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데일리> 여러 가지라는 의미의 ‘각’(各)과 나무 ‘목’(木)자가 붙어 있는 ‘격’(格)이라는 글자는 나무 버팀대를 세워 작물이 거기에 의지해 잘 자라도록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성장의 틀 거리를 만드는 것이다. 즉, ‘품격’(品格)이란 물건(品)이 바른 틀 속에서 생겨났음을 말한다. 사람의 수고가 어떤 사물이나 인간 자신을 보다 아름답게 만든 결과다. 

이것이 사회적 의미로 확대돼갈 때에는 한 사회를 바로 세워 나가는 힘이라고 번역될 수 있다. 올바른 버팀대를 고르고 그것을 세워 가치 향상을 이뤄내기 위해선 무엇보다 앞을 내다보는 안목과 깊이 있는 사유, 사려 있는 행동을 요구한다.


<국가의 품격> 이광주 외 지음ㅣ한길사 펴냄


서양문명에서도 ‘격’이란 뜻을 가진 영어 단어 ‘dignity’의 라틴어 뿌리는 ‘dignitas’다. 이는 ‘공동체를 위한 명예로운 가치’를 의미한다. 


강력한 군대로 제국을 형성한 로마는 그 문명의 중심에 공동체를 위해 싸우는 용사의 명예를 가장 우선으로 올려놓았다. 그 명예의 본질에는 타인을 위한 희생과 헌신, 투신이 전제돼 있다. 때문에 자기위주의 이기심은 이 격조와 명예, 덕과는 인연이 없다.


이렇게 언어사적으로만 보아도, ‘격’이란 동서양 모두 한 국가ㆍ사회 전반을 떠받칠 중심 기둥을 세우는 일이다. 그 중심 기둥은 어느 한 사람, 어느 한 분야의 노력만으로 세워지지 않는다. 사회 전반적인 각성이 필요한 일이며 구성원 모두의 노력이 요구된다.


또한 서로 연대해 소통을 이뤄내야 한다. 자기 집단의 이익만을 좇고 자신과 다른 의견을 대할 때는 귀를 막아버리고 맹목적으로 비난만 하는 사회가 격을 갖추기는 어렵다. 


때로 우리는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국격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 때문에 오히려 국격의 본질을 혼돈할 수도 있다. 그럴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지금 우리의 격에 대한 논의는 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를 향한 노력이라는 사실이다. 품격 있는 국가는 곧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희망이 싹트는 공동체다.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과도한 신봉과 효율성의 논리만 팽배했던 부작용들이 현재 우리 사회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양적 성장에만 몰두해왔던 가치관에 대한 반성이 사회 각계에서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사회의 진정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인문학적 공론도 활발히 제기되고 있다.


≪국가의 품격≫은 이러한 시점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품격’을 주제로 오늘날 우리 국가ㆍ사회가 새롭게 정립하고 추구해야 할 가치와 이상을 모색하고 있다. 


실적과 업적, 효용과 실용의 구호가 넘치는 시대에 품격의 문제를 논하는 일이 자칫 오해를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품격이 한 개인이나 사회가 정신적 위기와 한계에 부딪혔을 때 언제나 돌아가야 하는 근본 자리라고 이야기한다.


대담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책에서 김우창 교수는 갈등을 해결하는 노력 속에서 성찰의식이 싹트고 궁극적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묻게 되는 ‘격’의 문제가 일어난다는 점을 짚고 있다. 


이런 점에서 용산문제와 세종시 논란, 4대강 사업을 중심으로 교육ㆍ언론ㆍ경제ㆍ정치ㆍ문화 전반에 대해 격 있는 해법을 모색한다. 이념적 분류로 사태를 접근하는 데에서 오는 모순을 짚으며 진지하게 따져봐야 할 문제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살핀다.


서양사학자 이광주 교수는 경제지표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사회풍조를 비판하고 역사성과 문화적 역량을 축적하는 품격 있는 나라를 논한다. 유럽의 소도시들과 옛 동아시아의 아름다운 전통을 살피며 성숙한 문화와 함께 한 사회의 정치경제가 공정성을 만들어내는 새로운 국가발전의 패러다임 전환을 요청한다.


곽노현 교수는 인권의식 없는 사법정의란 성립할 수 없다고 단언하며,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인권지수가 떨어지고 있는 현실을 지적한다. 학생 인권에서부터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이르기까지 사법정의의 실현을 통해 국가의 품격을 회복하는 일을 역설한다.


백종국 교수는 공동체의 헌신이 한국 기업성장의 발판이 됐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되며, 이윤추구만이 아닌 공동체 전체의 행복에 기여하는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반기업적 사고가 아니라 기업의 품격을 높이는 일임을 강조한다.


조광호 교수는 외형적 성장에 미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내면 풍경을 어떻게 질적으로 변화시킬지에 대한 고민을 나눈다. 화가이자 가톨릭 사제이기도 한 그는 종교와 예술이 어떻게 인간정신을 고양시키면서 한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지 거론한다. 더불어 사는 삶을 살아온 한 종교인의 예술정신을 흥미롭게 살펴볼 수 있다.


손정우 기자 gdaily4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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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책 이야기

저자
이광주 지음
출판사
한길사 | 2014-04-3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중세사본에서 윌리엄 모리스까지 살펴본 『아름다운 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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