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실제로는 정치, 경제, 사회, 기술 등 여러 요소가 혼합된, 그야말로 인간 문화의 정수다. 그렇기에 우리 밥상을 새로이 톺아보는 일은 ‘우리 자신을 이해하려는 노력’인 것이다.”


사진_식전ㅣ장인용 지음ㅣ뿌리와이파리 펴냄.jpg 우리에게 ‘밥’이란 무엇일까? ≪식전≫은 우리 밥(食)의 장구한 역사를 그린 전기(傳)다.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는 음식, 즐기는 입맛이 언제부터 생겼으며 시대에 따라 문화적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살펴본다. 더불어 인류가 처음 등장한 사바나의 초원, 로마제국, 십자군전쟁, 몽골제국, 신대륙 발견, 산업혁명 등 다양한 역사의 시공간을 연결해 이 사건들이 우리 음식 문화에 어떤 과정을 통해 무슨 영향을 미쳤는지를 그려낸다.


근세에 들어서 무엇보다도 현세대 인류의 음식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신대륙과 구대륙의 만남이었다. 유럽의 시각에서는 ‘콜럼버스의 발견’이라 치부되는 사건이겠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틀림없는 두 대륙 식물들의 인공적인 만남이었다. 인류가 태어나기도 전에는 한데 뭉쳐 있던 대륙들이 갈라지면서, 식물들은 각기 저마다 다른 환경에 적응하며 진화를 계속해왔다.



지은이 장인용은 한때 요리사를 꿈꿀 만큼 음식에 관심이 많아, 그동안 음식의 역사와 효용에 관한 온갖 책과 자료를 찾아보았고 실제로 직접 요리도 해봤다고 한다. 그간의 여정 동안 음식에 관해 보고 들은 지식 모두를 이 한 권의 밥상 위에 정성껏 차려놓고 있다.


책을 살펴보면, 우선 밥은 ‘쌀밥’이다. 쌀이 보리, 조 등을 제치고 주곡이 된 것은 고려시대 이후의 일이다. 상 한가운데에는 두부조치가 놓여 있다. 두부는 고려 후기부터 먹었다. 배추김치는커녕 배추로 만든 음식이 안 보이는 것으로 보아, 배추가 전국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한 16세기보다 앞선 시기인 듯하다. 숟가락의 모양을 보더라도, 지금 우리가 흔히 쓰는 형태와는 달리 숟가락의 끝이 뾰족하고 손잡이가 굽어 있다. 밥을 제대로 떠먹을 수 있을지가 의심스러운 이런 숟가락 모양도 이 밥상의 시기가 고려 말에서 조선 초임을 알려준다.


이 밥상의 차림새로 알 수 있는 게 그 시기만이 아니다. 양고기가 놓여 있으니, 궁중이나 상류층의 밥상임이 틀림없다. 양고기는 우리나라에서는 양이 잘 자라지 않아 요리를 위해 중국에서 수입해다 먹을 정도로 귀한 고기였다. 몇몇 반찬에 후추가 뿌려진 점이나 설탕이 든 백설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무척이나 잘사는 집안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당시엔 설탕이나 후추가 무척 귀한 수입품이었으니 서민의 밥상은 아닌 것이다. 더욱이 귀하디귀한 식용유와 밀가루로 만드는 약과가 수북이 쌓인 것만 보아도 이는 왕공귀족이 아니면 엄두를 못 낼 상차림이다.


밥상은 어제의 것이 오늘의 것과 다를 정도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기에 50년 전의 밥상도, 100년 전의 밥상도 오늘과 같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느린 변화가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큰 변화로 이어지는 것이 마치 생물의 진화와도 같은 ‘문화의 진화’다. 어느 긴 세월을 놓고 보면 마치 전혀 생뚱맞은 밥상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밥상의 풍경은 어제오늘로는 그다지 바뀌지 않으니 50년 전, 100년 전도 오늘의 밥상과 비슷할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처럼 몇 백 년을 건너뛰면 재료 하나하나까지도 지금과 다르다는 게 확연하다. 느리고 작은 변화도 긴 세월이 누적되면 큰 변화로 나타나니, 이처럼 전혀 다른 모습의 밥상이 우리 앞에 놓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생물의 진화와도 같은 ‘문화의 진화’다.


음식 문화는 한 지역 내에서 자체적으로 변화하기도 하지만, 음식의 역사를 둘러보면 오히려 다른 지역의 여러 이질적인 문화들이 흘러들어와 서로 교류하고 충돌하면서 변화가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먹는 것들은 어떠한 문화적 교류와 충돌 속에서 진화해왔을까?


한식 세계화의 중심에 있는 배추김치는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한민족의 자존심’으로까지 여겨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책에서는 배추김치 속에 들어가는 고춧가루와 배추, 젓갈 등 여러 재료의 유래를 추적하면서, 결국 그 역사가 불과 100년밖에 되지 않았음을 밝힌다. 따러서 가깝게는 을사늑약 이후 일제에 의한 육종 연구, 멀게는 ‘콜럼버스의 발견’이 없었더라면 배추김치가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것이다.


가래떡과 같은 모양의 떡을 중국에서는 ‘영파 지역의 설떡[寧波年羔]’이라고 부른다. 영파는 양자강 하류의 쌀 주산지다. 그리고 중국 대부분 지역의 설날음식에는 이 가래떡과 같은 음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설날에 가래떡을 넣은 떡국을 먹어야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고 여긴다. 이렇게 두 지역의 풍습이 같은 것으로 보아 우리 벼농사가 이 지역으로부터 전래되었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보아야 한다.

때로는 다른 어떤 것보다 풍습의 유사성이 확실한 유래를 전할 수 있다. 풍습은 단시간에 전래되는 것이 아니다. 이국의 풍습이 한 지역에 자리 잡기 위해서는 교류가 꾸준해야만 한다. 그 교류는 단순한 물품이 아닌 사람 사이의 교류도 포함된다.


특히 문화적 교류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사람의 교류다. 일례로, 우리나라 벼농사의 기원을 중국 닝보 지역 특유의 설떡(寧波年羔)과 우리 설날의 가래떡, 이 두 설날풍습의 유사성에서 찾는다. 풍습은 단시간에 전래되는 것이 아니기에 교류가 꾸준해야만 하며 그 교류는 단순한 물품 교류가 아닌 사람 사이의 교류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벼농사에는 볍씨뿐 아니라 농법도 전래되었어야 했을 테니 닝보 지역 사람들이 이 땅에 건너와 살면서 벼농사와 함께 풍습도 전해진 게 아닐까 하고 추측하는 것이다. 이런 사례뿐 아니라, 중국 사신의 동선을 따라 만두가 전파됐다든지, 북경식 자장면이 산동화교의 창의성에 힘입어 오늘날의 우리 자장면이 되었다든지 하는 것도 사람을 따라 음식이 흐른 좋은 예다.


책은 음식의 변화는 재료를 선택, 조합하며 조리방법을 정연하게 다듬는, 상당히 고난도의 창의적 작업이 뒤따라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때문에 재료와 창의성의 숙성이 특히 중요하며 이는 시대에 따라, 지리적 환경이나 문화적 풍토에 따라 더 나은 음식을 만들고자 애쓰는 인간의 다양한 노력과 정성 없이는 발현될 수 없다는 지은이의 설명이다.


책은 우리 밥상에 오른 음식 하나하나에 담긴 전 인류적 역사의 흔적을 찾아냄으로써 결국 음식의 진화가 곧 인간 문화의 진화라는 사실을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