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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촛불 시위가 한창이던 여름, 연세대학교 박사 과정에 있는 젊은 연구자들이 김현미 교수와 함께 세미나를 진행했다. 3주에 한 번씩, 일 년 반을 함께하는 동안 이들은 신자유주의 이론과 현실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신자유주의가 정치경제 영역에 국한된 것이 아닌 전면적이고 포괄적인 삶의 질서임을 확인했다.
≪친밀한 적≫은 김현미 교수 등이 자본주의 성장의 동력이라는 ‘창조적 파괴’가 사실상 우리의 삶을 파괴시키고 있다는 결론에 도출해내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우리는 사회 안전망이 사라지고, 평등과 존엄성, 정의 같은 민주적 가치들이 위협받는 시대, 자본 증식에 도움이 되는 무제한적 욕망만이 승인 받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불합리한 체제가 지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의 지은이(김현미 외)는 이를 사람들이 신자유주의의 문화적 논리에 설득당한 결과로 해석한다. 이러한 문화적 논리가 일상에 스며들어 사람들의 심리적 자아와 욕망을 변형시켰다는 의미에서 신자유주의를 우리의 ‘친밀한 적’이라고 부른다.
이 책에서는 금융 위기를 비롯해 이주 산업의 성장, 국지전의 증가 등 구조적 문제를 조망하면서 초국적 자본과 금융 네트워크, 이를 떠받치는 국가 체제와 국제 정치경제 질서를 해부한다. 나아가 외모부터 내면까지 관리와 경영의 대상이 된 현실, 생명 공학과 의료 기술이 인간의 몸을 파편화·상품화하는 현장을 보여 준다. 그 가운데 ‘신자유주의 문화 논리’의 실체와 그로 인해 위험에 처한 우리 일상이 드러난다.
책은 우선 신자유주의가 대중의 동의를 구축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정치경제 이론이던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문화적 논리로까지 확장됐는지, 그 결과 ‘경쟁’과 ‘승자독식’의 문화 규범이 어떻게 인간 주체성과 내면을 변화시켰는지 살펴본다. 이어 하나의 거대한 투자 시장이 돼 버린 금융 사회의 현실을 파헤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지겠다는 금융 상품은 그 선택에 따라 개인이 짊어져야 할 위험을 오히려 증폭시키며 ‘글로벌 투자가’의 꿈을 먹고 대신 끝없는 위기와 불안정성을 대가로 제시한다.
또한 ‘임시적이고 추방 가능한 노동력’을 확보하려는 국가와 자본의 이해가 수많은 미등록 이주자를 양산하는 주범이라고 진단한다. 국가의 이주 제한 정책이 심화될수록 이주자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이주 산업이 성장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어 냉전 종식과 세계 자본주의 체제라는 두 요소가 맞물려 안보와 전쟁마저 사고 팔리는 시대가 왔다고 말한다. 특히 나오미 클라인의 ‘재난 자본주의 복합체’ 개념을 끌어와 세계적인 위기 상황을 틈타 자본의 논리를 더욱 폭력적인 방식으로 관철시키는 민간 군사 산업의 성장을 보여 준다.
이처럼 자본과 사람, 그리고 재난의 흐름을 통제하고 관리하며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신자유주의는 외모와 감정의 상품화, 생명 공학과 의료 기술의 상업화 같은 우리가 일상에서 피부로 느끼는 미시적인 효과들을 만들어 낸다. 특히 책은 상품 자아, 경영적 자아, 기업가적 자아가 등장하게 된 문화적인 배경을 살펴본다. ‘자신의 성공과 실패를 책임지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자기 계발 구호가 흘러넘치고 사회적 실패와 좌절이 모두 개인의 탓이 되는 상황에서 외모뿐만 아니라 감정마저도 경제 가치를 창출하는 주요 요소로 다뤄지고 있다는 것이 지은이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와 함께 책은 ‘생명 자본’이라는 개념을 통해 생명을 살리는 산업에 기대되는 최소한의 윤리마저 자본의 논리에 사로잡힌 현실을 보여 준다. 제약회사의 시험장이 된 제3세계 국민들의 몸과 기성 배아로 ‘맞춤형 아기’를 서비스하고 이 모든 것을 인터넷 클릭 한 번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의료 쇼핑의 현실은 생명마저 상품화하는 자본의 잔인한 논리를 담아낸다.
책이 언급하고 있는 ‘친밀한 적’이 위협하고 있는 우리 일상을 지키기 위해 지은이는 ‘삶의 능력’을 되살리는 생활 정치를 시련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지은이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을 낯설게 바라보고, 가치를 전환할 수 있는 새로운 질문을 던지면서 경제 발전 담론이나 시장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생각해 온 것들에 의문을 제기하자”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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