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청각장애인으로서는 최초로 중국 내 대학은 물론 미국 명문 대학에 진학하며 수많은 중국인에게 희망을 선사한 저우팅팅.


사진_기적을 만든 천만번의 포옹ㅣ저우팅팅 지음ㅣ나진희 옮김ㅣ김영사 펴냄.jpg ≪기적을 만든 천만번의 포옹≫은 ‘중국의 헬렌 켈러’라 불리는 저우팅팅의 자전에세이로, 생후 1년 만에 청각장애인이 된 순간부터 미국의 보스턴 대학에 유학하기까지를 담은 도전과 희망의 기록을 담고 있다.

   

어린 시절 말을 배우기 시작해 미국 보스턴 대학의 학생이 되기까지, 지은이가 해낸 일은 중국의 청각장애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이뤄낸 기적 같은 일이라고 회자된다. 그를 ‘천재’라 부르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그는 청각장애인라는 점을 빼고는 아이큐 110의 지극히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기적 같은 일을 가능하게 했을까?

 

지은이가 명문대생이 되기까지는 유치원 시절부터 ‘벙어리’라는 놀림을 참아내야 했던 눈물, 듣지 못하는 대신 남들보다 몇 배 더 노력해야 했던 땀이 있었다. 그러나 그 뒤에는 절절한 가슴을 붙잡으며 끝없이 희망을 안고, 아이를 안았던 가족의, 아버지의 포옹이 있었다. 


어느 해 겨울,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급히 유치원을 나섰다. 아버지는 두 손으로 자전거 핸들을 꽉 붙잡았고, 나는 그 중간에 앉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거리를 오고 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때 아버지는 나의 불행한 운명을 생각했으리라. 아버지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연신 오른손으로 눈물을 닦았다. 나는 오른팔이 갑자기 보이지 않자 호기심에 오른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다 순간 몸이 한쪽으로 기울더니 쿵 하고 땅으로 떨어졌다. 내 울음소리에 오가던 사람들이 다 우리를 보았다. 아버지는 어색하게 웃으며 진흙구덩이에서 나를 안아 올려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황급히 달아났다. 자전거를 타고 오는데 살을 에는 매서운 바람이 불었다. 하지만 당시 아버지의 마음은 뼈를 에는, 더한 찬바람을 맞고 있었으리라.



지은이의 가족, 특히 아버지는 끊임없이 딸에게 적합한 교육 방법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며 가장 알맞은 교육 방법으로 아이에게 희망을, 도전할 힘을 안겨줬다.

     

팅팅의 자전 기록 속에는 글자를 가르치기 위해 아버지가 만들었던 낱말카드부터 수학의 원리를 깨우치기 위한 창작 동화, 과학 공부를 위한 놀이 등 곳곳에서 아버지의 교육 방식을 접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은 장애를 가진 아이들뿐만 아니라 보통 아이들에게 어떻게 교육하면 좋을 지에 대한 훌륭한 교재가 돼준다.


무엇보다 아버지는 아이를 존중해주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교육이라는 점을 깨닫고 지은이에게 칭찬과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넌 청각장애인으로서 지금까지 누구도 해내가 어려운 길을 걸어왔어. 말해봐, 아빠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네가 아니면 또 누구겠니?’라는 아버지의 편지는 이러한 아버지의 마음을 짐작하게 한다.


지은이는 지난 1980년 중국 난징의 한 병원에서 건강하게 태어났지만 한 살 무렵 갑자기 오른 고열을 내리고자 병원에서 처방한 젠타마이신 주사를 맞고 신경성 약물 중독으로 청력을 잃는다. 그러나 수화로 의사소통을 하는 여느 청각장애인과는 달리, 그는 세 살 무렵부터 식구들의 입 모양을 보며 말하기 시작했다. 다섯 살 무렵엔 2000여 자의 한자를 익히며 간단한 신문 기사 정도는 쉽게 읽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는 이를 바탕으로 비장애인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못난 아이는 없다. 잘못된 교육만 있을 뿐


아버지는 가슴 절절하게 팡자항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을 설득했다. 교장 선생님은 내가 2천여 글자를 익혔다는 것을 알고는 입학을 허락했다. 우리 식구들은 뛸 듯이 기뻐했지만 내가 건강한 아이들 사이에서 상처받지 않고 잘 적응할 수 있을지가 걱정이었다. 식구들은 할머니 댁 거실에 모의 교실을 만들었다. 집에 있는 식탁과 의자가 학교 책상과 걸상이었다. 아버지는 선생님이 되고, 어머니와 할머니, 할아버지는 동급생들이 되어 내 옆에 앉았다. 나는 모의 학습을 반복하면서 학교에서 지켜야 할 규칙을 배웠다. 마침내 개학 첫날이었다. 나는 책가방을 메고 들뜬 마음으로 현관 입구에 선 채 유리창에 입김을 분 다음 그 위에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적었다. 나를 배웅하는 아버지, 어머니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초등학생이 된 지은이는 아버지의 제안으로 비장애인조차 해내기 어려운 일에 도전한다. 바로 원주율 소수점 이하 천 자리 숫자까지 외우는 것. 그는 일정한 규칙으로 두 가지 숫자를 결합해 한 가지 발음을 만들고 그것을 한자로 변환한 후 그 글자에 맞는 이야기를 꿰어 기억하는 방식으로, 원주율 소수점 이하 천 자리 숫자를 암기하여 기네스북 기록을 경신한다. 이 경험은 그에게 큰 자신감을 안겨준다. 


지은이의 도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청각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1학년에서 3학년으로, 4학년에서 6학년으로 두 차례나 월반을 하며 우수한 성적으로 중·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이후 열여섯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중국 청각장애인 최초로 랴오닝사범대학에 합격한다.


지은이의 도전은 중국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그가 직접 출연한 영화까지 만들어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장애인의 삶을 다른 이 영화 촬영 중에 장애인 차별을 뼈아프게 경험한다. 그는 이를 계기로 장애인, 특히 청각장애인을 위한 삶을 살겠다는 결심을 하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세계에서 유일하게 청각장애인을 위해 설립된 미국의 갤로뎃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보스턴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마친다. 


청각장애인인 지은이가 미국의 명문대학에 진학하기까지는, 세상의 편견에 굴하지 않았던 팅팅 자신의 열정은 물론 애틋한 가족의 사랑과 특별한 아버지의 교육이 있었다. ‘세상에 잘못된 교육은 있어도 못난 아이는 없다’라고 말하는 아버지는 칭찬과 박수, 스스로 답을 찾게 만들어주는 질문으로 지은이에게 특별한 가르침을 선사했다.


이 책은 장애의 한계를 명랑한 웃음으로 극복한 지은이의 열정을 통해 우리가 지녀야 할 희망의 태도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큰 품으로 아이를 한없이 안아줬던 아버지의 가르침을 통해 세상에 모든 아이에게 선사할 진정한 교육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