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하게 정오쯤 일어나 단골 카페에 출근 도장 찍듯 출몰해 커피를 리필까지 해서 몇 잔 마시며 낙서가 아니라 작업을 한다. 아니면 집에 틀어박힌 채 텅 빈 밥통을 바라보며 소파와 한 몸이 돼 있거나 이제는 하루라도 안 보면 서운하도록 친근해진 우체국 택배 아저씨를 기다린다. 저녁이면 으레 술 약속이 있다. 가끔 여행을 가고 야구도 보러 가고 여전히 ‘취업’과 ‘결혼’에 대해 미련을 버리지 않는 부모님도 설득해야 한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역시 밥벌이는 힘들어서 닥쳐오는 마감 독촉에 괴롭기도 하다.


사진_그래요 무조건 즐겁게!ㅣ이크종 지음ㅣ위즈덤하우스 펴냄.jpg 직장인이라면 조금은 부러워할, 비슷한 처지의 백수나 프리랜서라면 매우 공감할 일상의 한 장면이다. ≪그래요, 무조건 즐겁게!≫는 그동안 블로그와 홈페이지 등에 자신의 일상을 위트 있게 그려내 많은 호응과 공감을 받아왔던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카투니스트 이크종의 첫 에세이다.

 

부스스한 머리에 흰 팬티 하나만을 걸친 지은이는 전날 밤 술자리에서의 일이 기억나지 않아 난감해하고 끼니와 집 안 청소를 귀찮아하는 평범한 30대 초반 ‘남자아이’의 하루하루를 간결한 선과 개성 있는 카툰과 글, 일러스트로 표현하고 있다.


홍대 앞 몇몇 카페를 작업실로 삼고 앉아 그림 그리는 한편 친구들과의 수다에 열광하고 인터넷쇼핑과 커피와 맥주가 없는 하루를 상상하기 힘든 지은이는 자신의 삶에 대해 백수는 아니지만 ‘백수지향인생’이라고 정리한다.


그래요 무조건 즐겁게! 조금은 느리고 조금은 불안할지 모르지만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며 즐길 줄 아는 지은이는 이 책을 통해 소소한 일상에서 반짝이는 즐거움을 찾아내는 섬세한 감성과 톡 쏘는 발랄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2006년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지은이는 주위의 예상을 깨고 모 건설회사에 당당한 취업했다. 하지만 ‘역시나 예상대로’ 98일 만에 사직서를 내고 백수 아닌 백수의 삶으로 들어섰다. 이 때 그의 생각은 오로지 하나. 평소의 걸음걸이처럼 ‘느리게 터벅터벅’ 걷는 삶을 살는 것이었다.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카투니스트로서 일한 지 이제 어언 4년. 그는 누구는 귀엽다고 하고 누구는 옷 좀 입으면 안 되냐고 묻는 캐릭터를 내세워 생략은 있을지언정 과장은 없는 매일의 에피소드들과 생각을 그려 블로그와 홈페이지에 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