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그노벨상은 노벨상처럼 만장일치의 박수를 받지는 못하더라도 누군가는 인정해 줘야만 하는 업적을 기리는 상이다. 에일 맥주와 마늘과 사워크림이 거머리의 식욕에 미치는 영향, 키와 발 크기와 음경 길이의 상관관계, 글래스고에서 잇달아 변기가 무너진 이유 등 가끔은 쓸데없을 수도 있는 창의성과 상상력에 찬사를 전한다.


사진_이그노벨상 이약기ㅣ마크 에이브러햄스 지음ㅣ이은진 옮김ㅣ살림 펴냄.jpg ‘이그(Ig)’는 고귀하다는 뜻을 가진 ‘noble’의 반대말이다. 1991년 유머 과학 잡지 <황당무계 연구 연보>의 편집자인 마크 에이브러햄스는 ‘비천한’ ‘보잘것없는’ 정도로 해석될 수 있는 이 단어를 앞에 붙여 상을 하나 만들었다. 노벨상과는 완전히 다른, 그러면서도 매우 비슷한 상이 바로 ‘이그노벨상’이었다.


≪이그노벨상 이야기≫는 궁금한 것투성이인 세상에서 호기심으로 무장하고 상상력으로 돌파하는 괴짜 과학자들의 어리둥절하면서도 놀라운 업적을 이야기하고 있다. 지은이 마크 에이브러햄스는 말한다. “최고의 과학자나 운동선수들을 위한 상은 세계 어디에나 있다. 최악의 영화나 패션을 위한 상도 존재한다. 하지만 자석으로 개구리를 공중에 띄운 과학자나 가라오케를 발명한 사람, 머피의 법칙의 기원이 된 사람을 위한 상은 어디에도 없었다. 1991년까지는.” 1991년 천재와 바보 사이의 경계가 독립된 영토로 인정받게 된 것이었다.


이그노벨상 위원회는 다른 사람들이 추천하거나 본인이 손수 추천한 놀라운 업적 가운데 10개를 선정해 매년 가을 하버드 샌더스 시어터에서 시상식을 연다. 대부분 과학과 관련된 업적이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고, 상식을 초월하는 이그노벨상의 특성으로 인해 정기적인 시상 부문 외에 새로운 상을 만들어야 할 때도 있다. 가령 동굴 벽이 지저분하다고 생각해서 원시 시대의 벽화를 말끔하게 지워 놓은 프랑스 보이 스카우트는 이그노벨 고고학상을 받은 바 있다.


2001년 6월 콜로라도 주 지역 신문 「덴버 포스트(Denver Post)」는 다음과 같은 기사를 실었다.

“푸에블로에 사는 62세의 벅 와이머는 6년 전 추수 감사절 저녁 식사 후에 일어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 당시 57세였던 벅의 아내 알린은 크론씨 병이라는 질병을 앓고 있었는데 그 병은 장에 염증을 일으켜서 매우 독한 방귀를 뿜게 만들었다. 두 부부가 한 이불을 덮고 침대에 누웠을 때 바로 그 일이 터졌다. 와이머의 아내가 폭탄 수준의 고약한 방귀를 뀐 것이다.

‘그때 저는 조용히 고통을 참으며 아내 옆에 누워 있었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결단을 내렸습니다.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겠다고 말입니다.’라고 그는 회상했다. 그로부터 6년 후 벅 와이머는 특이한 발명품을 개발했다. 바로 독한 방귀 냄새를 제거하는 교체용 숯 필터를 장착한 속옷이다. 와이머는 이 발명품으로 1998년에 특허를 받았다.



일반적으로 이그노벨상 수상자들은 누구도 궁금해 하지 않거나 궁금하더라도 귀찮아서 내버려 두는 질문들에 몰두한다.


‘사람도 코끼리처럼 쉽고 편하고 빠르게 아기를 낳을 수는 없는 걸까?’ ‘행성이 아닌, 살아 있는 생물 내부에서도 핵융합이 일어나고 있는 건 아닐까?’ ‘사람이 먹는 항우울제를 먹으면 대합조개도 기분이 좋아질까?’ ‘완벽한 홍차 한 잔을 끓이는 방법은 무엇일까?’ ‘어쩌면 속옷만 신경 써서 만들어도 방귀 냄새를 막을 수 있지 않을까?’ 등 혼자 묻다가 이그노벨상을 받은 이 사람들은 모두가 정말 진지했다. 자신의 연구를 장난으로 생각한 사람도 없었고 내가 이런 연구를 왜 하고 있는 걸까 회의한 사람도 없었다. 그들에게 이건 진짜 중요한 일이었다. 이그노벨상은 이런 호기심과 그에 대한 답을 얻고자 하는 집념, 아무 생각 없이 경계를 뛰어넘는 상상력의 가치를 인정하는 상이다.


“백열전구는 신중하게 부숴서 그물 모양의 얇고 부드러운 천이나 올이 성긴 얇은 무명으로 싸서 안전하게 제거할 수 있었다. 그 밖에 백열전구를 제거하는 데 사용된 도구로는 실을 매단 빗자루 몽둥이 1개와 부엌용 대형 스푼 2개가 있다. 일례로 물컵은 회반죽을 가득 채운 다음 밧줄을 단단히 매어 제거했다. 특별히 기록할 가치가 있었던 16세기의 여자 환자는 돼지 꼬리를 꼬리 근처에 붙은 거친 털과 함께 자기 직장에 깊이 집어넣었다. 이 환자의 경우에는 영리하게도 꼬리 위로 속이 빈 갈대를 집어넣어 두 물건을 함께 수월하게 제거할 수 있었다.”

어둠 속 깊은 곳에 감춰져 있던 많은 것들에 빛을 비춘 공로로 데이비드 부슈와 제임스 스탈링은 1995년에 이그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이그노벨상은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기도 한다. 영국 정부의 과학 고문 로버트 메이 경은 영국 과학자들이 이그노벨상을 받은 데 분개해 앞으로는 영국 과학자들에게는 상을 주지 말라고 항의했다. 그는 이그노벨상이 진짜 과학을 비웃는다고 믿었다. 그러나 몇 년 뒤 이름 있는 과학 잡지 <네이처>는 “아마도 이그노벨상 시상식은 1년간의 과학 행사 중에서 하이라이트에 해당될 것”이라고 썼다. 수상자들도 마찬가지다. 어떤 수상자는 직접 만든 선물까지 들고 시상식에 참석하지만 어떤 수상자는 화를 내거나 수상 소식을 못 들은 척한다. 대체 이런 혼란의 원인은 무엇일까?


에이브러햄스는 이 세상이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하기 좋아해서 이런 일이 생긴다고 믿는다. 그러나 에이브러햄스와 이그노벨상의 무리들은 “인생은 혼란스럽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이 한데 뒤섞여 있다”고 믿으며 “이그노벨상은 우리 대부분을 한동안 생각하게 만드는 걸출한 혼돈을 존중한다”고 선언한다.

이그노벨상을 받은 사람들은 좋은 일을 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오렌지 카운티를 파산으로 몰아넣은 주식 중개인처럼 아주 나쁜 일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그노벨상 수상자들에게 공통된 점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 모두가 놀라운 일을 해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