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명이 시작된 이래로 인간에게 이로웠던 시기는 예외 없이 온난기였다.”

 

사진_기후의 문화사ㅣ볼프강 베링어 지음ㅣ안병옥 이은선 옮김ㅣ공감in 펴냄.jpg ≪기후의 문화사≫는 ‘기후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문명의 흥망성쇠를 분석, 기후변화의 해답을 인류의 문화적 대응에서 찾아간다.

 

모든 문명의 전환기는 기후변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는 이 책은 수렵문화에서 농경문화로의 이행, 로마제국의 흥망성쇠, 마야를 비롯한 중남미 문명의 붕괴, 30년 전쟁과 프랑스 대혁명 등 인류 문명에 영향을 끼친 역사적 대사건의 배후에는 하나같이 기후변화라는 원인이 도사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책에 따르면, 맹목적인 교리에 의존해 기후현상을 해석해 나가던 중세의 권력자들은 변덕스런 날씨의 책임을 인간이 저지른 죄악 탓으로 돌렸다. 이에 속죄양으로 삼을 만한 이를 형벌에 처함으로써 신의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마녀사냥으로도 기후변화는 멈추지 않았고, 도리어 이러한 비이성적인 행위를 중단했을 때에야 비로서 기후변화를 극복하고, 세계는 정보통신과 과학, 농업과 산업생산 분야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이뤘던 근대로 이행할 수 있었다.

 

기후현상이 한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는 그 사회가 지닌 사회문화적 조건에 따라 다르다. 화산분출의 결과 1784년 이래 기초식량의 가격은 전 세계적으로 상승했으며, 농산물 가격 폭등은 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일본과는 달리 북아메리카와 유럽에서는 1787년 이후에도 상황이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많은 강설과 한파에 이어 가뭄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짜르 체제의 러시아에서 발생했던 1788년의 가뭄은 봉건제 말기의 계몽된 프랑스에서와는 다른 영향을 주었다. 미국의 경우 식민주의의 멍에로부터 해방되었던 유럽정착민들은 충만한 용기로 미래를 바라보았던 반면, 위기를 새로운 아메리카국가가 가한 억압의 결과로 인식했던 토착원주민들은 원주민 해방운동을 확산시켰다.


 

지은이 볼프강 베링어는 인류 역사상 일정하고 정상적인 기후란 본래부터 존재하지 않았으며, 오직 빙하기와 간빙기(온난기)의 두 시기만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빙하기의 자손이지만, 문명은 온난기의 산물인 것이다.

 

지은이는 또 오늘날 얼음으로 덮여 있는 그린란드를 왜 ‘화이트란드’가 아닌 ‘그린란드’로 부르게 됐는지 예로 들고 있다. 중세 중기는 온난기였으며, 때문에 그린란드는 눈이나 얼음이 아닌 초목으로 뒤덮여 있었다는 것. 그는 당에 바이킹이 그린란드에 식민지를 건설해 전성기를 누릴 수 있었다고 지적하며 “불타는 지구, 아직은 아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빙상, 산호초, 심해퇴적물, 나무 나이테 등을 분석한 최근의 연구결과는 당시의 온난기는 북대서양과 그린란드 남부, 유라시아 북극, 북아메리카 일부 지역에 국한되었던 현상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지은이는 오늘날 지구온난화가 인간의 활동에 의해 빚어진 결과임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이러한 기후변화를 끔찍한 재앙으로만 파악하려는 시각은 단호하게 거부한다. 그는 역사상 기후변화의 불길한 예언과 달리 세계는 멸망하지 않았으며, 도리어 계몽의 시대와 함께 산업혁명의 문을 열어 역사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해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지은이의 논리는 오해의 소지와 함께 허점을 지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책에서 인간이 굶주림에서 해방되고 자연의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계기로 산업혁명을 예로 들고 있지만, 이는 한편으로 오늘날 이상기후의 직접적인 원인이기도 한 ‘화석연료의 대량 소비’가 시작된 시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즉, ‘기후는 늘 변화해왔으므로 단지 침착함을 유지하라’는 지은이의 주장은 지금 당장 기후변화로 생존을 위협받고 있는 기후난민의 처참한 현실 앞에 읽은 이에게 원인 모를 불편함을 안겨준다.

 

책은 ‘더 이상 지구온난화를 피할 수 없다면 인류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가?’라는 IPCC 제 4차 보고서의 문제의식과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 지은이는 기후변화를 우리 세대에 주어진 공동의 도전으로 정의하고, 함께 해결책을 찾아나갈 것을 주장한다. 자연과 공학이 주도하고 있는 기후변화 담론을 역사학을 비롯한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으로 보완하자고 권한다. 기후변화의 거대한 도전 앞에서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패닉 상태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변화된 조건에 적응하려는 ‘문화적 상상력’인 것이다.

 

책은 독일에서 출간 당시 과학자들과 기후학자들로부터 논쟁거리가 되며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독일의 유력 일간지 <쥐트도이체 차이퉁(Sueddeutsche Zeitung)>을 비롯해 공영방송인 NDR 등에 몇 주에 걸쳐 ‘이달의 책’으로 선정될 만큼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지은이는 현대의 지구온난화의 리트머스 시험지로 보여지는 13~19세기의 ‘소빙하기’에 집중하며, 이 시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