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에서 쓰이는 팜 오일을 위한 팜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는 조는 독한 농약에 건강을 잃었다. 또 팜 플랜테이션 조성 때문에 자신의 땅을 억지로 빼앗기고 이름을 숨긴 채 10년째 수배자 생활을 하고 있는 할아버지는 자신의 삶을 잃었다. 기후변화 시대, 대안인 줄만 알고 있던 바이오 연료가 누군가에게는 삶을 망가뜨리는 ‘나쁜 에너지’인 것이다. 환경 친화적이면서 사회적으로 정의로운 에너지는 없는 걸까?


사진_착한 에너지 기행ㅣ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지음ㅣ이매진 펴냄.jpg ≪착한 에너지 기행≫은 에너지·기후 분야의 진보적 민간 싱크탱크인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의 연구진(김현우·이강준·이영란·이정필·이진우·조보영·한재각)이 꾸린 ‘기후정의 원정대’의 발자취를 기록한 책이다. 이들은 ‘착한 에너지’와 ‘진짜 녹색’을 찾아 세계 곳곳을 누볐다.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아시아에서 아프리카까지, 유럽에서 아메리카 대륙까지, 기후정의와 정의로운 전환을 찾아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 원정대의 특별한 ‘여행기’이기도 하다.


원정대의 발걸음은 희망에 가득 찬 에너지 자립의 현장을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녹색 에너지의 메카 독일, 에너지 자립의 꿈을 이룬 농촌 마을이 자랑인 오스트리아, 석유 없이 농사짓는 농부들을 만날 수 있는 일본, 괜찮은 녹색 마을들이 있는 영국. 그곳에서 원정대는 독일 연방의원인 바르벨 호엔, 모바크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는 미셸 그렐, 시민의 힘으로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하는 베를린 시민발전 사람들, 분트의 에너지 기후변화 담당자인 토르벤 벡커, 귀씽 모델을 이끈 페터 바다츠 귀씽 시장과 공무원인 라인하르트 콕, 무레크의 에너지 농민 기업 SEEG의 CEO인 요제프 라이터 하스, 자원순환형 농촌 공동체 마을 만들기에 열중하고 있는 구와바라 등을 만나서 지역에서 일구는 재생 가능 에너지의 가능성과 희망을 직접 보고 들었다.


팔렘방에서 다섯 시간 동안 야간 이동해 무바라는 농촌 마을에 도착했다. 칠흑 같은 밤, 창밖으로 보이는 거대한 숲은 돌아오는 길에 보니 모두 팜 나무였다. 무바 이장님은 새벽 한시에 도착한 우리를 반기며 잠자리까지 마련해 주었다. 집 근처에는 바이오 연료의 원료가 가득한데도 동네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암흑 천지였다. 다음날 아침 이장님은 토지 소유권을 보장해달라는 소송장을 보여주며 자신들의 억울한 사연을 호소했다. 이런 처지를 바깥 세상에 꼭 좀 알려달라고 정중히 부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구 한쪽에서는 기후변화 때문에,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선진국과 대기업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


원정대는 타이와 인도네시아, 버마, 라오스로 달려가 그 사람들을 만났다. 2008년과 2009년 타이에서 열린 기후정의 회의에서는 기후변화에 내재된 또는 그것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회적 갈등과 투쟁이 전 세계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선진국을 위한 대규모 팜 플랜테이션 개발 때문에, 버마에서는 천연가스 개발 과정에서 세계적인 에너지 기업들과 버마 군부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만났다.


또한 플랜테이션 노동자 조와 리마, 그리고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돕는 활동가들이 기후 부정의의 현실에 눈물짓고 아파했다. 수탈행위와 다름없는 해외 자원 개발에 앞장서고 있는 대우인터내셔널과 한국가스공사 등 한국 기업들도 이 눈물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또 하나의 현실이다.


원정대는 ‘재생 가능 에너지 공급과 DIY 교육 사업’을 통해 버마 난민을 지원했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라오스의 산골 학교에 태양광 발전기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원정대는 ‘녹색 일자리’와 ‘정의로운 전환’ ‘적록 연대’를 위해 ‘녹색이기를 주저하지 않는 적색 친구들’을 만나러 유럽으로 떠났다. 독일과 영국 등지의 관련 담당자 등을 만나 고민을 나눈 원정대의 발걸음은 기후변화 협약 총회가 열린 덴마크 코펜하겐과 벨기에 브뤼셀까지 이어졌다.


기후변화 협약 당사국 총회에 꾸준히 참석하고 있는 원정대는 이 책에서 2005년 캐나다, 2006년 케냐, 2007년 인도네시아, 2008년 폴란드, 2009년 덴마크 총회에서 일어난 일들을 생생히 기록하고 있다.


‘기후변화의 최전선’이라는 토착민 네트워크를 이끌고 있는 북아메리카의 원주민 톰 골드투스가 집회 연설에서 “당사국들이 우리들의 지구에서 더러운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격하게 성토한 건 기후변화가 단순히 환경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마이너리티들에게 기후변화는 ‘변화(climate change)’가 아니라 ‘대혼돈(climate chaos)’이었다.



온실가스 배출량 세계 9위, 에너지 총 사용량 10위, 석유 소비량 5위인 한국은 교토 의정서의 온실가스 의무 감축국이 아니다. 개발도상국의 지위 뒤에 숨어 있는 한국은 일부 선진국들이 해외 자원 개발의 폐해를 깨닫고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와중에도 나쁜 에너지를 개발하고 소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지금 우리가 세계의 에너지 현장과 그곳에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한국이 기후변화 시대의 ‘가해자’이자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노력해야 하는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그 당사자에게 필요한 것이 기후정의이기 때문이다.


책은 우리에게 닥친 기후변화라는 현실의 슬프고 힘든 여정을 보여주면서도 결코 희망을 놓치 않고 있다.


한편,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http://www.enerpol.net)는 2009년 8월에 창립한 에너지·기후 분야의 진보적 민간 싱크탱크다. 우리 사회의 에너지 전환 방향을 선도하고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특히 노동자·농민·저소득층 등 사회적 약자의 처지에서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는 정책을 생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