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녹색’은 가장 잘 나가는 색깔이다. 기업에서든 정치에서든 소시민의 생활에서든 ‘친환경’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 개념이다. 물론 누구도 환경을 파괴하고 싶어 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름다운 자연 속의 쾌적한 삶을 누리고 싶어 하고, 내 아이에게도 그런 삶을 살게 해주려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당연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사진_괴짜생태학ㅣ브라이언 클레그 지음ㅣ김승옥 옮김ㅣ웅진지식하우스 펴냄.jpg 사람들은 쓰레기를 꼼꼼히 분리수거하고, 장바구니를 들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유기농 식품을 먹고, 선물로 공정무역 상품을 택하기도 한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여전히 위험하다는 경고일 뿐이다. 여기서 우리는 내심 의문을 품게 된다. ‘내가 그렇게나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는 건가?’

 

현대 사회에서 환경 문제는 다양한 사회경제적 상황들과 맞물려 있다. 단순히 유전자변형을 거부하고, 푸드 마일이 적은 식품만 먹고, 제3세계 식량난에 영향을 끼치는 바이오 연료를 반대하고, 북극곰 보호 기금에 돈을 보태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한 가지 면만 보고 판단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환경 기술이 개발됐다. 매스컴은 잘못된 정보를 뿌릴 때가 많고, 거대자본은 이런 상황을 이용해 더 많은 소비자를 낚으려 들기 때문이다.


언론계에서 사용하는 또 하나의 무서운 단어인 ‘균형’덕분에 언론매체들은 가끔 정말로 관심이 필요한 기사들을 하찮게 취급한다. 예를 들어, BBC는 인간이 기후 변화를 초래했다는 논쟁에서 균형을 지키기 위해 양편의 주장을 모두 보도하려고 여러 해 동안 노력했다. 그런데 지구온난화의 존재와 원인에 대해 과학적으로 어느 정도 확신할 수 있게 된 뒤에도 오랫동안 그런 보도 태도를 유지했다는 점이 문제였다.



환경운동은 어찌 보면 종교의 색채를 띤다는 느낌마저 줄 만큼 신비와 환상에 싸여 있는 동시에 반론을 거부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이 생겨난 것도 사람이 자연을 아끼고 보호하려는 감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막연하고 감상적인 지구 사랑은 머리에서 털어버리고, 제대로 지구를 구하는 방법을 알아야 할 때다.


가뜩이나 복잡한 환경 문제를 제대로 바라볼 수 없게 하는 요인들이 현대 사회에는 너무나 많다. 생태는 삶의 질을 좌우하며, 나아가 생존에 직결된 요인이다 보니 이 문제들은 종종 우리의 감정을 자극해 판단력을 흐리게 만든다. 심각한 사례들만 들추는 전문가, 겁을 주면서 세금 걷는 정부, 여기에 ‘바로 당신이 세상을 망가뜨리고 있다’는 환경운동가들의 훈계에도 불안함과 불쾌감을 느낀다. 이렇게 고조된 불안과 소중한 지구를 생각하는 마음, 잘못된 정보가 만나 ‘녹색 신화’가 탄생한다.


이 신화에 휘둘리는 사람들을 십분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업은 ‘친환경 소비자’들을 확보한다. 정치집단도 성향을 막론하고 이 신화를 이용해 ‘녹색 지지자’들을 확보하기는 마찬가지다. 자연을 인질로 잡고 다양한 이익을 창출하는 ‘환경사기극’이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친환경기업이라면서도 어서 신형 핸드폰으로 바꾸라고 광고하는 시대다.


브라이언 클레그는 이제 바람직한 친환경 활동을 위해선 생태(eco)와 논리(logic)가 하나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대인에게 생태논리(Ecologic)를 권하는 그는 이 책 <괴짜생태학>에서 엉뚱하게도 뮌헨에서 실제로 있었던 비행기 이륙 사건을 소개한다. 비행기엔 아무 문제가 없었음에도 제대로 뜨지 않아서, 활주로 끝에 부딪쳐 사고가 나기 직전에 겨우 이륙시켰다는 사건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비행기가 제 때 뜨지 않았던 것은 그 당시 뮌헨에서 열린 동전 수집가 축제 때문이었다. 승객인 동전상인들이 가지고 탄 수많은 동전들 때문에 중량이 초과된 것을 계산하지 못했던 것이다. 비행기의 중량 계산이라는 수학적 자료와 승객들의 행동 특성(자기 수집품을 직접 가지고 가려는)이라는 인간적 경험을 모두 반영해야 이런 사태를 피할 수 있다.


인간의 행동을 수학적으로 설계하는 것, 이것이 지은이가 수행해 온 작전 연구(operational research)의 핵심이다. 그는 환경 문제가 바로 이런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 사안임을 강조한다. 과학적이고 경제적으로 풀어야 하지만, 사람의 감정을 쉽게 자극하기 때문에 균형 있게 다루기 어려운 것이 바로 환경 문제이기 때문이다.


매년 차를 바꾸는 영국의 운전자는 차를 바꾸는 주기를 3년으로 늘리면 탄소 배출량을 엄청나게 줄일 수 있다. 새 차를 만드는 과정에서 3~5톤의 탄소가 배출되기 때문이다. 지금은 탄소 배출량이 낮은 차를 사는 사람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가 있지만, 새 차로 바꾸는 주기를 늘리는 사람에게 세금 혜택을 주는 방안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지은이는 “빙산이 녹아서 귀여운 북극곰이 위험합니다” “밭에서 뽑아온 그대로, 흙이 묻은 유기농 채소를 드세요” 등 쉽게 감정에 좌지우지되는 환경 사안들의 실체를 조목조목 따져보고, 기업이 이런 사안들을 가지고 ‘어떻게 장사하는가’를 신랄하게 파헤친다.


또한 이렇게 엉터리로 환경을 다룰 바에는 차라리 맥도널드에게 환경 문제를 맡기라는 ‘발칙한’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분명히 정리된 메뉴를 제공하고, 현지 특성에 맞게 운영하며, 잔돈 하나도 허투루 다루지 않는 등 철저히 경제논리로 움직이는 기업인 맥도널드와 마찬가지로 환경 운동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들 하는 말처럼, 세상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고통 받는 것은 식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식량이 제대로 분배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식량 부족 문제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지역에서 바이오연료를 재배해 이용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바이오연료로 인해 비교적 희귀한 식량 작물의 가격이 올라가는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하지만 식량이 부족한 개도국들이 식량 생산을 희생하고서 바이오연료용 작물을 재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미국은 개도국이 아니지만, 남미의 몇몇 이웃 나라들은 개도국의 범주에 든다. 따라서 라틴아메리카가 세계 최대의 바이오연료 생산지가 되려고 애쓰는 것이 걱정스럽다.



책은 환경에 대한 다양하고 발칙한 문답을 통해 환경보호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을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