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액 연봉을 받는 몇몇 직장과 직업군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제외한 나머지 직장인들은 월급날이 두렵다. 거만한 자세로 급여통장에 들어온 임금은 하루가 길다하고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거의 흔적도 없이. 하늘 높은 줄 모르게, 그러나 구렁이 담 넘어 가듯 치솟은 물가 때문에 사는 건 늘 팍팍하고, 부모에게 가장 큰 선물이던 아이들은 자랄수록 커다란 십자가로 변한다.


사진_좌파들의 반항ㅣ로버트 미지크 지음ㅣ서경홍 옮김ㅣ들녘 펴냄.jpg 그러나 이런 걱정을 할 수 있는 처지라면 오히려 행복한 축이다. 복지와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에겐 중산층 사람들이―비록 무늬만 중산층이지만―그저 부러움의 대상일 뿐이다. 이들은 마음 놓고 아프지도 못하고, 바라는 대로 교육을 시킬 수도 없고,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게 되어도 하소연할 수조차 없다. 한때나마 사회의 문제로 간주됐던 사안들이 어느 순간부터인가 개인의 문제가 돼버린 탓이다. 문제를 인식한다 해도 거기서 대안을 찾기란 더욱 어렵게 됐다. 일상의 덫에 걸려 미래를 꿈꿀 시간은커녕 하루를 정리할 여유조차 갖지 못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유사 이래 가장 다양한 환상을 제시해주는 화려한 시기를 가장 불행하게 살아가고 있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고, 뭔가 잘못되고, 그래서 계속 불편하다고 느끼면서. 물론 대한민국에 국한된 현상만은 아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좌파들의 반항≫은 글로벌시대의 좌파란 과연 무엇이고, 어떤 의미인지를 날카롭게 해체해 보여주고 있다. 지은이 로버트 미지크는 21세기에 다시 고개를 든 신좌파의 물결을 하나의 증후군으로 파악한다. 자본주의를 ‘어딘지 모르게 삶을 불편하게 만드는’ 체제로 받아들이면서 현실에 불만을 느끼는 대중이 이제 정치적 대안을 동경하며 진실한 삶을 발견하고자 노력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 대안을 ‘반항적인 사고’에서 찾고, 세계적인 문제아로 낙인 찍힌 일군의 반항아들의 사고와 행동을 낱낱이 분석한다.


미국에서 가장 뚱뚱한 스마트 웨폰 마이클 무어, 메이커 지상주의를 비판한 캐나다의 여성작가 나오미 클라인, 전 세계를 누비는 엔터테이너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 우아하지만 삐딱한 이론가로서 <제국>을 선보인 토니 네그리, 브레히트의 소외효과를 재발견한 르네 폴레쉬 등이 바로 그 대상이다.


비판적인 세대의 새로운 목소리라는 평가를 받은 ‘우리는 영웅’을 비롯한 대중문화계의 반항아들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분석 대상이다. 지은이는 이들처럼 문제를 제기하고, 반대를 표명하고, 대안을 찾아가는 좌파적인 삶의 방식을 택하는 것만이 한 개인이나 사회가 가장 ‘똑똑하게 존재’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한다.


책은 체제전복을 꿈꿨던 지난 세기의 좌파와 달리 신좌파는 맹목적인 글로벌주의와 상업주의에 매몰된 신자유주의 세력을 비판하고 견제한다.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커지는 인간의 욕망과 이에 따라 드러나는 자본주의의 결함을 좌파의 삐딱한 생각들이 메워준다고 보는 것이다.


‘래디컬 시크’, 책은 새로운 좌파는 이렇게 탄생한다고 이야기한다. 지은이는 이 같은 현상을 날카롭게 분석한다. 사상가는 물론 영화감독, 팝가수, 운동가 모두를 아우르면서 그들의 사고와 행동이 사회에 미친 영향들을 살핀다. 그러면서 글로벌 좌파 트렌드의 원인을 밝히고 미래를 전망한다. 그는 특히 90년대 글로벌 좌파의 경향의 대표적 예라 할 수 있는 아탁, 안티글로벌리제이션, 마이클 무어, 토니 네그리, 슬라보예 지젝뿐 아니라 르네 폴레쉬와 토마스 오스터마이어의 연극을 예리하게 해부한다.


그러나 좌파의 신화 속에 존재하는 영웅들을 심판대 위에 올려놓는 것도 잊지 않는다. 체 게바라와 안드레아스 바더를 통해 생산과 소비라는 끊을 수 없는 연결고리 안에서 그들이 어떻게 ‘좌파 영웅’이라는 상품으로 존재하게 됐는지를 밝히면서 개인주의를 비롯한 모든 것이 이윤의 원리에 종속되고 예술과 문화마저 잉여가치로 전락하였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지은이는 마르크스에서 마이클 무어에 이르는 비판적 사고에 여전히 기대를 건다. 서문에서 밝혔듯 좌파로서 존재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존재방식’이며 비뚤어진 자본주의체제 아래서 주류가 움직이는 방향을 조금이나마 바꿀 수 있는 동력이 된다고 믿는 것.


“누구나 결국 아름다운 삶을 살고 싶어하는 게 아닌가? 그러나 아름다운 삶이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그것을 이룩할 수 있는가? 그 전제조건들은 어떻게 변해왔는가?” 지은이는 특히 좌파의 영혼들을 따라 떠도는 아름다운 삶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러한 의문점을 좌파의 입장에서 고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