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28일자 국내 모 일간지에선 당시 하토야마 유키오가 일본 총리가 정권을 교체한 후 처음으로 행한 ‘국회 소신표명연설(2009.10.26.)’에서 일본이화학공업이라는 공장을 3분이 넘도록 성의 있게 소개해 화제가 되고 있다는 기사가 게재된 바 있다. 한 국가의 수장이 평범한 중소기업에 대해 시간을 전폭적으로 할애해 언급한 것은 무척 이례적인 모습이었다.

     

사진_일하는 행복ㅣ오야마 야스히로 지음ㅣ고경문 옮김ㅣ페이퍼로드 펴냄.jpg 하토야마 총리는 일본이화학공업의 사례를 소개하며 “정부 예산만 늘린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자립과 공생’의 이념을 소중히 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설 전 하토야마 총리는 일본이화학공업을 직접 방문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자립과 공생의 이념이야말로 일본이화학공업 대표 오야마 야스히로가 평생 동안 지켜온 신념이다. 물론 오야마 대표가 젊은 시절부터 이런 생각을 실천하겠다고 나선 것은 아니다.


1932년생인 오야마 야스히로 대표는 공장 운영과는 거리가 먼, 문학을 꿈꾸던 청년이었다. 도쿄 대학교를 진학하고자 했지만 낙방을 거듭한 끝에 주오 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좌절을 통해 그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역경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경험을 최대로 살리는 인생을 살자’고 결심한 것이다.

   

삶의 전환기를 맞이한 그에게 아버지 오야마 요조가 설립한 분필제조회사인 일본이화학공업은 거역할 수 없는 숙명으로 다가왔다. 오야마 야스히로는 1956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일본이화학공업에 입사했다. 입사하자마자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대신해 실질적인 책임자 역할을 맡았다. 원래 교육자나 연구자가 되고 싶다는 희망을 품었던 그는 회사 운영을 통해 100퍼센트는 아니지만 다른 형태로 꿈을 실현시켰다. 바로 지적장애인과의 만남이다.


하지만 오야마 회장은 장애인들에게 일하는 행복을 본격적으로 누리려면 가야할 길이 멀다고 판단한다. 아직도 기업 대부분은 장애인을 고용하기 꺼려한다.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오야마 회장은 복지행정 당국이 일터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예산을 기업으로 돌리자고 제안한다. 이렇게 하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부담은 줄고 기업이 장애인을 고용하기가 쉬워진다.

오야마 회장은 자신의 구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회장으로 소속되어있던 전국 중도장애인 고용사업소협회 내부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쳐 좌절한다. 하지만 그의 신념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오야마 야스히로 대표가 ‘근로자’로서의 지적장애인의 가치를 깨닫게 된 때는 1959년. 공장 근처에 있던 도쿄 도립 세이초 양호학교에서 근무하던 선생님의 간청에 의해서였다. 마지 못 해 2주 체험 형식으로 학생들을 고용했는데, 식사시간도 잊어가며 열성적으로 일에 매달리는 그들의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 정규 직원들의 추천까지 힘입어 결국 이듬해인 1960년 양호학교 졸업생 두 명을 정식으로 고용했다.        


‘사람에게서 사랑받는 것’

‘사람에게서 칭찬받는 것’

‘사람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가 되는 것’

 

장애인들이 필사적으로 일에 매달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보호시설에서 안주하기보다는 회사에서 일하기를 열망한다.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이라면 자연스러운 행위다.


"일본어로 ‘일한다’는 의미의 하타라쿠(?)도 일본에서만 쓰는 국자(國字)입니다. 사람 인(人)과 움직일 동(動)이 합친 말입니다. 나는 하타라쿠가 ‘사람을 위해서 일한다’라는 의미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오야마 야스히로 대표는 더 많은 지적장애인을 본격적으로 고용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일본이화학공업을 지적장애인이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일터로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러한 방침으로 인해 뜻밖의 행운도 누렸다. 지방자치단체의 요청으로 제2공장을 유치하여 직원에 대한 정과 회사의 이익을 양립할 수 있었다.


‘세계 최고의 공장을 만들고 싶다’는 결심을 품은 오야마 대표는 제2공장을 지으며 좀 더 나은 기계 설비를 마련하고자 미국으로 갔다. 거기서 그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 미국에 지적장애인을 고용하는 회사는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일본에서, 세계 최초로 지적장애인 고용의 모델이 될 수 있는 공장을 만들어보자”고 다짐했다.


물론 지적장애인의 힘만으로 온전히 가동되는 생산 설비를 갖추는 것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오야마 야스히로 대표는 지적장애인들의 눈높이에 맞춘 설비를 개발해 비장애인과 똑같이 일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또한 지적장애인만의 능력으로 일본공업규격(JIS)에 적합한 정밀도 높은 분필을 생산해내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성공은 오야마 대표 혼자만의 공로가 아니다. 전 직원이 장인 정신으로 하나가 되어 피와 땀을 흘린 결과로 성취한 것이다.           

   

일하는 행복.jpg 

 

이처럼 공정 개혁을 통해 회사의 간판 제품인 ‘더스트리스 초크’를 안정적으로 생산하게 됐지만, 시장 환경은 점차 예전 같지 않았다. 특히 칠판을 상당수 대체하는 화이트보드의 등장으로 분필 시장 전체에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오야마 회장은 가루가 전혀 나오지 않으며 화이트보드에도 사용이 가능한 분필을 상품화하기로 결심했다.


고단하고 기나긴 과정 끝에 마침내 2005년 일본이화학공업은 혁신적인 신제품 ‘키트파스’ 개발에 성공한다. 키트파스는 가루가 전혀 날리지 않으며 화이트보드는 물론 매끄러운 표면이라면 어디에도 사용할 수 있다. 또 어린이들의 감성 개발을 주요 목적으로 하는 ‘키트파스 키즈 12색’을 출시해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일하는 행복≫은 74명의 공장 직원 중 지적장애인이 무려 53명인 분필을 제조하는 기업 일본이화학공업의 작지만 강력한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누구나 일을 하며 행복해하는 세상을 꿈꾸는 오야마 야스히로 대표의 감동 넘치는 사연을 전한다. 그는 말한다. “경영자도 정사원도 일용직도 남자도 여자도 노인도 젊은이도 그리고 장애인도 모두가 차별 없이 ‘일하는 행복’을 생생하게 느끼는 사회. 나는 이러한 사회가 실현되는 게 결코 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