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정원≫은 그림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그림을 읽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다. 지금까지 미술서가 화가에 대한 이야기와 그들이 펼치는 작품세계에 관심을 뒀다면 이 책에서는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 즉 관객에 주목한다. 지은이 정석범은 이 점에 주목해 자신의 경험을 통해 그림에 대한 이야기와 분석, 미술이론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_아버지의 정원ㅣ정석범 지음ㅣ루비박스 펴냄한편의 소설 같은 지은이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펼쳐지는 이 책은 각각의 에피소드 마다 명화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클로드 모네ㆍ빈센트 반 고흐ㆍ에드바르트 뭉크ㆍ앙리 마티스ㆍ프리다 칼로ㆍ윌리엄 터너ㆍ바실리 칸딘스키 등 서양화가부터 나빙ㆍ 거렴ㆍ안도 히로시게ㆍ김득신 등 동양화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계곡에서 도움을 청하는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물살이 유난히 거센 곳에 한 소년이 물에 빠지고 만 것이다. 아이의 아버지는 고통도 잊은 채 돌부리에 채이고 바위에 부딪히며 아이를 구했지만 이미 심장은 멎은 상태였다. 그는 간절한 기도와 함께 실낱같은 희망으로 인공호흡을 하고 아이는 기적적으로 살아난다.


이는 어린 시절 지은이가 겪은 이야기이다. 그는 이 이야기를 통해 케테 콜비츠의 작품 <죽음의 위로>를 바라본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이를 위로하는 ‘죽음’을 표현한 이 작품을 설명하기 위해 자신의 경험을 이용한 것이다. 관객이 어떠한 경험을 가지고 어떠한 시선으로 그림을 보느냐에 따라 그림에 대한 해석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음을 전하고 있다.


지은이는 군인 아버지를 둔 덕에 어린 시절 전국 방방곳곳으로 이사를 다녀야했다고 한다. 전곡ㆍ대구ㆍ원주ㆍ비아를 떠돌며 항상 이방인으로써 겪은 에피소드들과 그 시절의 예민한 감수성을 바탕으로 경험한 인상들을 적절히 배치해 독자들에게 명화를 설명해주고 있다.


지은이는 대학 졸업 이후 줄곧 공부를 손에서 놓고 있지 않은 미술사가이기도 하다. 그가 지금까지 공부해왔던 미술에 대한 이해와 견해가 책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그는 색채 추상을 설명하기 위해 자신이 어릴 적 놀이기구에 탔던 경험을 이야기한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간 놀이공원에서 비행기 놀이기구를 타면서 주변 사물의 형체가 해체되고 색채가 혼합되는 것을 경험한다. 그는 누구나 겪어봤을만한 경험을 통해 이해하기 어려운 추상화인 칸딘스키의 <즉흥6-아프리카>를 이야기하며 사물이 구체적인 형상을 상실하고 추상적인 색채의 면들로 전환되는 색채 추상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이 외에도 지은이는 어린 시절 왕따를 당하면서 기차를 벗 삼았던 이야기(윌리엄 터너 <비, 증기 그리고 속도-대서부 열차>), 어여쁜 여학생을 짝사랑하며 속으로 전전긍긍 말 못하던 이야기(볼레슬라바 키비스 <프리마베라>), 사랑했던 강아지를 잃었던 이야기(조슈아 레이놀즈 <강아지를 안고 있는 보울즈 양>) 등을 통해 그림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 책은 미술서지만 단지 미술에 대한 이야기로 그치지 않는다. 음악과 영화, 연극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독자에게 다양한 예술적 즐거움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