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0년 로널드 레이건이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공화당원들은 신자유주의의 번영을 장담하며 환호했다. 그들은 선거 직후 가진 각종 축하모임에서 자유주의 경제학의 아버지인 애덤 스미스(1729~1790)의 옆모습이 그려진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고 한다.


사진_꿀벌의 우화ㅣ버나드 맨더빌 지음ㅣ최윤재 옮김ㅣ문예출판사 펴냄.jpg 그러나 사실 그들이 경제사상사를 제대로 알았다면 스미스의 얼굴이 아닌 버나드 맨더빌(1670~1733)의 모습이 그려진 넥타이를 맸어야 했을 것이다. 개인의 이기심과 이익추구 행위가 국가를 부유하게 만드는 원동력임을 강조한 것은 바로 스미스보다 앞 세대였던 맨더빌이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맨더빌은 노동자들을 빈곤하게 만들어 기업가가 더 많은 이윤을 남기게 되면 국가가 부유해진다고 봤으며, 부자들의 사치는 생산과 일자리 창출을 가져온다고 주장했던 인물이다.


스미스는 이기심이 인간 본성이라는 맨더빌의 주장을 받아들였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했다. 그 이기심은 사회 전체적으로 균형이 맞아야만 비로소 사회 이익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스미스는 생산자 이익만 강조되던 당시 중상주의 체제를 비판하면서, 생산자 이익뿐 아니라 소비자 이익이, 기업가 이익뿐 아니라 노동자 이익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미스에서 비롯된 경제학은 이러한 균형 감각에서 비로소 시작된 것이지, 이기심이나 이윤 추구에 대한 찬양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다.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알려진 스미스가 쓴 <도덕감정론>이 사실 버나드 맨더빌의 주장에 반박하기 위해 쓰였다는 사실을 아는지? 이 책은 “사람이 아무리 이기적이라 생각되더라도”라는 말로 시작돼 이기심에 따른 사람들의 행위가 정당한지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또 스미스는 방탕과 사치 같은 인간의 악덕을 옹호한 맨더빌의 사상이 사회에 퍼지는 것을 경계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자유경쟁의 중요성을 주장한 것은 당시 대기업이 독점하고 있는 무역 등 산업의 병폐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정부가 자유경쟁을 보장함으로써 대기업뿐 아니라 소규모 기업과 상인들도 경제활동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사회를 더욱 안정적으로 만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악덕을 옹호하는 주장으로 인해 사람들에게서 인간 악마(Man-Devil)라 불렸던 맨더빌은 1670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났다. 레이던 대학에서 철학박사와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영국으로 건너가 정착, 이후 1733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영국에서 살았다.


맨더빌이 악명을 떨치게 된 것은 그가 1723년 <꿀벌의 우화>라는 책을 발표하면서부터다. 이 책에는 <투덜대는 벌집: 또는, 정직해진 악당들>이라는 풍자시와 함께 맨더빌이 직접 단 주석과 <사회의 본질을 찾아서>, <자선과 자선학교>, <미덕은 어디에서 왔는가> 등의 글을 함께 수록해놓았다.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미들섹스 지역의 대배심으로부터 “종교와 미덕을 깍아내린다”는 혐의로 고발됐으며 프랑스에서는 책을 불사르기도 했다. 도대체 이 책의 무엇이 당시 사람들을 분노로 들끓게 만들었을까?


맨더빌의 글이 당시 사람들의 눈에 불경하게 보였던 이유는 무엇보다 맨더빌이 도덕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세의 세계관에서 도덕은 신이 부여한 질서이기에 인간이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맨더빌은 이러한 중세적 사고의 틀을 과감하게 부수고 도덕이야말로 인간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낸 위선에 사로잡힌 가치일 뿐이라고 일갈한다.


현대인들에게는 도덕이 사회의 합의로 만들어졌다는 주장이 그다지 새롭게 느껴지지 않겠지만, 맨더빌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이었으며 분노를 자아내게 하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맨더빌은 이렇게 당시의 도덕을 공격함으로써, 중세에서 근대로 나아가는 시대상의 중요한 변화 지점을 짚어내고 있다. 금욕과 절제를 강조하는 중세 기독교적 도덕은 이제 다들 돈벌이에 몰두하는 상업사회에는 맞지 않는다. 맨더빌은 이 지점을 정확하게 짚어냈고, 우화의 형식으로 사람들에게 “이제 그런 위선에서 벗어나라”라고 외쳤다. 맨더빌은 근대적 인간의 탄생을 누구보다 먼저 눈치챘으며 이를 날카로운 필치로 세상에 알린 것이다.


<꿀벌의 우화>는 자본주의 발전의 초입에서 인간의 이기심에 주목한 맨더빌을 살펴봄으로써 우리 사회의 천박한 자본주의의 근원을 살피고 혜안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