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벼의 경작을 통해 풍경을 만들어낸다. 수경 벼농사는 산과 평야에서 물리적 제약이 아니라 문명을 형성한다. 문명의 경제적 조건을 논할 때, 종종 무시되기는 하지만 찬탄할 만한 기술능력에 대해서는 산에서의 수경 벼농사보다 더 의미 있는 것이 없다.”


사진_쌀과 문명ㅣ피에르 구르 지음ㅣ김길훈 김건 옮김ㅣ푸른길 펴냄.jpg 쌀을 주식으로 하는 아시아 문명권에 속한 우리는 벼농사라는 단어에서 쉽게 뚜렷한 풍경을 떠올릴 수 있다. 한 가지 예로, 가을철 호남의 너른 들에 가득한 금빛 이삭의 물결이나 산골짜기 나지막한 비탈에 다랑논들이 층층이 포개져 있는 모습은 우리에게 무척 친숙한 동시에 가슴을 벅차게 한다. 이러한 경관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인간의 손길로 일궈온 것이지만, 온전히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도시의 유적들과는 전혀 다른 경외감을 선사한다. 이 경관이야말로 인류가 자연환경과 타협하거나 맞서 싸우며 문명을 이룩해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쌀과 문명의 관계에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남아 있다. 왜 비슷한 환경에서도 어떤 곳은 논농사를 짓고 어떤 곳은 짓지 않는 걸까? 벼농사에 적합해 보이는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민족이 있는가 하면, 척박해 보이는 환경에서도 벼농사에만 열을 올리는 민족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아시아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마다가스카르가 다분히 동아시아적인 벼농사기법을 간직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궁극적으로 수경(水耕) 벼농사는 과연 특정한 문명에서 나온 결과물일까? 아니면 그 특정한 문명을 이끌어낸 동인일까? 찬란한 벼농사의 경관을 보고 ‘쌀의 문명’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아니면 ‘쌀과 문명’이라고 불러야 하는 걸까?


‘먹는다’라는 단어는 베트남어, 일본어, 산탈리어, 라오어, 시암어 그리고 다른 언어에서 ‘쌀을 먹는다’는 의미로 통용된다. 아침쌀, 점심쌀, 저녁쌀은 일본 규슈 지방에서 세 끼의 식사를 가리킨다. ‘논사람’이라 불리는 캄보디아 농부는 벼, 껍질 벗긴 쌀, 빻은 쌀, 끓인 쌀, 구운 쌀을 지칭하는 특별한 단어를 사용한다. 쌀은 신의 은총을 받은 초자연적 힘이다.



중국에서 고도로 발달한 문명은 벼농사가 적합하지 않은 창링의 북부 지역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이때까지 조와 밀을 주식으로 삼았던 중국인의 선조는 이후 남쪽으로 퍼져 나가 양쯔 강 유역에서 벼농사를 지으며 중국 문화를 형성했다. 마찬가지로 인도에서도 기장과 밀을 주식으로 삼던 사람들이 위대한 문명을 형성했고, 이후 벼농사가 재배 가능한 인도 전 지역으로 확대됐다.


이러한 이유에서 ‘쌀의 문명’이라고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것 같다. 앞서 언급한 사실을 인정한다면 ‘쌀과 문명’이라고 말하는 것이 타당하다. 수경 벼농사는 단지 문명을 발생시킨 일부분일 뿐이다. 물론 벼농사 덕택에 아시아의 여러 농촌 지역은 인구밀도가 높다. 또 벼농사에는 수리시설과 보호 제방작업을 위한 정치적 고려도 뒤따른다. 말하자면 아시아의 위대한 문명은 쌀이 아니라, 이푸가오(필리핀)의 주민처럼 별다른 욕심 없이 벼를 열심히 경작했던 농부에게서 태동한 것이다.


이전까지 행복한 농부를 언급한 연구를 본 적이 있는가? 중국이나 인도 농부, 랑그도크나 보베 농부, 성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의 도나투스파 교도, 로마 영토의 노예, 11세기의 농노, 위대한 러시아의 농부, 피라미드 건축의 인부나 이집트 비잔틴의 농부, 사하라 사막 오아시스의 농부 혹은 미국 대농장의 노예 등 모든 농부의 모습은 언제나 견디기 힘들다. 우리는 이 오래된 불행을 애석해하면서 싼값에 양심의 위안을 얻는다. 우리는 우리 시대의 이념, 관례, 편견을 과거의 사실에 적용시키는 시대착오의 한복판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닐까?



<쌀과 문명>은 우리가 너무나 익숙해 쉽게 지나치곤 했던 논의 풍경과 평범한 농부의 모습에서 인류 문명의 놀라운 역동성을 발견할 수 있게 해준다. 프랑스의 저명한 문화지리학자인 지은이 피에르 구루는 다년간의 현지답사와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쌀과 문명, 그리고 그 문명을 일궈낸 사람들에 관한 수수께끼를 풀어가고 있다. 아울러 중국을 비롯해 우리나라, 일본, 타이완, 타이,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인도, 마다가스카르 등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에서 전통적인 벼농사를 통해 나타나는 인간적 풍경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