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것 가운데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산다는 것은 죽음으로 가는 과정이라 하듯 자연, 인류, 문화는 지난한 세월을 거치면서 ‘사라져간다’.


사진_오아후오오ㅣ김영래 지음ㅣ생각의나무 펴냄.jpg 도시적 일상과 개인의 내면화 등이 주를 이루고 있는 한국소설에 ‘생태소설’이라는 장르를 일궈가고 있는 소설가 김영래. 그는 사라져가는 세계와 절멸된 생명을 위한 레퀴엠을 연주하는 작가다. 등단 이후 줄곧 멸종이라는 주제에 천착해 치열한 작가정신으로 ‘멸종의 연대기’를 온몸으로 써내려가고 있다.

 

≪오아후오오≫는 김영래가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인간의 정체성을 회복해나가는 과정을 그린 생태소설이다. 여기에는 인간의 탐욕에 의해 살고 있던 집도, 마을도, 산도, 강도 모두 내주고 결국 더욱 더 황폐해져가는 파푸아뉴기니의 ‘사라져가는 원시 세계’가 생생히 묘사돼 있다. 그 기나긴 여정 속에서 작가의 생태의식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지은이는 인간성의 회복이 곧 생태 환경의 복원, 보존의 근본적인 해결책임이라고 이야기한다.


:::나를 이곳까지 이끌고 온 것은 어떤 부름일까? (…) 이따금 그는 자문해보았다. 그럴 때면 무중력 상태에 내던져진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하였다. 그는 계속해서 생각했다. 나를 이곳까지 내몬 것은 어떤 힘일까? (…) 때때로 그는 자신의 존재가 대기의 부양력에 의해 허공에 내던져진 아이올로스 플랑크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변적이고, 비산 먼지처럼 부유하고, 점착성 없이 부스러지기 쉽고, 지하 암석에까지 뻗친 유목의 피로 혈관을 가득 채운, 숙명적으로 가벼운 존재.:::



지난 2004년 지은이는 파푸아뉴기니를 여행하고 열대의 더운 숨결을 가슴에 품고 돌아온다. 그 뒤 지인이 건넨 짤막한 화두를 잡아 300여 년 전에 멸종한 새 ‘오아후오오’를 찾아 떠난 한 사내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다. 파푸아뉴기니의 거대한 밀림을 헤매는 한 남자, 그리고 그가 쫓아다니는 멸종된 새 ‘오하우오오’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생태소설인 이 책은 오래전 멸종한 새 오아후오오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은 소설이다.


주인공 ‘안’은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 아내와 사랑하는 여인과의 이별을 거쳐 벼랑 끝으로 내몰린 뒤 파푸아뉴기니행을 선택한다. 그곳에서 주인공 ‘안’은 가이드 조수아를 대동해 세피크강 지류 곳곳을 다닌다. 코로고에서 안고람을 거쳐 이름 모를 오지의 밀림을 헤매는 여정을 통해 주인공은 원시부족의 신앙과 생활, 언어, 문화를 경험한다. 그리고 문명이 들어오면서 그들의 종교와 문화, 언어가 무너져가는 과정을 생생히 목격한다.


또한 문명의 바깥에서 흙, 새, 동물, 물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또 다른 원시 부족의 삶을 지켜보면서 주인공 ‘안’은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자연의 힘과 야생의 삶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차마 잊어버리지 못했던 자신이 현실을 마주하며 마침내 자기 안에 멸종의 키워드인, ‘깊은 슬픔’을 마주하게 된다.


:::종려나무라는 나무는 그 이름을 잃고 새 이름을 얻어야 하리라. 이렇게 해서 새로운 이름, 새로운 언어가 태어나지만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조금씩 더 줄어들 것이고, 그것을 기억하는 산 사람이 줄어들수록 그들 주위의 죽은 자들은 점점 더 늘어나리라. 죽은 자들의 이름, 죽은 낱말들은, 그들을 대신해서 만들어진 낱말들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진 뒤에도 기억되고 또 기억되리라. 왜냐하면 진정으로 살아 있는 것은 그들이기에. 이름도 없는 이 땅, 흩어진 숨결 같은 이 고장에서 참으로 살아 있는 것은 죽은 자들이기에.:::



지은이는 인간의 탐욕으로 사라져가는 사람들과 자연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 에드워드 윌슨의 <생명의 다양성> 데이비드 쾀멘의 <도도의 노래> 조너던 와이너의 <핀치의 부리> 로타르 프렌트의 <그래도 그들은 살아 있다> 등 새와 멸종에 관한 자료를 파헤치며 소설을 써내려갔다고 한다. 환경과 멸종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숲과 새, 그리고 인간에 대한 절멸의 연대기를 기록한 것이다.


지은이는 “작품을 엮어가는 어느 모퉁이에서, 생의 절벽 앞에서 돌아서게 하는 슬픔을 마주했다”고 말한다. 이 책은 그만큼 가슴 밑바닥까지 차오른 슬픔의 힘으로 써내려간 이야기인 것이다.


지은이는 또 “모든 사라진 것들의 슬픈 카니발”이라면서 “그 끝에서 우리는 쓸쓸히, 그리고 홀연히 사라진 모든 것들을 불러보고, 또한 온몸으로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