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 끝 기행≫은 두 만화가가 함께한 여행의 기록이다. 출발은 바람 타는 섬, 제주다.


사진_펜 끝 기행ㅣ박인하 글 최호철 그림ㅣ디자인하우스 펴냄.jpg 같은 학교 교수로 만나 함께 떠난 제주도 교직원 연수는 펜 끝 듀오가 결성된 계기다. 이후 이들의 여정은 만화의 나라 일본, 예술의 나라 이탈리아, 그림 같은 풍경의 나라 스위스, 상상 이상의 충격을 주는 중국을 거쳐 다시 우리 땅 울릉도와 독도를 거쳐 마무리된다.


이 책의 지은이인 최호철과 박인하는 학교에서 만화를 가르친다. 이들은 지난 5월5일 어린이날을 즈음해 찾아온 ‘불량 만화 화형식’의 주홍글씨를 가슴에 새기지 않은 만화인들이다. 최호철은 화가였다가 만화를 붙들었고, 박인하는 글쟁이였다가 만화를 붙들었다.


만화에 붙들린 이들은 세계를 바라볼 때 만화적으로 본다. 일단 빈 종이가 있으면 무조건 그리고, 조금이라도 분위기가 추락하면 농담을 날리고 싶어 한다. 전자가 최호철이고, 후자가 박인하다.


그러난 지은이들은 천성이 숫기가 많은 사람들은 아니다. 은근 부끄럼쟁이들. 그래서 낯선 이들하고 떠들고 노는 것보다, 친한 이들과 수다 떠는 것이 좋다. 그러니 이들이 함께한 ‘펜 끝 기행’에서 서로 공유하는 추억은 꽤 많다. 최호철은 여행지마다 그림을 그렸고, 박인하는 최호철의 크로키 북을 뒤적이며 농담을 던졌다.


최호철은 성의 없게 그린 그냥 낙서라고 말하지만, 박인하가 본 그의 크로키 북에는 그냥 묵히기 아까운 그림들이 너무 많았다. 이 책은 그렇게 시작한 작업이다. 그 동안의 그림들을 다시 모았고, 글을 고쳐 썼다.


최호철의 그림은 수다 떠는 그림이다. 살펴보면, 크로키 북에 그린 사람이 어느 순간 아주 구체적인 읽은 이의 모습이 되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의 모습이 되기도 한다. 때문에 책은 최호철과 박인하가 함께한 여행의 추억을 읽는 이들도 고스란히 함께 나눌 수 있는 책갈피 속 그림 여행인 것이다.


최호철은 크로키 북을 365일 휴대한다고 한다. 없으면 불안해서 아무것도 못한다고. 크로키 북에는 주로 그림이 있는데 간혹 글도 있다. 강연을 들었다 치면 강연자를 그린 그림과 강연자가 한 말 중 감명 깊게 들은 말을 적는 식이다. 그림이 있으면 꼭 글이 있어야 한다는 게 그림쟁이 최호철의 지론이다. 그래서 크로키 북을 중심으로 구성한 이 책에서는 그림도 읽고, 글도 보는 재미가 있다. 이것이 한 페이지에 되도록 많은 이야기를 담는 최호철의 스타일이다.


최호철은 비행기에서 스튜어디스를 만나도 여객선에서 보따리상 아저씨를 만나도 그들을 재빠르게 그려낸다. 구도를 재지도 않고, 미리 밑그림을 그리지도 않고 펜을 꺼내 그냥 쓱쓱. 이렇게 여행 중에 만나는 풍경들이 고스란히 책에 등장한다.

 

책은 사진처럼 풍경을 그대로 담는다기보다는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을 재구성했다. 이렇게 그린 최호철의 ‘한 쪽짜리 만화’들을 박인하가 여행 동선에 따라 다시 모아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로 만들어냈다.

지은이들은 누구도 의식하지 않은 채 사람 좋은 웃음과 세상을 섬세하게 잡아내 글과 그림으로 엮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