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변화시킬 수 있을까? 총을 들고 거리를 떠돌던 아이가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연주자가 돼 콘서트에 참여하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고단한 삶을 술과 마약에 기대어 견뎌내던 사내가 아들의 연주를 듣기 위해 클래식 공연장을 찾는 일이 가능할까?


사진_엘 시스테마, 꿈을 연주하다ㅣ체피 보르사치니 지음ㅣ김희경 옮김ㅣ푸른숲 펴냄.jpg 이런 기적과도 같은 일이 베네수엘라에서는 지난 35년간 30만 명의 삶에서 매일같이 일어났다.

 

≪엘 시스테마, 꿈을 연주하다≫는 남미 최대의 산유국이지만 극심한 빈부격차로 전 국민의 30퍼센트 이상이 빈민층인 나라, 총격 사건과 마약 거래, 폭력으로 얼룩진 나라 베네수엘라에서 거리의 아이들에게 무료로 악기를 나눠주고, 오케스트라 연주를 가르쳐 아이들을 가난과 폭력에서 구해온 음악 교육 시스템 ‘엘 시스테마(El Sistema)’의 35년 역사를 담고 있다.


엘 시스테마는 지난 1975년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가 8명의 젊은 음악가를 모아 창립한 최초의 국립 청소년 오케스트라가 발전해 이뤄진 전국 규모의 음악 교육 시스템으로, 정식 명칭은 베네수엘라 국립 청년 및 유소년 오케스트라 시스템 육성 재단(FESNOJIV)이다. 현재 전국 221개의 음악 학교와 500개가량의 오케스트라에서 30만 명의 아이들이 오케스트라 연주를 배우고 있고, 그 가운데 60퍼센트 이상이 사회 경제적 빈곤 계층이다.


음악이 한 사람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빈곤과 체념의 문화가 대물림되는 것을 막아 그의 가족과 마을, 사회를 변화시키리라 믿은 초기 개척자들의 헌신, 그 혜택을 받아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자라난 음악가들, 또 그들에게 음악을 배우는 다음 세대 아이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살아 있는 이 책은 지금껏 부분적으로만 소개된 엘 시스테마의 온전한 모습을 국내에 소개하는 첫 책이다.


엘 시스테마는 1975년 경제학자이자 음악가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가 최초의 국립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창립하면서 시작됐다. 빈민가의 차고나 창고를 전전하며 연습하던 오케스트라는 국내외에서 성공적인 공연을 치르며 규모를 키워갔고, 오케스트라 멤버들은 전국 각지에 음악 교육 센터를 세워 빈민가 아이들에게 악기 연주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60퍼센트 이상이 사회 경제적 빈곤 계층으로, 가난과 폭력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던 아이들은 음악을 배우며 비로소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고, 미래를 꿈꾸게 됐다.


처음부터 솔로보다는 오케스트라 연주를 중심으로 실시되는 음악 교육은 거리를 떠돌던 아이들에게 소속감을 주고, 단체 생활을 통해 질서와 규율, 책임과 의무, 배려와 헌신 등 가치를 익히게 해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줬다.

 

베네수엘라에서는 현재 전국 221개의 음악 학교와 500 개 가량의 오케스트라에서 30만 명의 어린이, 청소년들이 음악을 배우고 있다. 그들은 세계적인 음악가로 성장한 구스타보 두다멜이나 에딕손 루이스를 바라보며 탁월한 음악가를 꿈꾸기도 하고, 음악 이외의 분야에서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멋진 선배들을 보며 또 다른 미래를 꿈꾸기도 한다. 지난 35년간 엘 시스테마가 이룬 가장 큰 성취는 함께 연주하며 자기 앞에 놓인 불행과 싸워나간다면 누구에게나 더 나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음악의 약속’, 꿈꾸는 자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흔들림 없는 믿음일 것이다.


스물아홉 살의 클라리넷 연주자 레나르 아코스타는 소년원 안에 설립된 음악 학교인 로스 초로스 센터에서 어린 학생들을 가르친다. 그러나 그는 열다섯 살 때까지만 해도 시장에서 신발과 옷을 팔고, 온갖 종류의 마약을 하고, 총을 들고 강도짓을 하는 ‘거리의 아이’였다. 소년원에 들어가서도 문제를 일으켜 도주했다가 다시 잡혀 들어온 게 열다섯 살 때였다. 그 무렵 청소년 오케스트라 프로젝트가 로스 초로스 센터에 왔다. 난생처음 보는 클라리넷이라는 악기에 매료된 그는 그때부터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전문 음악원에서 클라리넷을 배워 후배들을 가르치게 되었고, 대안 시스템을 통해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산업 디자인도 공부하고 있다.


