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시험 하면 실험실의 프랑켄슈타인이나 ‘마루타’ 또는 나치의 생체실험을 연상하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 이뿐만 아니라 임상시험에 대한 적절한 법규제가 만들어지기 전에 일어난 비윤리적인 임상시험 사고로 인해 부정정인 인식이 대중들에게 자리 잡혀 있다.


사진_기적을 좇는 의료풍경, 임상시험ㅣ앨릭스 오미러 지음ㅣ노승영 옮김ㅣ책보세 펴냄.jpg 임상시험은 신약을 개발하는 마지막 단계에서 사람을 대상으로 약물의 안정성과 유효성을 입증하는 시험이다. 그러나 ‘임상시험’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그다지 익숙하지 않다. 딱딱한 의학용어인 데다가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형성되지 않은 탓이다.


그러나 임상시험은 우리 삶에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다. 우리가 먹는 모든 약과 치료법은 모두 임상시험을 통해 개발된 것이기 때문이다. 즉 임상시험은 미래에 우리가 받게 될 의료 혜택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창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임상시험 강국을 목표로 투자를 늘려가고 있는 추세다. 이미 미국에서는 임상시험에 대한 연간 지출이 240억 달러에 이른다. 이는 우리나라 일 년 예산의 10분의 1 규모다. 이미 거대한 산업이 형성돼 있는 것이다. 


≪기적을 좇는 의료 풍경, 임상시험≫은 임상시험의 역사를 비롯해 윤리, 세계화, 경제 등을 다루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임상시험 윤리다. 우리나라 임상시험 산업은 이제 성장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수많은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안정적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서양의 임상시험 역사를 돌이켜보면 비윤리적인 실험 문제가 도마에 오른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책에 따르면, 임상시험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약을 시중에 내놓았다가 100여 명이 죽은 뒤 서둘러 수거한 경우도 있었고, 이미 치료법이 개발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피험자들에게 숨긴 채 임상시험을 진행해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경우도 있었다. 거대 제약 회사들은 임상시험을 빠른 시일 안에 마치고 특허를 얻는 것이 경제적으로 이득이 되기 때문에 임상시험 중 발생한 부작용을 축소시키거나 은폐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전의 임상시험은 윤리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임상시험 과정에서 윤리 문제를 비롯한 끔찍한 사건들이 많이 발생한 이유는 임상시험이 의학적 발견 과정에서 가장 위험한 단계이기 때문이다. 임상시험은 체계적인 과정을 통해 결과물을 얻어낸다기보다는 연구자의 직감이나 우연한 과정을 통해 결과물을 얻는 경우가 많다. 즉 예상치 못한 행운이 따라야 하는 것이다.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는 임상시험을 소름 끼치는 악행 아니면 생명을 살리는 기적으로 묘사한다. 둘 다 현실에서 좋은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인도에서는 거대 제약 회사들이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위험이 큰 실험약을 임상시험한다. 가난한 이들에게는 임상시험이 유일한 ‘의료 혜택’이기 때문이다. 반면 임상시험은 소아암 생존율을 20년 만에 20퍼센트에서 80퍼센트로 끌어올리기도 했다.

이 책에서는 임상시험을 옹호하지도 비난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임상시험이 좋다 나쁘다 이야기하지도 않을 것이다. 의학 실험을 둘러싼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나의 목표는 복잡한 문제를 간단하게 만들어 사람들의 이해를 돕는 것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임상시험이 의료의 전반적인 방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임상시험은 내일의 의약품과 장비, 시술이 어떤 모습일지 미리 보여준다. 임상시험은 의료의 미래를 엿보는 창이다. 임상시험의 성공과 실패를 살펴보면 몇 년 뒤 우리가 받게 될 치료의 종류와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이 책은 ‘임상시험’이라는 과정 뒤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려준다. 그렇지만 이 책이 임상시험을 부정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지은이 앨릭스 오미러는 “임상시험을 통해 개발된 새로운 치료법이나 약물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것으로 큰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또 “우리가 혜택을 받고 있는 의약품과 치료법 또한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면서 임상시험 참가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