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자동차는 인간에게 의족과 같은 존재로 쓰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보행보다 더 빠르고 더 멀리 인간을 이동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면밀히 살펴보면 자동차가 현대인들에게 가져다준 이동성도 은총이라기보다는 저주에 가깝다. 자동차를 위한 교통 시스템은 사회 전반의 변화와 발전에 악영향을 끼쳤다. 중세도시가 그토록 아름다울 수 있었던 것은 도보로 이동 가능한 짧은 길과 지역 내의 유기적 연결망 덕분이었다. 개인과 공동체의 이익이 조화를 이뤘고, 공공장소는 모두가 평등하게 사용하는 평화로운 공간이었다.

 

사진=자동차 바이러스ㅣ헤르만 크노플라허 지음ㅣ박미화 옮김ㅣ지식의날개 펴냄 그러나 넓은 도로가 생기고 자동차가 그곳을 질주하면서 지역의 특성과 다양성은 파괴됐다. 이동성이 확보되면서 주거지와 일터가 분리되는 등 인간의 생활공간은 질보다 기능적 측면이 우선시됐다. 여가와 일, 만남, 장보기 등이 함께 이뤄지던 공공장소에는 이제 자동차만 존재할 뿐이다.

 

자동차가 갖는 익명성처럼 인간과 기업은 유대관계보다 이익만을 내세우게 됐다. 그 결과 도시에는 빈민과 실업자가 넘쳐나고 있다. 지역사회 복지 향상에 기여하던 소규모 기업들은 도로를 타고 이곳에 파고든 거대한 다국적 기업에 순식간에 무너졌고, 지역민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멀리 떨어진 대형 마트에 차를 몰고 가 지역에서 생산된 다양한 먹거리 대신 대량생산된 식재료를 구입한다. 자동차와 도로로 인해 인간은 다양한 삶의 기회를 제한당한 채 똑같은 모습으로 살게 됐다. 그럼에도 인간들은 여전히 이를 성장이나 진화로 인식하며 점점 퇴화된 삶을 살고 있다.

 

이처럼 자동차는 인간사회의 전통적 관계를 단절시키고 있지만, 권력층에게는 그들의 기반을 공고히 해주는 유용한 도구로 존재해 왔다. 멀게는 히틀러의 나치 정권부터 가깝게는 우리에게 너무도 친근한 세계적 자동차 기업들까지, 권력과 돈을 가진 자들은 공공을 희생시켜 얻은 교통 시스템의 발달로 막대한 이득을 챙길 수 있었다.

 

≪자동차 바이러스≫는 자동차가 없어도 좋던 시절에서 자동차 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이 돼버린 지금, 자동자가 널리 보급되면서 정치·사회적으로 일어난 의도하지 않은 부정적 현상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책에 따르면, 오늘날 전 세계 국가에서 실행되는 자동차 법규는 나치 정권의 비인간적인 법질서를 기본으로 한다. 히틀러는 전쟁 물자의 원활한 수송을 위해 최초로 교통 법규를 만들었다. 이어 ‘자동차 왕국’ 미국은 일본 등 2차 대전 패전국에 자동차 중심의 교통 시스템을 정착시켰고 지금은 자동차 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나라에 자동차를 수출하기 위해 정책을 펼치고 있다.

 

나치 정권에 전차 등을 지원했던 포드 사와, 제너럴모터스, 스탠더드오일, 파이어스톤 등 자동차 관련 업계는 대중교통을 운영하는 공기업을 매입해 노선을 폐쇄하는 방식으로 도시교통을 전차 중심에서 자동차 중심으로 바꿔나갔다. 또 이들의 로비를 받은 각국의 정부 역시 자동차 교통을 적극 촉진시켜 권력층 위주의 경제구조를 견고히 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자동차를 통해 공공의 안녕을 위협하는 또 다른 세력은 도시 계획과 행정에 영향을 끼치는 공학자, 경제학자, 법학자 등 소위 ‘교통 정책가’라 불리는 이들이다.

 

빈 공과대학의 교통계획과 교수인 지은이 헤르만 크노플라허에 따르면, 이들은 ‘자동차 바이러스’에 두뇌가 감염돼 이성적 판단을 하지 못하는 인간들로 비춰진다. 인간의 뇌에 깊이 뿌리내려 자동차를 가로막는 모든 요소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이 무서운 바이러스는 인간의 정보 평가 처리 능력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교통 정책가들은 인간의 생명과 건강보다 자동차의 자유와 편이를 중시하며 자동차 중심의 세계를 만드는 데 여념이 없다. 지은이는 교통 전문가들 사이에서 출세와는 거리가 멀다고 알려진 대중교통 분야와 보행자 안전을 전공으로 택해 스스로 비주류 학파의 길을 걸으며 이들의 오판을 객관적으로 감지할 수 있었다. 도시를 건설하고 도로를 지을 때, 교통 정책가들은 자동차 이용자만을 관찰 대상으로 삼는다. 이들에게 보행자는 ‘교통사고의 원료’일 뿐이고, 보행자 도로란 자동차를 위한 넓은 도로를 짓고 남는 공간에 지어지는 좁은 도로일 뿐이다.

 

교통사고, 배기가스, 소음공해 등 익히 알려진 자동차의 폐해 외에도 자동차 바이러스의 사회적·문화적·구조적 악영향은 앞서 보듯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곳까지 병들게 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똑같이 재현되는 중이다. 독일의 역사에서 고속도로와 히틀러가 맞물려 있듯이 고속도로는 박정희 정권의 정치적 상징물이 됐다. 우리나라의 경제력과 국방력은 자동차 산업의 발달과 함께 팽창됐으며, 부동산 거품은 자가용의 교통량과 함께 더 크게 부풀고 있다. 대가족 제도는 이미 사라졌고, 자동차 문화와 함께 아파트의 기능적 주거환경이 정착됐다.

 

책은 자동차가 가져온 끔찍한 난제들을 직시하고, 지난 200년의 열광적인 자동차 역사와는 다른 생산적인 자동차 문화를 전개해가야 한다는 논지를 편다.

 

지은이는 “인간사회를 숙주 삼아 자동차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만들어가는 자동차 바이러스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를 추방해 인간다운 삶의 현장을 복원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을 되찾는 길”이라면서 “그렇지 않으면 무서운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에 치여 죽는 양서류처럼 인간도 언젠가 자동차에 자리를 내주고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