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내 아이가 걸을 수도, 먹을 수도, 심지어 숨을 쉴 수도 없는 불치병에 걸린다면….


사진_조금만 더 하루만 더ㅣ지타 아난드 지음ㅣ이은선 옮김ㅣ시공사 펴냄.jpg 여기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이런 가혹한 운명을 오직 집념 하나로 바꾼 아버지가 있다. 폼페병에 걸린 자신의 두 아이를 살리기 위해 치료제를 개발한 존 크롤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졸업장과 세 아이, 새 집과 안정된 직장을 가진 존은 세상에서 부러울 게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둘째와 셋째 아이가 잇달아 폼페병 진단을 받으면서 모든 게 어긋나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내려진 가혹한 운명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존은 회사에 사표를 내고, 전 재산을 투자해 폼페병 치료제를 개발하는 바이오테크놀로지 회사를 설립한다. 그러나 치료제 개발은 지체되고, 경영에 문제가 생기고, 아이들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는 등 치료법을 찾아 헤매는 그의 앞길은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하지만 그는 결국 모든 난관을 극복해냈으며, 자신의 아이뿐만 아니라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품게 해줬다.

 

5년간 크롤리 가족의 곁에서 고통과 기쁨의 시간을 함께 해온 <월스트리트 저널>의 기자 지타 아난드가 쓴 ≪조금만 더 하루만 더≫는 가슴 아픈 이야기인 동시에 승전보다. 자식을 살리겠다는 의지와 용기, 서로를 신뢰하는 따뜻한 가족의 힘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존은 근이영양증이라는 단어를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월넛 크리크 시내에 있는 반스앤노블 서점을 찾아가 근이영양증을 다룬 책을 네 권 구입했고, 하루 종일 신경질적으로 책장을 뒤적이며 여러 종류의 근이영양증에 대해 공부했다. 가장 흔한 ‘뒤시엔느형 근이영양증’은 다섯 살 전후의 남자아이들이 주로 걸리는데, 근육이 서서히 약해져서 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다 결국 사망하는 병이었다. 그는 다리에 부목을 대고 목발을 짚고 있는 어떤 여자아이 사진을 보고-머리가 까맣고 얼굴이 하얘서 끔찍할 정도로 메건과 닮은 아이였다-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의 집안에는 장애를 가진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그의 딸이 목발을 짚어야 하다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예전부터 같이 공을 차는 게 그의 꿈이었다. 그런데 목발을 짚고무슨 수로 축구를 할 것이며 무슨 수로 학교 댄스파티에서 남자아이와 춤을 출 수 있을까.

몇날 며칠, 그 책들은 존의 협탁 위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었다. 한 번은 에일린이 제일 위에 있던 책을 집어 들어 본 적이 있었다. 목발을 짚은 여자아이의 사진이 실린 책이었다. “안 돼.” 에일린은 중얼거리며 탁소리 나게 책장을 덮었다. 결국 존은 눈에 띄지 않도록 책들을 침대 밑으로 치워야 했다.:::



존 크롤리의 모든 것을 건 사투는 지난 2001년 <월스트리트 저널>에 소개되면서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폼페병 진단과 함께 다섯 살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사의 말은 크롤리 가족을 충격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폼페병이란 근육이 딱딱하게 굳어지다 호흡 곤란과 전신 마비로 사망하는 발병률 1000분의 1 미만인 희귀 질환으로 적절한 치료제도 없었다. 전 세계적으로 5000~1만명 정도가 폼페병을 앓고 있으며, 한국에는 십여 명의 폼페병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존은 연봉을 협상하지도 않았고-세후 20만 달러에 달하는 브리스틀마이어스의 연봉보다 적었다- 아이들을 치료하는 데 꼭 필요한 의료보험에 대해서도 묻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주저하는 모습을 내비쳤다가는 간절히 원하는 자리를 놓치게 될까봐 두려웠다. 가족을 데리고 오클라호마시티로 이사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이런 문제들은 나중에 생각하면 될 터였다.

“저는 정말로 이 일을 맡고 싶습니다.”

존은 얼굴을 환히 빛내며 강하게 의견을 피력했다. 그리고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두 남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한번 해봅시다.”:::



존 크롤리 역시 영화 <로렌조 오일>의 오돈 부부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을 살릴 수 있는 단 1%의 가능성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다. 그 헌신적인 사랑은 그가 CEO로 재직하던 노바자임에 1억 달러의 투자금을 유치해내고, 제약회사 젠자임의 부사장이 돼 최초의 폼페병 치료제 마이오자임을 탄생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치료약 개발의 성공으로 아이들의 상태도 호전됐다. 특히 둘째 메건은 일반인에 비해 두 배로 부풀었던 심장이 정상 크기로 돌아왔다. 혼자 앉거나 손을 들어올릴 수도 있게 됐다. 안타깝게도 그 후 아이들의 건강 상태는 정체기를 맞이했지만 존은 좌절하지 않는다. 이제는 병을 초조해하기보다는 일생 동안 아이들과 함께 완주해야 하는 마라톤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크롤리 가족은 각자의 제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지금의 보석 같은 순간을 마음껏 즐기고 있다.


폼페병 치료제를 개발하고 아이들도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아이들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존 크롤리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그는 제약업계의 끈질긴 러브콜을 받아들여 유전성 희귀질병 치료제를 연구하는 어미커스의 CEO로 복귀했다. 물론 차세대 폼페병 치료제 연구도 계속하고 있다. 그는  “아이들의 목숨을 걱정할 필요 없이 일을 즐기면서 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그는 말한다. 존이 젠자임에서 개발했던 치료제는 마침내 2006년 FDA의 승인을 얻어 ‘마이오자임’이란 이름으로 전 세계에 시판되고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존 크롤리의 특별한 여정은 역경을 이겨내는 희망과 긍정의 힘을 선사하는 동시에 나와 가족이 누리는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재발견하게끔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