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아이들의 과외도 끊고 집 파는 문제와 돈 문제로 부부 싸움도 잦아졌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와 같은 사례는 서울, 수도권의 각종 뉴타운과 재개발 재건축, 분양 단지 곳곳에서 접할 수 있다. 무리하게 집을 사지 않고 저축을 했다면 충분히 중산층 수준의 삶을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이 집 없는 중산층에서 집 가진 하류층으로 전락한 것이다. 돈덩이인 줄 알았던 아파트는 이제 빚덩이일 뿐,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족쇄가 돼버린 것이다.


:::분양받은 사람들 가운데 얼마나 그 아파트에 살고 있을까? 10세대 가운데 3세대 정도만이 실제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 입주조차 하지 않는 세대가 4분의 1이 넘는 상황. 판교 분양자 가운데 얼마나 부채를 안고 있을까? 조사 가구의 약 70% 이상이 부채를 안고 있었다. 그렇다면 부채 규모는 얼마나 될까. 평균 3억 원가량의 금융 대출을 받고 있다.:::



각고의 노력으로 장만한 집 한 채. 그러나 현실적으로 감당해야하는 것은 점점 떨어지는 집값과 갚아야 할 대출금뿐이다. 정작 가장 큰 문제는 빚뿐인 집이 팔리지 않는다는 것. 이런 문제가 현재 대한민국의 중산층을 사라지게 만들고 있다. 내 집이 있지만 행복하지 않은 대한민국 중산층이 된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부동산, 아파트라는 틀에서 자유로운 중산층은 거의 없을 것이다. 많은 정치세력들이 부동산 문제의 해결을 외치고 있고, 경제학자들도 아파트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해법들을 주장한다. 지난 10여 년간 한국 사회의 가장 뜨거운 이슈들에서도 ‘강남불패’, ‘버블세븐’이라는 단어들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언론과 학계, 정치권에서 부동산 투기를 욕하고, 대책을 강구하면서 구호들을 숱하게 쏟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끊임없이 아파트를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연 한국의 아파트는 끊임없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일까.


:::강남 3구 재건축 아파트를 보유한 전현직 고위공직자는 모두 317명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보유하거나 보유했던 아파트의 숫자는 358채였다. 조사 대상인 1급 이상 고위공직자들의 약 10%는 강남3구 재건축 아파트와 직접 관련을 맺고 있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재산신고를 누락한 직계존비속을 포함한다면 그 비율은 휠씬 높아질 것이다.:::



≪하우스 푸어≫는 사실을 근거로 아파트를 둘러싼 거대한 거짓 이야기가 어떤 세력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유통되는지, 이야기를 이용하는 세력은 누구인지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대한민국 부동산의 바로미터라는 은마아파트, 판교신도시, 가락시영아파트 등 단지들의 경제적 가치를 데이터 분석을 통해 상세히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