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존재할까?”


사진_과학적 경험의 다양성ㅣ칼 세이건 지음ㅣ박중서 옮김ㅣ사이언스북스 펴냄.jpg 가장 오래된 이 질문에 대답한 사상가는 아직 없다. 하지만 인류는 수만 년 동안 그 존재를 믿어 왔으며, 지금도 수억 명의 사람이 공개적으로 신앙 고백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주와 생명의 기원과 진화를 밝히고 차원의 신비를 파헤치는 현대 과학은 이 문제를 어떻게 볼까? 현대 과학자들에게 신이라는 가설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가장 오래된 질문 중 하나이지만, 아직도 신선함을 잃지 않고 있는 이 근본적인 질문에 현대 과학자들은 나름의 대답을 해 왔고, 그중 한 사람이 바로 20세기를 대표하는 천문학자 중 한 사람인 칼 세이건(Carl Sagan)이다.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은 칼 세이건이 1985년에 글래스고 대학교에서 행한 ‘자연 신학에 관한 기퍼드 강연(Gifford Lectures on Natural Theology)’을 정리한 것이다. 종교와 과학, 철학 분야의 강연들 중에서 가장 유서 깊고,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자연 신학에 관한 기퍼드 강연을 토대로 윌리엄 제임스의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 화이트헤드의 <과정과 실재>, 하이젠베르크의 <물리학과 철학>, 한나 아렌트의 <정신의 삶>, 프리먼 다이슨의 <무한한 다양성을 위하여> 등 걸출한 저술들이 쏟아져 나왔다.


칼 세이건은 1985년 10월14일 ‘자연과 경이’라는 제목을 첫 강연을 시작으로 10월30일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탐색’이라는 제목의 마지막 강연까지 글래스고 대학교의 강연장에 섰고, 강연장에 모인 왕립 학회 소속의 엘리트 학자들과 영국 국교회의 고위 사제들에서 대학생과 일반 시민까지 과학과 종교의 관계, 아니 우주의 비밀과 신의 존재를 탐색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뜨거운 강연을 펼쳤다.


생물학자이자 종교 비판자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리처드 도킨스는 “세이건의 책들은 모두 지난 세월 종교가 독점했던 초월적인 경이라는 신경 말단을 건드린다. 내 저서들도 같은 열망을 담고 있다”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칼 세이건은 모든 책에서 과학을 차가운 숫자 놀음에서 자연과 우주가 감추고 있는 경이와 경외에 이르는 길로 격상시킨다. 그렇다고 해서 우주 밖의 초월자나 신비주의에 기대지도 않는다. 온전히 과학적인 방법과 언어만으로도, 우리가 모르는 것과 어찌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두려워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숭배하고 존중하고 이해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그렇다고 해서 신의 존재나 종교의 사회적 역할을 경박하게 내치지 않는다. 인간 삶의 일부로서, 세계와 우주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한 인류의 유산으로서 존중하고 품어 안는다.


칼 세이건은 과학과 종교가 화해하기 위해선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부터 확인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대 천문학이 이해하게 된 우리 인류의 우주 속 위치에서부터 시작된 칼 세이건의 강연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며, 우리의 태양도, 우리의 태양계도, 우리의 은하수 은하도 우주의 중심이지 않으며, 이 우주에는 지구 같은 암석형 행성이, 태양 같은 항성이, 은하수 은하 같은 은하가 수없이 존재함을 보여 주고, 이 방대한 세계 속 어딘가에 있을 지적 생명체를 탐색하는 현대 과학자들의 노력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칼 세이건의 기존의 종교가, 특히 서구 사회를 지배해 온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의 인격신적 일신교의 신학 담론이 지구라고 하는 극도로 좁은 공간과 시간에 묶여 있는 신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 준다. 인간의 앎의 영역이 하나하나 넓혀질 때마다 인간사에 세심하게 개입하는 신의 영역이 하나하나 좁혀지고 과학적 경험과 종교적 경험이 서로 일치해 감을 과학의 역사와 종교의 역사 같은 거대 지성사의 흐름을 가로지르며 보여 줄 뿐만 아니라, UFO 목격담이나 외계인 소동, 현대의 신흥 종교가 얽힌 온갖 사건들의 핵심을 짚으며 종교적 경험, 종교적 담론, 신의 존재에 대한 탐색의 이면을 다시 한번 검토해 보도록 강연의 청중들과 이 책의 독자들을 이끌어 간다.

