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애드벌룬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을까? 거리에서 강렬한 붉은색 타이포그래피로 눈길을 끄는 약국 간판에는 왜 단 한 글자 ‘약’ 자만 박혀 있을까?

 

사진=디자인 극과 극ㅣ현시원 지음ㅣ학고재 펴냄디자인 칼럼니스트 현시원은 이렇게 설명한다. 요즘 애드벌룬이 보기 어려워진 것은 전광판의 보급 등 대중매체의 발전이 애드벌룬의 광고효과를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또 약국 간판에 약 자만 쓰이는 것은 약사법에 특정 질병에 관련된 의약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함을 나타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어서다. 병원 간판에 항문이나 척추 등 전문 분야를 암시하는 ‘학문 외과’ ‘척 외과’ 등 특이한 명칭이 쓰이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디자인 극과 극≫은 거리의 공공 디자인과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사물을 주인공 삼아 각자의 디자인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극과 극’의 두 사물을 짝지어 비교함으로써 간과하기 쉬운 특성을 흥미롭게 발견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솔밭에서 활쏘기, 느티나무 아래 그네 타기, 솔바람 불어오는 집에서 투호 놀이하기, 대자리 깔고 바둑 두기, 연못의 연꽃 구경하기, 숲 속에서 매미 소리 듣기, 비오는 날 한시 짓기, 달밤에 발 씻기. 다산 정약용의 여름 더위 식히는 여덟 가지 방법(소서팔사, 消暑八事)이다.

이 귀엽고 풍류 넘치는 피서법에는 빠져 있지만 정약용도 여름이면 부채를 선물로 주고받았을 것이다. 조선의 왕은 여름마다 도화서 화원들이 그림을 그려넣은 부채를 선비들에게 선물했다. 『디자인, 일상의 경이(Humble Masterpieces)』의 저자인 뉴욕 현대미술관의 건축, 디자인 분야 큐레이터 파올라 안토넬리는 접는 부채 디자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유럽에 접는 부채가 소개된 것은 18세기 초반이었다. 이후 다양한 그림과 자수가 더해지고 희롱과 소통의 기능까지 포괄하게 되면서 부채는 제작과 사용의 측면에서 예술의 경지로 도약했다.”

제작의 측면은 쉬 알아듣겠는데, 사용의 측면에서 예술의 경지에 도약했다는 건 무슨 뜻일까? 그 사례가 재밌다. 19세기 영국의 수상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부채가 초래하는 계급의식과 질투의 감정이 칼보다 더 위험하다”며 부채의 해악에 목소리를 높였다. 19세기 유럽의 상류층 젊은이들은 비밀스러운 쾌락의 수단으로 부채를 사용했고, 부채를 통해 사랑의 밀어를 전했다. 어설픈 프러포즈에는 부채로 손바닥을 확 밀며 한마디 했을 것이다. “넌 아웃이야!”:::


 

오늘날 디자인은 산업 전반과 일상생활에 걸쳐 커다란 영향력을 미친다. 또 약 간판에 관련한 이야기에서 보듯 디자인은 법적 제도를 비롯한 가치관, 문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러나 이 책의 지은이 현시원은 사회 전반에 퍼진 디자인의 중요성이 정책과 상업적 슬로건 속에서 제 색깔을 잃어가고 있다고 본다. 부풀어 오를 대로 오른 디자인의 거품을 걷어내고 작은 호기심으로 일상의 사물이 주인공이 되는 디자인 이야기를 펼친다.

 

토스트 리어카와 백화점 푸드코트, 비상구 사인 속 사람과 이집트 벽화 속 남자 등 지은이의 시각으로 건져 올린 일상적 소재들은 공공 디자인과 상품 디자인, 패션과 미술, 정치까지 다양한 분야를 아우른다. 지은이는 지금 당장 책상 위나 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온갖 물건들이 의외로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역사를 담고 있음을 발랄하게 때론 엉뚱하게 들려준다.

 

:::제 장난감이 삑삑 소리를 내며 고장 날 때까지 놀아야 성미가 풀리는 어린아이처럼, 나는 얌전빼는 디자인들을 꼬치꼬치 따져보고 싶었다. 왜 공원 벤치는 무릎에서 딱 꺾이는 길이로 만들어져 있을까? 혹시 사람들이 오래 눕기 어렵도록 만든 것은 아닐까? 어렸을 적 하늘을 날던 그 많던 애드벌룬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시인 이상이 살았던 경성 하늘에는 회충약을 광고하는 애드벌룬도 있었다는데……. 그렇게 디자인 탐정을 자처했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기만의 눈과 멋진 솜씨로 멋쟁이 디자인 월드를 펼쳐가고 있다는 게 이 책의 결 론이다. 하나 덧붙인다면 좋은 작품들을 즐기고 멋진 디자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아름답지 못하고 불의한 세상을 참아내기 어려우리라는 것!:::


 

이 책은 지난 2009년 6월부터 <한겨레> 주말 섹션 esc에 연재한 칼럼 ‘디자인 극과 극’을 다듬고 대폭 보강한 것이다. 이름 높은 디자이너들의 명품과 디자인 이론을 동원하지 않고도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