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이 출시된 이래 애플의 성장속도가 예사롭지 않다. 애플에서 나온 다른 제품인 아이맥과 아이팟도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아이폰에는 미치지 못한다. 여기에는 뛰어난 인터페이스를 포함한 정보통신 기술력도 있지만 무엇보다 디자인의 역할이 컸다. 디자인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했던 것이다.


사진_비밀 많은 디자인씨ㅣ김은산 지음ㅣ양철북 펴냄.jpg 현대사회는 디자인 과잉시대라 할 수 있을 만큼 디자인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하지만 개개인의 일상은 오히려 디자인 결핍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는 디자인에 대한 행위를 오직 예쁜 물건을 선택하고 구매하는 것으로만 한정짓고 있기 때문이다. 더 멋진 것만을 생각할 뿐 쓸모를 생각하지 않는 디자인, 사용자를 생각하지 않는 디자인, 디자인의 의미와 가치를 생각하지 않은 디자인이 넘쳐나고 있기 때문이다.


디자인을 둘러싼 다양한 사회의 모습을 분석, 비판하고 있는 <비밀 많은 디자인씨>는 디자인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좀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디자인은 우리의 삶을 변화 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더욱 깊이 생각해야 할 주제라고 역설한다.


미래학자들은 미래사회와 경제의 새로운 원동력은 정보가 아니라 이미지와 의미라고 말한다. 미래에는 정보를 다루는 기술보다 인간에게 가치 있는 의미를 이미지로 잘 전달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러나 개인은 디자인의 가능성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또 우리가 디자인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뿐 자신의 생각과 의지를 개입시키지 못하고 소외되고 있다. 이는 디자인이 ‘자기 삶과 환경을 결정할 자유이며 삶에 대한 통제력을 갖는 일’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그 결과 우리는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로서, 정부에서 만든 공공시설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수용자로서만 역할을 다하고 있다.


디자인의 참 의미는


디자인을 잘 사용하기 위해 무엇보다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디자인의 능력을 사용해야 한다. 우리는 매순간 자신의 삶과 일상을 디자인하고 있으며, 각자가 곧 한 사람의 디자이너다. 그것을 얼마나 의식하고, 자각하느냐에 따라 삶을 대하는 태도는 달라질 것이다. 디자인은 삶의 모든 결정에, 중요한 선택의 과정에 개입한다. (…) 이런 고민의 과정이 바로 디자인이다. 세상의 눈치 속에 자신을 성형해가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주변의 사람들과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고민하는 삶, 자신의 진실에 충실한 삶, 스스로 삶의 방향과 속도를 정하고 통제력을 놓치지 않는 일, 그것이 진정한 디자인이다.



지은이 김은산은 오스트리아 빈 시와 우리나라의 서울시의 공공디자인을 예로 들며 디자인에 대한 일반의 인식을 꼬집는다.


2006년 오스트리아 빈 시는 ‘빈은 다른 눈으로 바라본다’라는 주제로 캠페인을 벌였다. 공공정책에서 성별의 차이를 고려한 정책을 펼치자는 내용이었다. 그 가운데 공공사인에 나타난 성 역할 구분을 개선하자는 프로젝트가 있었다. 이 프로젝트 덕분에 치마 차림으로 출구를 향해 달려가는 여성을 그린 비상구 표시판, 기저귀를 가는 남성, 아기를 무릎에 앉힌 남성을 그린 표시판, 부츠 차림에 치마를 입은 여성을 그린 공사중 표시판이 생겼다. 문제는 이 때부터였다. 시 당국의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더 급진적인 비판을 하는 이들이 생겼던 것. 동성애 단체들이 남성과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성에 근거해 이성애자만을 위한 표지판을 만들었다고 비판했고, 그 결과 콧수염이 난 여성이 그려진 표시판이 생겼다. 그러자 동물보호단체들이 들고 나섰다. 캠페인이 인간만을 위하고 있다며 반대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이쯤 되면 사소한 공공사인 하나 만드는 일에도 다양한 사회 구성원의 의견을 구하고 반영하는 일들이 얼마나 소모적인 논쟁거리인지 비판하는 사람들도 나올 만하다.


캠페인을 진행하며 빈 시 당국은 여러 가지 어려움에 부딪혔다. 캠페인 홍보 포스터에 쓰인 ‘공사중’을 나타내는 도로공사 표지판에는 바지를 입고 헬멧을 쓴 남성 대신 뒤로 묶은 머리와 치마 차림에 부츠를 신고 땅을 파는 여성이 등장했다. 그런데 도로법 규정상 이것을 실제 표지판으로 사용할 수 없었다. 캠페인 관계자들은 도로공사라는 업종에 성차별을 두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으로 맞섰지만, 일부 남성들과 보수 언론은 공사장 노동자가 치마를 입고 있는 것은 비현실적이며 세금을 낭비하는 일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시 당국은 “언어뿐만 아니라 이미지도 남녀의 사회적 역할을 규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라며 “공공 표지판을 교체하는 일은 기존의 사회적인 인식을 바꾸고 남녀 모두에 똑같은 기회와 책임을 부여한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같은 해 서울시는 청계천 복원 1주년을 기념해 청계광장에 스웨덴 출신 미술가 클래스 올덴버그의 조형물 <스프링>을 세웠다. 청계천 복원 사업도 오스트리아 빈 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공공디자인을 표방한 것이었다. 하지만 접근 태도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청계광장에 들어선 조형물로 올덴버그의 작품이 선정되기까지 정작 시민들의 참여 기회는 원천적으로 봉쇄됐다. 의견을 밝힐 수도, 토론할 기회도, 선택할 권리도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지은이가 오스트리아 빈 시와 서울시의 사례를 통해 주목하고자 한 것은 ‘공공디자인의 주체가 누구인가’이다. 그는 이제 구경꾼에서 벗어나 사용자로서 주권을 찾자고 주장한다. 소비를 부추기는 디자인에 휩쓸려 디자인을 돈과 교환되는 가치로 생각하지 말고, 물건을 둘러싼 환경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고, 더 나아가 우리의 생활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민하자고 말한다.


우리는 여전히 디자인의 대상이나 결과물만을 고려하고, 그에 따라 디자인의 분야를 나누고 경계 짓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디자인의 대상은 지속적으로 확장되어 왔고, 그 경계도 모호해지고 있다. 지금까지 디자인은 제품 하나하나를 완결적으로 잘 만드는 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이제 디자인의 대상은 물리적인 의미의 사물이나 제품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정보와 서비스 영역으로까지 확대되었다. 디자인의 지향점이 제품과 제품 사이의 관계, 제품과 사용자 사이의 관계를 다루는 일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지은이의 주장대로 우리는 디자인을 때로는 선망의 대상으로 받들면서도, 디자인이 정작 생활을 변화시키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잊고 산다. 지은이는 디자인이라는 창을 통해, 우리의 삶의 방식을 다시 되돌아보도록 권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