 

칼 세이건 강연의 백미는 힌두교에서 기독교까지 수많은 신학자들이 제출해 온 신에 대한 가설들과 논증들을 검토하고 논박하는 6강 <하느님에 대한 가설들>이다. 고대 힌두교 철학자들과 서구 중세 철학자들의 우주론적 논증에서 근대 철학의 정초자인 칸트의 도덕적 논증은 물론이고 현대 물리학자들이 내놓고는 하는 인간 원리에 근거한 기묘한 물리학적 논증까지 온갖 가설들을 논파하며 신의 존재 증거는 ‘아직까지’ 자연과 우주 속에서 발견되지 않았다고 단언한다.


“왜 하느님은 성서에서는 그렇게 뚜렷하면서도, 이 세계에서는 그처럼 모호한 것일까요?” 그렇다고 해서 과학이 신의 존재를 부정했다고 단언하지도 않는다. “증거의 부재가 곧 부재의 증거는 아니다”면서 아직 결론은 열려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신 또는 하느님의 정의 역시 기존의 종교와 과학에 의해서 닫혀 있지도 않다고 하면서 중요한 것은 과학과 종교의 공감, 이 공감을 나누어 지적 수렴점에 도달하려고 노력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닫힌 마음이야말로 대량 살상 무기라고 지적하면서, 세이건은 이렇게 말한다. “복잡한 우주 속에서, 전례가 없었던 변화를 겪고 있는 사회에서, 만약 우리가 모든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자 하는 의향이 없으며, 모든 것에 대해 공평하게 귀를 기울이려는 의향이 없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만 진실을 찾을 수 있을까요? 오늘날 수많은 생물 종들을 위협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닫힌 마음입니다.”


그는 공감의 기술을 익히는 데 필수적인 것은 “우주를 있는 그대로 맞이하려는 용기”라고 말한다. 즉 우주에다가 우리의 감정적 경향을 억지로 집어넣으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탐험이 우리에게 말해 주는 바를 용감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공감의 기술과 우주를 있는 그대로 맞이하려는 용기의 결합을 통한 과학과 종교의 화해와 협력을 칼 세이건이 역설한 1985년 이래 사반세기가 흘렀다. 그사이에 종교 근본주의자들이 야기한 전쟁과 테러는 아직 그치지 않고 있고, 과학계와 종교계는 여전히 다른 길을 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과학자들은 우주에 쏘아올린 망원경들과 지상에 건설한 거대한 입자 가속기를 통해 우주 창조의 순간에 1초씩, 1마이크로초씩 다가가고 있으며, 갈릴레오를 사면한 교황청을 비롯해 종교 지도자들은 과학계에 화해의 제스처를 보내고 있고, 세계 각지의 환경 파괴 현장에서 과학 지식으로 무장한 생물학자들과 생태학자들은 그 지역의 종교인들과 함께 활동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과학과 종교가 앞으로 어떤 수렴점에 도달할 수 있을지 짐작할 수 없지만, 인류의 앎, 그리고 인류의 미래에 대해 과학적으로 낙관주의자였던 칼 세이건의 전망에 따라 우리가 가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칼 세이건 사후 15년 만에 국내에 처음 번역 출간된 이 책은 과학자가 가슴에 품은 우주에 대한 경외와 열정이 그 어떤 종교인에게도 지지 않음을, 과학이 품은 경이가 종교가 우러르는 경외에 못지않음을 입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