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40년 간 화학을 연구해온 사람이 있다. 그는 평생 연구하고 강의하면서 자신의 전공인 화학이 ‘정말 아름답고, 우리 인생과 완벽하게 닮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한다.


사진_화학에서 인생을 배우다ㅣ황영애 지음ㅣ더숲 펴냄.jpg 그 과학자는 정년을 몇 년 앞둔 어느 날부터 주변 지인들과 제자들에게 일련의 화학현상들을 인생에 비유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화학에서 인생을 배우다≫는 황영애 교수(상명대 화학과)가 그동안 공부해오고 이야기해온 ‘화학, 그리고 화학을 통해 바라본 인생의 깨달음’을 담은 책이다.

 

책에는 19가지의 화학적 개념들이 나온다. 원자의 구조부터 플라즈마, 동소체, 오존, 촉매, 엔트로피 등 많은 화학적 개념과 현상들을 설명하고 있다.


지은이는 산소의 성질과 역할에 대해 이 같이 설명한다.


“사람의 경우에도 누군가에게 너무 집착하면 그 사람을 불행하게 할 뿐 아니라 생명까지 잃게 할 수도 있다. 한편 산소는 어떤가? 산소가 많아지면 그 주변에서 산소를 원하는 정도가 적어지니 금속에 결합한 채로 있어 주고, 부족해지면 결합해 있던 산소가 해리되어 필요한 곳으로 간다. 이처럼 자신이 원해서라기보다 주위 환경이 원하는 방향으로 금속에 붙었다 떨어졌다 하는 산소의 성질 때문에 생물체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인간은 이처럼 헤모글로빈에 결합하는 산소처럼,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서는 아무리 어렵더라도 확실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아야 할 자리에서는 훌훌 털고 떠나갈 수는 없을까?”



또 단원자 분자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헬륨He, 네온Ne, 제논Xe, 라돈Rn은 원자 혼자서 존재하는 단원자 분자다. 이들 단원자분자 단체의 이름은 활성이 없다고 비활성 기체, 영어로는 Inert Gas라 하나, 아무에게도 기대지 않고 고고하다는 뜻으로 Noble Gas라고도 한다. 다른 원소들은 분자를 만들고서야 이룰 수 있었던 전자배치를 비활성 기체는 남의 도움 없이 이미 스스로 이루고 있으니 다른 원자들과 반응할 필요가 없어서 안정할 수밖에 없다. (…) 제논은 값은 비싸지만 불연성이며 체내에서 쉽게 제거되므로 마취제로 쓰이고, 라돈은 방사성 요법에 사용된다. 이렇게 홀로 서 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활성이 없어 아무 일도 못할 것 같은데도 나서야 할 곳에서는 좋은 용도로 사용되니 비활성 기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고귀한 기체다. 우리 인간도 누구의 도움 없이 홀로 있으면서 그러한 경지에 다다를 수만 있다면!”



이밖에도 촉매를 통해 치유를 깨닫는다든지, 르샤틀리에 원리를 설명하면서 평형에 이르는 길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은이는 학창시절 내내 타고난 수줍음과 세상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회고한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어도 선뜻 먼저 다가가지 못했고, 그저 상대가 먼저 말을 걸어주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그러나 화학만은 달랐다. 그에게 화학은 언제나 정확했고, 공명정대했다. 하나가 모자라면 상대방에게 내 것을 내어줬고, 어떤 욕망 따위에도 휩쓸리지 않는 꿋꿋함과 당당함을 갖고 있었으며, 어느 것 하나 무의미하게 존재하는 것은 없었다. 그때부터 그는 화학을 과학으로서 바라보기보다는 또 하나의 깨달음의 세계로 바라보게 됐다.


“중성자의 역할은 무엇인가.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역할도 못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반발하는 양성자들을 꼭 붙잡아줌으로써 원자핵을 구성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이것이 바로 중성자 존재의 비밀이다. 어떤 사람도 헛되고 미약한 것은 없다. 겉만 보고 내 자신이 중성자를 닮았다고 불만스러워했지만 사실 중성자만큼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성공한 인생인가. 저마다 잘났다고 하며 갈라지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지그시 그들의 손을 잡아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그럼 사람으로 살고 싶다.”



학문과 인생에 깊이 통달하지 않으면 도저히 깨달을 수 없는 지은이의 조용한 가르침은 당장 눈앞에 놓인 삶의 무게로 힘든 사람들에게, 불행으로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가져야 할 진정한 삶의 모습은 무엇인지,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나는 무엇을 찾아야 할지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