베네수엘라에서 레나르 아코스타의 삶은 결코 특별한 예가 아니다. 가난과 폭력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전쟁처럼 살던 아이들이 전국 각지의 수많은 오케스트라와 음악 학교에서 삶의 극적인 전환을 경험하고 있다.


“나는 손에 바이올린을 든 모든 아이는 무기와 마약의 폭력에서 안전하게 떨어져 나온 아이라고 믿습니다.” 엘 시스테마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타르시시오 바레토의 이 말처럼, 엘 시스테마는 그들에게 평화와 안정, 나아가 사회 안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과 기회를 준다.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이 생긴 아이들은 최선을 다해 음악에 몰두하고, 엘 시스테마는 그 노력에 걸맞은 자리를 마련해주는 방식으로 사회 밖에 있던 아이들을 사회 안으로 통합시키는 것이다. 설사 음악가가 되지 않더라도 아이들은 오케스트라 안에서 배운 도전의식과 협동심, 질서, 선의의 경쟁, 화합과 연대 등의 가치를 실천하며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해간다.


엘 시스테마가 일으키는 변화는 아이들의 삶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 아이들이 연습을 마치고 돌아가는 가족과 마을에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연주하라, 그리고 싸워라’는 1976년 이래 엘 시스테마를 이끌어온 모토다. 이 말은 한 아이가 악기를 연주하며 자기 앞에 놓인 삶의 여러 장애물을 넘어서는 강력한 의지가 되는 동시에, 음악 교육에 대한 고정관념에 도전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빈곤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애써온 초기 개척자들의 분투와 헌신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클래식 음악 교육을 통해 사회를 개혁하겠다는 의지로, 전국 규모의 오케스트라 교육이라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추진해온 ‘엘 시스테마의 심장’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와 8명의 개척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최초의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조직하고, 이어서 전국 각지에 음악 학교와 오케스트라를 세우며 엘 시스테마의 기초를 닦았다.


엘 시스테마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아브레우라는 인물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에는 35년 전 한 청년이 만든 작은 오케스트라가 전국에 걸친 음악 교육 시스템이 되고, 나아가 전 세계적인 사회 운동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상세하게 소개돼 있다. 이 모든 것이 아브레우라는 한 사람의 의지와 신념에 의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솔로이스트를 양성하는 음악 교육에 반기를 들고, 처음부터 오케스트라에 소속돼 합주를 통해 악기 연주를 익혀가는 방식을 택했다. 2년간 개인 레슨을 받는 것보다 60회의 공연을 치르며 동료, 지휘자, 관객과의 역동적 관계 속에서 음악을 배우는 편이 훨씬 자연스럽고 효과적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또한 부유층의 전유물처럼 되어버린 클래식 음악의 낡은 권위를 무너뜨리고, 원한다면 누구나 악기를 부여받아 오케스트라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진입 장벽을 없앴다. 이는 현대 클래식 음악 교육에서는 매우 혁명적인 방식으로, 아브레우는 그 효과와 사회적 기능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에 맞서 정부의 지원을 유지하며 완벽한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자신의 삶 모두를 바쳤다.


그동안 엘 시스테마는 세계 문화예술 중심지들에서의 성공적인 공연과 거장들과의 협연을 통해 그들이 이룬 기적을 전 세계에 알려왔다. 그 결과 세계 각지에서 엘 시스테마를 모델로 삼아, 자신의 재능과 지식을 사회에 환원하고자 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정명훈, 장한나 등의 음악가들과 정부, 기업,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문화예술 교육이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되고 있다.


특히 첼리스트 장한나는 한 TV 프로그램에서 엘 시스테마를 언급하며 청소년들을 위해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쓰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로스트로포비치, 미샤 마이스키 등 세계적 거장들에게 돈 한 푼 내지 않고 가르침을 받았던 그녀는 실제로 자신이 지휘자로 변신해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이끌며 ‘한국형 엘 시스테마’의 기반을 구축해가고 있다.


이 책은 자신의 재능과 지식을 세상과 나누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상적인 예를 제시한다. 아울러 사회와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뒷받침돼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