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일간지는 쌀 80㎏ 한가마가 12만 원대를 기록했는데, 이는 2년 사이에 가격이 20퍼센트나 폭락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쌀 소비량이 너무 많이 줄어 올해에도 많은 쌀이 남아돌 것이라는 점, 정부에서 쌀을 무제한 수매하기로 결정했으며 북한에 쌀을 지원하는 방안, 쌀 소비 촉진을 위해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고 쌀 가공식품을 개발 검토 중이라는 점 등이 기사의 주된 내용이었다.


사진_살림의 밥상ㅣ김선미 지음ㅣ동녘 펴냄.jpg 그러나 이 기사는 더 이상 사람들에게 예전과 같은 충격을 주지 않았다. 인터넷에도 ‘농민들이 안됐다’ ‘오늘 저녁에는 집에서 밥을 지어 먹어야겠다’ 등의 댓글이 달렸을 뿐, 농촌의 현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댓글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우리 국민들이 예전처럼 ‘쌀(국산쌀)’을 먹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는 사실일  것이다. 아침은 거르거나 빵이나 음료수로 간단하게 때우고, 점심과 저녁은 대부분 밖에서 다양한 외식 메뉴로 간편하게 해결하는 것이 보편화된 요즘 밥과 국, 찬을 곁들인 식사를 하루 세 번 꼬박꼬박 챙겨먹는 일은 번거롭고 미련하며 시간 낭비라고 여기는 이들이 제법 많다.


드라마나 CF에서도 길거리나 사무실에서 샌드위치나 빵과 커피를 먹으며 일하는 젊은 직장인을 ‘21세기를 살아가는 경쟁력 있는 인재’로 묘사하고 있다. 우리에게 쌀은 더 이상 따뜻한 가정, 엄마의 사랑과 정성, 외할머니의 손맛이 아닌 ‘다이어트를 위해 가장 먼저 섭취량을 줄여야 하는 탄수화물 덩어리’ 정도로 여겨지고 있다. 오늘날 쌀이 처한 현실인 것이다.


착한 밥상으로 세상을 바꾸자


한 평범한 주부가 있었다. 그는 여느 주부들처럼 집 근처 아파트 단지 입구에 있는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고 쌀을 배달시키며 ‘나름 괜찮은 방식으로’ 살림을 살고 있었다.


지난 1994년 어느 날, 집에서 멀지 않은 새 도시에 대형할인점이라는 것이 생겼다. ‘신천지로 원정을 가듯’ 그곳을 찾은 날, 그는 신대륙이라도 발견한 듯 대형할인점의 매력에 사로잡히게 됐다. 주말이면 신문보다 두꺼운 전단지를 비교하며 최저가 상품을 찾아내는 재미에 빠졌고, 일주일치 장을 보고 대형할인점 내 푸드코트나 주변 식당에서 외식을 하면서 ‘저렴한 가격으로 합리적인 쇼핑을 하고 가족과 행복한 시간도 보내는 경쟁력 있는 삶’을 살게 된 것을 뿌듯해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이런 충만감은 사라리게 됐다. 세상은 점점 노골적으로 ‘부자되세요’라고 유혹했고, 소득이 없는 대학생들에게까지 카드를 발급해주며 소비를 부추겼고, 대출을 받아 집을 산 뒤 몇 년, 몇 십 년 동안 ‘갚기만 하면’ 누구나 내 집 마련에 성공할 수 있다고 속삭였다.

 

이런 현실에 심한 현기증을 느낀 부부와 아이들은 도시를 떠나 경기도 광주의 작은 산골마을에 정착했다. 어쨌든 밥은 먹고 살아야 했기에 하루 네 시간씩 걸리는 출퇴근 시간을 감당해야 했지만, 정신없는 도시를 떠난 것만으로도 꽤 만족할 수 있었다.


친구들과 선후배들, 심지어 양가 가족들에게조차 ‘철없고 경쟁력 떨어지는’ 사람 취급을 받았고, 친구들이 새 도시에 남은 친구들의 아파트 값이 폭등해 엄청난 돈을 벌었다는 소리도 심심찮게 들려왔다. 그렇지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물을 댄 논에 비친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풍경과, 해질녘 아이들과 강아지와 함께 논두렁을 산책할 수 있는 덕분이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스콧과 헬렌 니어링 부부, 윤구병 선생, 이대철 선생의 책을 통해 얻게 된 새로운 삶에 대한 영감도 이들 부부에게는 큰 힘이었다. 이렇게 자연과 가까워지면서 밥상에도 생각이 머물게 됐고, 우연한 기회에 ‘쌀’을 집들이 선물로 받게 되면서 ‘밥상’에 대해 진지하게,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밥상을 알면 알수록 도무지 안심하고 먹을 것이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밥상’이라는 말이 들어간 온갖 책들을 들춰 읽을 때마다 절대 먹어선 안 되겠다고 다짐하는 식품들이 하나둘 늘어갔다. 슈퍼마켓에서는 성분표시를 꼼꼼히 읽다가 도로 내려놓는 물품들이 하나둘 늘어갔다. 밥상을 들여다보면서 자연스레 우리 식생활이 변하게 된 역사와 경제구조들도 눈에 들어왔다. 밥상을 통해 나를 둘러싼 세상을 새롭게 공부하는 기분이었다.



밥상에 숨겨진 자본의 음모에 분노했고, 인류를 불행하게 만든 먹을거리를 저주했던 주부는 농부들을 만나면서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진실을 알게 될수록 절망과 증오가 넘쳤지만 땅에서 씨를 뿌리는 사람을 만나면 새로운 희망이 솟았다. 그것이 씨앗의 힘이라는 것도, 농부들의 땀방울이 세계를 지배하는 거대 기업의 자본과 맞서 싸우는 눈물이라는 것도, 우리 눈에는 고단하고 불쌍해 보이지만 정작 세상에서 가장 평화롭고 행복한 이들은 씨 뿌리는 사람들이라는 것도, 농부들을 만나면서 깨달았다. 


<살림의 밥상>은 주부 김선미가 밥상을 통해 깨달은 현실과 농부들과의 만남을 통해 발견한 희망을 정리한 책이다. 지은이는 위험한 먹을거리는 여전히 도처에 널려 있고 사람들도 더 이상 먹을거리를 신뢰하지 않지만, 그래도 아직 우리에게는 희망이 남아 있다는 것을, 목숨을 걸고 신앙생활을 하듯 땅을 섬기는 착한 농부들이 우리 주변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전한다.


주부로서 개인의 살림 이야기를 솔직하게 드러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지은이는 내 가족이 먹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진정한 밥상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 하나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은이는 생명의 농사를 짓고 있는 이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갔다. 진도를 비롯해 아산, 괴산, 눈비산마을, 옥천 등 전국을 누비며 농부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이야기까지 귀담아 듣는다. 생활의 근본인 밥상이 바뀌지 않으면 현실을 너무 쉽게 잊고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짧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수십 년 동안 정부의 지원은커녕 있는 재산까지 날려가며 땅과 뭇 생명을 살려온 그들의 삶과 생명의 먹을거리를 알리기 위한 일념으로.


책은 생명을 살리는 밥상, 하늘과 땅, 강과 바다, 산과 논과 들판, 동물과 지구 반대편의 가난한 이웃들까지 살릴 수 있는 밥상을 어떻게 하면 차릴 수 있는지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