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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가르쳐준 거짓말]
<선생님이 가르쳐준 거짓말> 제임스 W. 로웬 지음ㅣ남경태 옮김ㅣ휴머니스트 펴냄
<지데일리 한주연기자> TV 드라마, 영화 등 역사와 관련한 문화소비에는 관심이 많지만, 정작 학교에서 역사를 선택해 공부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이러한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든 주인공은 누굴까? 바로 ‘교과서’를 중심으로 한 역사수업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적잖은 사람들이 역사교과서를 ‘암기거리의 집합소’로 인식하고 있는 현실에서 역사의 미래는 어둡기만 하다. 흥미롭게도 이 같은 ‘지루한 역사 교과서’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세계 최강국이라고 자부하는 나라, 세계 대학평가 상위권 대학이 수십 곳에 달해 우수한 교육 인프라를 자랑하는 나라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선생님이 가르쳐준 거짓말>은 ‘왜 역사를 지루해 할까?’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한 사회학자가 자국의 교과서 18종을 대조하고 분석한 결과물로, 자국 역사 교육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담고 있다.
교과서가 그렇게 신처럼 전지전능한 태도를 취하기 때문에 대다수 학생들은 감히 의문을 품으려 하지 않는다. “교과서를 읽을 때 이런 의문이 들었어요. 예를 들면 아메리카 원주민은 누굴까? 그들의 삶은 어땠을까? 콜럼버스가 도착한 뒤 그들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그런데 역사 교과서는 모든 것을 마치 완전한 그림처럼보여주는 거예요. 그러니 아무런 의심도 할 수 없었죠.” 그 결과 고등학생들은 우리 사회의 쟁점을 분석하는 능력을 가질 수 없게 된다. (…) 이대로 놔두면 안 된다.
지은이 제임스 W. 로웬은 암기만을 강요하는 교과서 탓에 학생들이 역사에서 멀어진다고 주장한다.
지은이에 따르면, 미국의 역사 교과서는 국가가 원하는 ‘시민’을 ‘찍어내기’ 위해 그릇된 서술을 채워 넣은 저자·연구자와 정부, 공인 교과서 선정을 위한 출판사의 찬동, 골치 아픈 일은 피하려는 역사 교사의 묵인이 합쳐진 결과물이라는 것.
이에 지은이는 좁게는 미국의 역사 교과서에 서술된 내용을 하나씩 따짐으로써 역사의 진위를 가려낸 ‘미국사 바로 알기’로 이야기하면서, 넓게는 그 교과서 서술 뒤에 숨겨진 의미와 목적을 파헤친다.
책은 교과서의 비밀을 밝혀 역사의 진실을 찾고, 이로써 참된 역사 교육이란 무엇인지 모색하고 있다. 아울러 이를 통해 역사의 진실을 어떻게 찾고, 그 진실을 어떻게 가르칠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들면서 우리 모두 역사를 대하는 태도 자체를 바꿀 것을 주문한다.
지은이는 교과서의 재미없는 서술 방식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교과서 내용의 잘잘못을 조목조목 비판한다.
지난 20여 년간 나는 수백 명의 대학생들에게 헬렌 켈러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일을 했는지 물었다. 그녀가 맹인에다 농아였다는 사실은 다들 안다. 앤 설리번이라는 교사와 친했고 그에게서 글과 말을 배웠다는 사실도 대부분 기억한다. (…) 그러나 켈러의 성인시절에 관해서는 아는 학생이 없다. 겨우 몇 명이 켈러가 ‘유명인’이나 ‘박애주의자’가 되어 맹인과 농아를 위해 활동하지 않았느냐고 되묻는다. (…) 1880년에 태어난 켈러는 1904년에 래드클리프를 졸업했고, 1968년에 사망했다. 그녀의 성인 생활에 해당하는 64년을 무시해버리거나, 단지 ‘박애주의자’라는 말 한마디로 축약해버린다면 누락에 의한 거짓말이나 다름없다. 헬렌 켈러는 사실 급진적 사회주의자였다. 그녀는 1909년 매사추세츠 사회당에 가입했다. 래드클리프를 졸업하기 전에도 이미 그녀는 강렬한 사회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우선,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헬렌 켈러. 그는 설리번 선생의 헌신적 도움에 힘입어 극심한 장애를 딛고 일어선 인간 승리의 아이콘이다. 하지만 사실은 이와 다르다.
헬렌 켈러는 성인이 된 이후, 급진적 사회주의자로서 살면서 노동운동과 장애인 권익 개선을 위한 삶을 살았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가 생소한 이유는 교과서가 헬렌 켈러에게서 필요한 이미지를 자립과 노력에 한정지었기 때문이다.
개인은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도덕적 가치의 일부만 남겨서 강조하고 나머지 이야기를 빼버린 것이다.
또 교과서는 인디언 문제도 왜곡하기 일쑤다. 단지 ‘원주민 문화’로서 인정할 뿐, 문화접변의 가능성은 무시해버린다.
특히 지성과 관련된 측면은 거의 다루지 않는다. 미국이 유럽뿐 아니라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고 밝히면, 정복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삽입한 ‘원시성’이라는 전제를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 관련 내용도 빼놓을 수 없다. 교과서에는 정부의 실수나 잘못에 관한 내용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정부는 현명하고 올바른 일만 하는 곳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줌으로써 제대로 된 시민은 정부의 지도를 잘 따른다는 도덕을 만들어낸다.
해방 후 노예 문제나 베트남 전쟁 반대자 무시 같은 과오는 감춰버리는 식으로 정부의 불법적 행위를 무시한다. 결국 이런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수동적 자세만 취하며 자라나게 되는 것이다.
지은이가 이처럼 교과서의 역사 서술에 대한 잘잘못을 가려낸 근본적 이유는 교과서의 역할과 힘의 중요성 때문이다.
교과서는 국가 구성원의 역사의식은 물론 가치관과 세계관까지 결정지을 수 있는 힘이 있다. 때문에 구성과 서술에 교육 외의 또 다른 목적이 개입돼 왜곡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교과서를 어떠한 자세로 대해야 할까? 가르치고 보여주는 대로 흡수해야 할까? 무조건적으로 비난의 칼날을 들이대야 할까?
역사에는 정답이 없다고 했다. 지은이는 또한 자신이 제시한 사실들이 총체적 진실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수용의 대상이 아닌 학습의 방편으로 삼으라는 것, 그것이 지은이가 교과서에 대해 내리는 정의다.
<사진출처: 영화 컨스피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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