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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철의 걷는 그림>문화 2010. 12. 4. 22:23크로키(croquis)란 회화에서 초안, 스케치, 밑그림 등의 뜻을 지닌 기법을 뜻하는 용어로 대상의 특징을 단시간에 재빨리 포착해 그리는 것을 말한다. 예술창조의 기초가 돼 있는 것으로 작가의 감성이나 감동이 솔직하게 표현된다.
최호철은 지난 1988년 이래 항상 크로키북을 가지고 다니면서 우연히 부딪히는 주변의 이미지를 크로키로 그려냈다. 그렇게 모인 크로키북이 어느새 130권을 넘었고, 올해 부천국제만화축제에서 열렸던 전시회 ‘곁에 있는 풍경’에서 그의 크로키들은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우고도 남았었다. 전시회를 찾은 많은 이들이 그 벽 앞에서 한참 동안이나 발걸음을 멈췄었다. <최호철의 걷는 그림>은 그들을 감탄하게 하고 때로는 웃음 짓게 만들었던 그 그림들을 묶어낸 것이다.
전태일의 삶을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이야기로 풀어나간 <태일이>로 2009년 부천만화대상을 받은 작가 최호철. 이 책에서 그는 평범한 삶의 모습을 진솔하면서도 재치 있게 담아내고 있다.
책의 시작은 인물들로 지하철이나 버스, 거리나 가게에서부터 학교까지 무심히 지나가는 주변 사람들을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가방을 안고 잠들어있는 학생들, 핸드폰의 열중하는 젊은이와 무서운 표정의 아저씨, 정다운 모습의 노부부들까지 모두 우리에게 익숙한, 나 혹은 가족과 친구들의 모습이다.건물이 빽빽하게 찬 도시부터 산이 보이는 한적한 시골 풍경 등 깊이 있고 상세한 공간도 다뤄진다. 버스에서 바라보는 번잡한 도시의 모습, 포장마차와 과일트럭, 자전거가 세워진 골목 등 멀리서, 때론 가까이에서 펼쳐지는 이 모든 곳이 TV나 비싼 화집에서 보여지는 이국의 모습이 아닌 바로 우리가 있는 그 공간이다.
우리 앞에 이웃에서부터 삶의 공간까지 점점 멀어졌던 시선들이 마지막에 이르면 다시 돌아와 바로 앞의 사물들에게로 옮겨진다. 의자와 가방, 벽에 걸린 선풍기와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주전자, 시골 앞마당에 사는 흰둥이와 거실에서 햇볕을 쬐며 노는 고양이 등 모두 한번쯤은 스쳐 지나갔던 일상의 모습이다.
책은 딱딱하게 들릴 수 있는 크로키란 용어 대한 부담에서 멀어지게끔 해준다. 누구나가 공감할 수 있는 우리의 일상을 그려낸 작품이다. 최호철과 함께 걸었던 자신을 찾을 수도 있고, 가족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작품의 내적 의미라든지 작가의 숨겨진 의도 같은 것을 찾을 필요는 없다. 그저 그와 함께 걸으며 즐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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