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탁현민이 <상상력에 권력을>을 통해 거대자본과 매스미디어가 좌우하는 ‘대중문화’의 한계와 위험성에 대해 일침을 가한다.

 

상상력에 권력을ㅣ탁현민 지음ㅣ더난출판사 펴냄 탁현민은 대중문화를 이렇게 정의한다. “대중문화는 대중들의 문화다. 근대적 ‘대중’의 의미가 단지 다수의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결정지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인간’이라 한다면 대중문화 역시 단지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문화가 아니라 인간의 미래를 보다 진보시키는 무엇이어야 마땅하다. 그것이 대중문화가 존재하는 이유여야 한다.”

 

그에 따르면, 대중문화는 대중과 문화는 소외되고 (연예)산업과 (미디어)스타만 존재하는 것으로 읽힌다. 문화는 여전히 보편적 삶의 양식이 아니라 천박하거나 또는 고결한 판타지만을 그리고 있다. 대중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게 미디어와 자본에 구속돼 있다.

 

:::한국의 대중문화가 길을 잃은 까닭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고 옆도 돌아보지 않았으며 심지어 바로 앞도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직 지금 그 자리만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문화도 산업이라는 의견에 동의한다고 해도 문화는 버리고 오로지 산업으로만 바라보는 시선은, 상품을 생산하는 것과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을 같은 자리에 가져다놓는다. 이것은 문화의 가치를 오로지 자본으로만 평가하는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술이 꽃피길 기대하는 것은 그야말로 맹랑한 기대다. 새로운 시도와 실험정신이 고양되길 기대하는 것은 도둑놈 심보다. 장르의 편중, 미디어 중심의 생산과 소비, 체제순응적 콘텐츠의 과잉은 결국 예술적 상상력의 소멸이라는 치명적인 결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러는 사이, 쓰러져가는 예술가들과 상처받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 길을 찾아야 한다.:::

 

과연 우리는 미디어로부터 자유롭게 우리들의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으며, 이를 향유하고 있는 것일까? 또 각각의 대중은 자본으로부터 자유롭게 자신들만의 가치가 부여된 문화를 생산해낼 수 있을까?

 

상식 밖의 대한민국 대중문화를 해부하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고 최진영이 자살을 선택한 이유는 누나에 대한 그리움으로 인한 우울증과 조카들을 위해 다시 연예계에 나와야 하는 부담감 때문이었다.” 최진영 뿐만 아니라 그의 누나인 최진실을 비롯한 톱스타들의 죽음에 대해 지은이는 이렇게 말한다. 때때로 주변에서 만나는 연예인들 중 자신의 내면과는 상관없이 구축되어버린 이미지에 콤플렉스를 느끼는 경우를 보게 된다. 한결같이 선하고, 아름답고, 인간적이고, 정의로운 이미지를 가진 ‘아바타’를 가지고 있는 경우들이다.

 

한 인간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잃거나 버리고 영화와 드라마, 음악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이미지를 갖게 됐을 때 실존적 자아와 만들어진 이미지 사이에는 괴리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른바 세상 모든 영광과 행복을 다 가지고 있을 것으로 상상되는 스타들의 심리가 불안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더욱이 스타와 자기를 동일시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자신의 일상이 공공의 일상이 되어버린 공포스러운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때 정체성을 잃어버린 스타의 불안은 가중될 수밖에 없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이는 단지 먹고사는 문제의 고달픔이나 확실치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보다 더욱 심각하게 연예인들을 위협한다.

 

:::스타를 만들어내는 것은 연예기획사나 소비대중이 결코 아니다. 스타를 키워냈다고 우쭐하는 기획사들과 ‘우리가 없으면 어림도 없다’ 생각하는 팬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한 명의 대중예술인이 명실상부한 스타가 되기 위해 만약 꼭 한 가지만 선택할 수 있다면 그것은 ‘미디어’가 될 수밖에 없다. 미디어는 한 명의 평범한 사람을 하루아침에 스타로 만들어낼 수 있는 마술 상자와 같다. 미디어를 통해서만 지역적 한계를 벗어날 수 있으며 이제는 내용적 한계까지도 극복해낼 수 있게 되었다. 지극히 평범했던 ‘오빠’를 ‘우리들의 오빠’로 만들어내는 것은 미디어만이 가지고 있는 강력한 힘인 셈이다.:::

 

문제는 이들 연예인들이 마음 놓고 심리적 상처를 치료하기 어렵다는 것. 특히 우리나라에선 인기 절정의 스타가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는 게 언론에 알려지면 그가 어떤 처지에 놓이게 될지 너무도 분명하다. 고 최진영도 어머니의 심리 치료 권유를 거부하고 우울증 증세를 보이던 끝에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이는 매스미디어가 만들어낸 스타이기 때문에 그 매스미디어를 통한 모습이 자신을 옭아매기 때문이라고 지은이는 설명한다.

 

희망적인 대중문화 변론

 

책에 따르면, 이 시대에는 대중문화를 통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정체성조차 설명할 수 없다. 누군가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리기 위한 가장 손쉽고 분명한 방법은 내가 무슨 영화를 좋아하고 무슨 음악을 즐겨 듣고 무슨 옷을 입는지 이야기하는 것이다. 대중문화는 우리들의 낡은 사고 속에 있는 문화예술, 저 먼 피안의 아름다운 세상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삶과 생활에 구체적으로 맞닿아 있는 ‘무엇’이다.

 

아울러 대중문화란 현실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상상력을 의미한다. 우리가 끊임없이 대중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대중문화가 우리들의 삶과 유리돼 있는 고결한 무엇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삶에 구체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세상을 좀더 나은 곳으로, 아름다운 방향으로 이끌어다 줄 것이라는 믿음과 뜨거운 기대가 있어서다.

 

문화예술의 상상력이 일천해지고 사람들이 이로부터 멀어져 가면 세상은 위태로워지며 살기가 죽기보다 어려워지게 된다. 지금보다는 나은 세상을 기대한다면, 그 변화의 바람은 찌들대로 찌든 일상 속에서 불어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대중문화예술의 아름다운 상상에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게 지은이의 주장이다.

 

지은이는 “우리는 대중문화가 단지 엔터테인먼트의 기능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동시대보다 한발 앞선 새로운 상상력을 발현할 수 있도록 관심 있게 지켜보고 지지해줘야 한다”면서 “이것이 우리가 즐기고 느낄 수 있는 문화산업의 발전을 도모하는 길”이라고 말한다.

 

지은이는 또 “문화적 풍요는 결국 다양한 생각을 수용할 수 있는 사회에서만 가능하며, 대중예술인들은 그 풍요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다”라며 “때문에 사회는 그들이 비록 공적 영향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책임을 강조하기보다 자유로운 상상력을 허락하는 것이 옳다”고 피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